(콩을 심고 기다리며, 노르웨이에서 만난 아침)
마당 끝, 도랑 곁에 벽돌로 쌓은 둑엔 흙이 담긴 작은 틈이 있다. 작은 틈은 가로, 세로가 약 10여 cm 정도의 크기로 지난해에는 아름다운 꽃을 심어 한 해를 한껏 즐겼는데, 올해는 이웃을 따라 검은콩을 심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콩을 심어보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건네준 검은콩이다. 이웃집에서 콩을 심고 한 열흘이 지나 심은 콩은 왠지 싹이 나올 소식이 없자, 아내는 언제나 콩이 나오냐며 아침, 저녁으로 타박을 한다. 이웃집 콩은 벌써 한 뼘이나 자라 작은 바람에도 하늘 거리고 있어 아내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식물을 심어 밭에서 자라나고, 이것을 수확하는 기쁨을 지금껏 알 리가 없었던 아내는 그렇게 콩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얼마가 지나 검은콩을 심은 땅이 약간 불룩하게 올라오고 어느 날인가 콩 머리가 땅 위로 불쑥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이렇게 대지를 힘차게 걷어내고 올라온 노랑빛 아기 콩은 옅은 연초록이 가미된 아름다운 빛으로 태어났다. 아리아리한 줄기를 타고 나온 콩은 햇살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모양을 갖추어 갔다. 아내는 틈이 나는 대로 도랑물을 떠서 주기도 하고, 주변에 잡초가 있으면 뽑아주면서 지극 정성으로 콩을 돌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차디찬 이슬을 먹기도 하고, 가끔 내리는 빗줄기를 즐기며 잎은 서서히 자라 두 잎이 되고, 네 잎에 나오게 되었다. 콩잎 빛깔은 어느덧 연초록이 조금씩 변해가면서 초록의 빛을 띠게 되었다.
주변의 산자락에도 파랑이 서둘러 오는 사이, 콩잎은 어느덧 한 뼘은 되게 자라 아름다운 시골 식구가 되었다. 더불어 산자락에 찔레가 자라나고, 근처에 취나물도 팔랑거리며 한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자라난 콩잎은 아기 솜털을 가진 까끌까끌한 잎이 되었고, 그 위쪽으로 줄기가 불쑥 자라 또 한 쌍의 잎이 양쪽으로 팔을 벌렸다. 어느덧 콩의 자태를 갖추게 되자 콩잎의 색깔은 연한 연두색은 없어지고, 어느덧 녹색이 짙어짐에 따라 도랑 건너에 자리한 찔레나무와 같은 초록이 되었다. 연한 잎은 거센 비바람을 견디고 이슬을 먹으며 자라며 어느덧 콩으로서의 자태를 갖출 정도가 되었고, 초록이 가득 익은 진한 색이 되었다. 이때 즈음이 되면 콩은 겨드랑이에 곁순이 돋아나 더욱 풍성해지는데, 이 곁순은 따 주어야 콩이 잘 된다고 한다. 아내는 콩이 다칠세라 조심하면서 곁순을 정리해 주고, 정성으로 콩을 들여다본다.
콩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사이, 콩은 신나게 자라나 어느덧 덩굴이 되어 이웃 콩과 어울려 어깨동무를 한다. 곁순을 따 주는 것과 같이 덩굴이 성하게 되면, 콩이 달리는 것보다 콩 줄기만 무성해진다며 잔인하게 순을 따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곁순과 넝쿨을 잘 손질해 주어야 콩은 어엿한 품위를 자랑하듯 자라나고, 줄기마다 콩깍지를 달아 풍성한 가을을 예약할 수 있단다. 아내는 고단한 품도 아끼지 않고 콩을 돌보았다.
이렇게 자라난 콩은 어느덧 검푸름 초록으로 자리하고, 콩잎은 클 대로 커져서 콩 줄기를 푹 덮을 정도가 되면 어느덧 여름이 뉘엿뉘엿 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름 말미 찾은 장마는 콩 뿌리에 물이 너무 흘러 무거워진 줄기는 견딜 수가 없고, 더 바람이 찾아오며 줄기는 이기지 못해 기어이 몸을 뉘게 되었다. 아내는 서둘러 콩 줄기를 일으키려 하지만, 어느새 무거워진 콩 줄기는 흐느적거려 기어이 나무를 박아 콩을 일으켜 세웠다.
서로 엉켜 몸을 가누게 된 콩은 찾아온 늦여름 바람에 몸을 키우고, 어느덧 콩깍지가 불룩한 콩이 되어 일렁이는 바람에 몸을 싣는다. 가을 초엽이 되면서 콩은 자라는 것을 멈추고, 바람 따라 일렁이며 쏟아지는 햇살에 영글어간다. 햇살과 바람을 따라 익어가는 콩은 통통해지면서 콩 즐기는 어느덧 초록이 익어 자그마한 노랑이 되었고, 콩잎도 어느새 검푸름이 가을 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늦가을 바람을 타고 내리쬐는 가을 햇살은 통통한 콩깍지를 영글게 하고, 잎은 서서히 검푸름이 변하여 노란색을 띠게 되었다.
콩은 하루 종일 받은 햇살에 줄기는 점점 습기가 마르고, 황톳빛에 검은색이 담긴 색으로 변하며 오는 가을을 서서히 준비하게 되었다. 덩달아 잎은 누렁으로 변하여 늦가을이 됨을 알려주고, 꾸덕꾸덕 말라가던 콩깍지는 어느새 바람 따라 덜그럭거리며 콩이 다 영글었음을 알려주었다.
초봄에 연한 녹색으로 탄생한 콩은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연한 녹색에 초록이 가미되어 가고, 세찬 여름 장마와 더위에 시달리며 초록은 진초록으로 옮겨갔다. 초록으로 물든 여름이 가을을 맞이하는 바람이 불면, 초록의 콩잎은 검푸름으로 변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어느새 검푸름은 노랑을 거쳐 황갈색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황갈색이 바람을 따라 일렁이면 일 년을 영근 콩은 검게 물이 들고, 가을 햇살 가득한 날 콩깍지는 어느새 깎지의 뒤틀림을 이기지 못하고 검은콩을 토해내며 이 가을을 한껏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