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연가, 정원에 있는 감나무)
키가 껑충한 감나무가 초가지붕을 근엄하게 내려보고 있다. 어느새 감나무 잎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싹이 나오나 했는데 봄날이 그렇게 지났는가 보다. 얼마 전까지 노란 꽃이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더니 지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감나무 밑을 노랗게 수를 놓았었다. 같은 집에 동거하면서도 무관심하던 사이 감나무는 품위가 달라졌다. 어느새 조막만 한 푸른 감이 널따란 감나무 잎에 몸을 숨기더니 바람을 타고 얼굴을 내밀었다 숨는다. 오랜 세월 수더분한 초가집을 지키고 있는 시골집의 수호신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겨울잠을 자던 살아있는 생물들이 봄 냄새를 맡았다. 너도 나도 살아보려 두터운 대지를 흔들고 있다. 감나무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거대한 감나무도 대지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두터운 대지가 밀어 올린 기운을 받은 감나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새싹을 내밀었다. 아침, 저녁으로 찾아오는 이슬로 목을 축이던 새싹은 연초록 빛을 선사받았다. 연초록에 햇살이 찾아와 투명한 아름다움에 그치나 했지만 연초록은 햇살에 힘을 얻어 검푸름으로 변신했다. 연초록이 익어갈 무렵, 넉넉한 비바람을 감내한 감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다.
올망졸망 꽃을 달고 있는 감나무는 노란 꽃을 떨구어야 했다. 노란 꽃으로 아름다움을 가득 실은 감나무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 꽃을 피웠으니 열매를 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세월을 넘은 감나무엔 꽃을 떨구고 조막만 한 감이 열렸다. 꽃보다 아름다운 감나무를 만들어 주었다. 붉은 감이 달린 감나무, 오랜 추억을 주고 허공에 하늘대는 까치밥이 생각나는 감나무였다. 고목이 되도록 감을 달고 시골집을 지켜주었던 감나무였다.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된 감나무가 스스로 몸을 낮추고 삶을 이어갈 수 없어 안타까웠었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서 오래전 감나무가 보고 싶었다. 언제나 그리움을 가득 실은 감나무였다. 꽃이 보고 싶고, 열매가 보고 싶었으며, 붉은 감을 지나 까치밥이 하늘 거리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추운 동네엔 감나무를 찾을 수 없었다. 온화한 기후만이 감나무를 키워냄이 안타까웠다. 이웃들이 하는 말, 추운 지역이라 감나무가 살지 못한단다. 심어도 추위에 얼어 죽고 만다는 설명이다. 이웃의 설명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3년 전, 살림을 차린 시골집에 감나무를 심었다. 사람 키 정도의 감나무를 구입해 화단 끝부분에 정성 들여 심어 놓았다.
추워서 감나무가 되지 않는다는 이웃들의 만류를 거역하고 감나무를 심은 것이다. 첫해에는 간신히 감나무 잎이 나오면서 감나무 모습을 보였지만 꽃은 구경도 못하고 한 해를 보냈다. 감나무 잎이라도 보았으니 다행이라는 위안으로 겨울을 맞이했다. 두터운 겨울옷으로 무장시켰다. 칼바람에 눈보라가 와도 끄떡없는 옷을 입혀 놓았다. 이듬해에 감나무는 보답이라도 하듯이 싹을 밀어냈고 잎을 넓혔다. 혹시나 꽃이 피는지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바라봐도 감나무는 전혀 기색이 없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두터운 겨울옷으로 재무장을 하고 올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지의 힘을 얻은 감나무는 싹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실망시킨 감나무, 추운 지역이니 기대할 수가 없었다. 무심하게 보낸 감나무는 잎을 불리고 가지를 덮을 정도의 잎이 가지를 가리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지만 흔적이 없기에 포기하고 푸르름만 즐기기로 했다. 넉넉한 잎사귀가 이슬을 맞고 햇살에 반짝이는 것이 아름답기만 했는데, 어느 날 감나무를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아내를 큰 소리로 불렀다. 감나무가 어느새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에 네 개의 꽃이 필 준비를 한 것이다. 아내가 순식간에 달려와 기뻐한다. 아내에게 알려주자 두리번거리더니 한 개를 또 발견했다. 합해서 다섯 개의 꽃이 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감나무는 배신하지 않았다.
시골집에 심은 감나무가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엔, 감나무를 바라보며 무심히 즐거워함이 전부였다. 감이 열리고 붉게 익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매년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시골집 잔디밭에 심어 놓은 작은 감나무에 달린 감이 다를 리가 없다. 언제나 그 감일 것이고, 아직은 꽃이 필 모양만 갖춘 감나무이다. 그것을 보고 다 늙어가는 사람들이 좋아라 박수를 친다. 아침, 저녁으로 감꽃이 잘 있는지 찾아보며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널따란 잎에 숨어 있는 꽃을 찾으려 오늘도 고개를 숙인다.
왜 그럴까? 어째 몇 개의 감꽃으로 감격하고 눈물겨워할까? 감의 흔적만 있는 다섯 개의 감꽃이 무엇이기에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아직은 꽃필 준비만 하고 있는데 그리 좋아함이 우습기도 하다.
바쁘게 살아온 적지 않은 세월, 이제는 지난날의 추억이 한없이 그리운 것이다. 보잘것없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새롭고, 하나씩 차근차근 끄집어 내 보고 싶은 것이다. 기억 저편 구석에 꼬깃꼬깃 숨어있는 붉은 감에 대한 기억을 꺼내고 싶은 것이다. 깊은 기억 속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아름다운 꿈이 있다. 그리운 어머니가 있고, 보고 싶은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아름답고도 그리운 추억이 숨어 있다. 오늘도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붉은 홍시를 꺼내고 싶어 작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감격해한다. 아기 감이 붉게 물들어 가물가물 까치밥이 달린 파란 하늘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