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만난 아카시 꽃)
여름 한나절, 아내와 뒷산을 오르다 활짝 핀 아카시 꽃을 만났다.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그리고 오래전 기억을 불러주는 꽃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쏟아질 듯 허공에 매달린 아카시 꽃이다. 향긋함에 정겨움까지 주었으니 넋을 놓고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아카시 꽃이 이리도 가슴 와 닿는 것은 어려서부터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이리라. 오래전부터 친근했던 꽃이었다. 진달래 꽃은 먹는 꽃으로 알고 있었다. 아카시 꽃도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 헐벗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카시 꽃은 보배로운 꽃이었다. 먹거리였고 놀이였으며 늘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학교를 오가며 만난 아카시 꽃은 배고픔 달래주는 먹거리였고, 달큼함을 안겨주는 추억이었다. 먼 길을 오가야 했던 학교 길은 어린것들에겐 녹녹지 않았다. 어린 철부지들은 정해진 길을 오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왠지 먼 길을 돌고 돌아 학교 길을 오갔다. 길에서 마냥 놀기도 했고, 온갖 자연이 함께 어울리며 놀거리였다. 긴긴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냇물에 멱을 감기도 하고, 갖가지 놀잇감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갖가지 일을 찾아다니다 만나는 아카시 꽃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미세먼지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황사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 아카시 꽃을 손으로 훑어 입으로 털어 넣는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 기분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향긋한 향이 담긴 주먹을 입에 대는 순간, 자연은 입으로 가득해졌다. 달콤한 그 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아카시 나무에 매달려 꽃을 훑어 먹는 것은 의례 하는 놀이였다. 당연하게 해오던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재미였고, 모두가 즐기는 놀이거리였다. 열을 맞추어 나란히 열린 꽃은 아름다웠고, 초록이 담긴 잎은 풋풋하기만 했다. 꿀을 찾아 헤매는 벌과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철부지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카시 나무는 큰 나무가 되어 꽃을 피웠다. 나무줄기에는 콩과 비슷한 열매가 달린 성숙한 나무가 되었다. 커다란 아카시 나무는 곳곳에 가시가 달려 범접할 수 없는 나무가 되었다. 땔감이 없었던 그 시절, 만만한 뒷산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덩달아 온 산은 순식간에 벌거숭이로 변했다. 번식과 성장이 뛰어난 아카시나무는 벌거벗은 산에 심어야 했다. 아카시 나무를 벌거숭이산에 산림녹화용으로 심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것들은 씨를 받아야 하는 숙제를 떠안아야 했다. 꽃을 따먹는 것으로 즐거웠던 어린것들이 씨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다. 산림녹화라는 명목으로 고단한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해야만 하고 살던 시대 이야기이다.
무럭무럭 자란 아카시 나무는 나무 감으로도 제격이었다. 산등성이 곳곳에는 나뭇등걸만 남아 있는 곳이 많았다. 땔감으로 적합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푸른 잎을 틔워 꽃을 피우자 어린것들이 꽃을 훑어 먹고, 이 난관을 극복한 꽃이 열매를 맺고 나자 열매를 다시 따 갔다. 다시 나무가 자라 커다랗게 되니 땔감으로 쓰여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카시 나무 운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고단한 시절, 철부지들도 땔감을 구하려 다녀야 했다. 땔감 중에는 나무 등걸이 좋은 화력을 만드는 으뜸 재료였으니 등걸마저 남겨 놓지 않았다. 곳곳에 남아있는 아카시나무 등걸이 제격이었다.
바소쿠리에 도끼 한 자루 얹고 산에 오른다. 아카시 나무를 베어 가고 남은 고주박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봄이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지만, 이마저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게를 언덕바지에 바쳐놓고, 도끼로 고주박을 내려치면 나무 등걸은 나둥그러지며 소리를 친다. 곳곳에 남아있던 나무 등걸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누구나 좋아하는 땔감이었으니 말이다. 한쪽에서는 나무를 심어야 했고, 한쪽에서는 땔감으로 베고 잘라야 하는 시절이었다. 고주박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풍성한 땔감이 된다. 추운 겨울의 땔감으로는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고주박을 쏟아 놓고 불을 지피는 아들은 대견했다. 고주박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면 대단한 화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따스함은 나무를 하는 고단함을 순식간에 녹여준다. 타고 남은 불덩이는 화로에 담는다. 겨울 추위를 녹여줄 따스한 난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식력이 강한 아카시나무는 산림녹화용으로 위대한 역할을 했다. 다시 아카시나무는 봄을 지나 여름에 꽃을 피웠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면 땔감 역할을 했다. 우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세월이 흘러, 꿀을 모으는 사람은 아카시 꽃을 따라 이동하며 생계를 마련한다. 나무를 이용하는 사람은 가구를 만들어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가까이에서 만났던 아카시 나무가 온 산을 하얗게 물들였다. 온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향기는 숨을 멎게 한다. 하늘에 매달려 쏟아지는 향기에 발걸음이 멎었다. 한가한 그늘에 앉아 오래전 기억을 추억해 본다. 여름 한 나절 산에 오르다 만난 그 아카시 꽃은 황홀함을 넘어 신비함을 안겨준다. 허공에 매달린 하얀 아카시 꽃은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환한 햇살에 빛이 난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에서 흩어지는 달콤한 꽃 향기가 온 산에 가득하다. 오래 전의 추억마저 끄집어 내주는 아름다운 냄새였다. 잊을 수 없는 오래 전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