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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27. 2021

새벽부터 볶음밥이 타고 있다.

(시골살이의재미, 아침나절 시골풍경)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새벽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상쾌함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안개가 찾아왔다. 시골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왔다. 앞산에는 물론이고, 작은 도랑에도 그리고 잔디밭에도 내려왔다. 조금은 답답해도 푸근함을 안겨줌에 고마운 안개이다. 잔디밭에 내려 거미줄을 봐야 하고, 안개도 봐야 한다. 시원함에 발길이 끌리는 대로 옮겨간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운동을 하고 있다. 근래에 발목이 시원치 않아 병원을 오고 갔는데, 오늘은 걷기가 괜찮은 모양이다. 깊은 안도의 숨을 쉬며 내려선 잔디밭, 어디선가 음식 타는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지? 맛을 음미해 보니 김치볶음밥이 타는 냄새 같다. 이웃집에서 아침부터 밥을 볶다 태우나 보다. 아침부터 밥을 볶아 먹나? 괜스레 호기심이 생긴다. 아내도 운동을 하다 냄새를 맡았나 보다. 코를 벌름벌름하더니 어느 쪽인가를 가늠한다. 아래 이웃집인 듯하단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이웃이 새벽을 열고 나온다. 작은 동네라 아침에 나오면 모두 만날 수 있다. 이웃도 발길이 바빠졌다. 음식이 타는 냄새를 찾아 나선 것이다. 득달같이 이웃집으로 내 달린다. 감출 것도 없고 속일 것도 없는 시골 동네이다.

안개가 앞산에 내려왔다.

누구네 보일러에 기름을 얼마에 넣었고, 화목 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꾼 일도 안다. 훤이 들여다 보이는 이웃들의 살림살이다. 어제는 이웃집에 보일러를 교체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동네가 한동안 시끌시끌했기 때문이다. 헌 보일러를 가져가기 위해 고물장사가 오고, 기름보일러를 설치하러 여러 대의 차량이 왔기 때문이다. 화목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어야 했단다. 장작을 패는 일도 어렵지만, 장작용 나무를 구하는 일이 더 어렵단다. 시골에서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다.


보일러를 바꾸는 이웃 덕에 동네가 시원해지기도 했다. 보일러를 실러 온 고물상 주인에게 갖가지 고물을 주며 창고를 비웠기 때문이다. 갖가지 고물을 넘겨주어 시원하단다. 시골 동네라 갖가지 물건을 치우기도 편하지 않기에 모두가 좋아한다. 겨울이면 이웃에서 장작을 패고, 쌓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올해부터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겨울마다의 정취였는데 아쉽기만 하다. 이웃이야 힘이 들었겠지만 뒷짐 쥐고 바라보는 이웃은 한껏 시골의 정취를 느꼈었다. 나무 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도 일품이었다.

칠자화가 꽃을 피웠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가끔은 바람 덕에 맡는 냄새가 매캐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 따라 일렁임이 아름답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겹기도 했었다. 오래전 추억이 되살아 난다. 초가지붕 위로 솟아 오른 굴뚝, 하얀 연기가 올라간다. 밥을 짓기 시작했고, 군불을 지핀다는 소식이었다. 가끔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린다. 뚫어! 굴뚝 뚫어!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장작 패는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아쉽지만,  장작 패는 모습이 힘겹게도 보였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하는 살림살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냄새의 원인을 알아냈단다. 이웃집에서 고추 멸치 볶음을 하다 태우고 말았단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내놓은 프라이 팬에서 나는 냄새란다. 새벽부터 동네를 뒤덮은 냄새의 주인공을 찾아낸 것이다. 겹겹의 세월을 탓해야 무엇하겠는가? 불타는 냄비를 잊어버리고, 무엇을 찾았는지 금방 또 생각해야 한다. 아래층엘 왜 내려왔는지가 궁금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간다. 기어이 기억해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한다. 세월을 먹고 나니 신세가 고달프다. 팔과 다리가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가끔은, 서글퍼짐이 사람인가 보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이다. 아침나절 한바탕 냄새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도 세월의 탓이려니 한다.

가을이다. 벼가 익어간다.

작은 동네에 살고 있는 재미이다. 냄새가 이웃으로 넘어가고, 이웃집에서 넘어온다. 이웃이 벌을 쏘였다며 조심하란다. 벌집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결할까를 같이 고민한다. 고구마 줄기가 한 주먹 담을 넘었다. 굴비가 두 마리 또 넘어왔다. 그렇게 오고 감이 쉼이 없는 시골이다. 가끔은 비밀이 없어 보여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 거기서 거기인데 감추고 살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마음이 편한 시골에 살고 있으니 볶음밥이 타도 상관없고, 멸치 볶음이 타도 상관없다. 가끔은 잠깐 정신줄을 놓아도 걱정 없다. 잊었으면 다시 생각하면 되고, 못했으면 또다시 하면 되는 삶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편히 살 수 있을까? 싫은 일, 구질구질했던 일들을 모두 안고 살 수 있었을까? 가끔은 잊고 또 잃어버리면서 사는 헐렁한 삶이 되어 가고 있다. 서로 내놓고 살아도 부담스럽지 않고, 서로 믿고 살아감이 편리하기도 한 시골살이이기에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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