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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30. 2020

시월의 마지막 밤

(열한 번째 색소폰 연주회, 쿠바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리)

가을, 낙엽, 시월의 마지막 밤,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게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우연히 지나는 길에 떨어진 낙엽을 보며 울컥해지기도 하고, 벌써 한 해가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잠기게 하는 10월의 끄트머리이다. 이 즈음이 되면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매년 개최되는 '가을 음악회'이다. 오래전, 정확히 10년 전부터 시작하게 된 색소폰 동호회의 '가족 음악회'를 이 계절이 열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 가고 있는 음악회이기에 남다른 감회와 가을을 생각나게 하는 행사이다. 


색소폰 동호회 회원은 음악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포함해 정확히 15명이다. 연령층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며 거기에 생각은 제각각이니 한 동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가족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데 직업이 다르고, 성장해 온 배경이 다르며,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가끔은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동호회 회원들은 스스로 분위기에 스며들며 잘 어우러지는 사람들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 독특할 것 같지만, 대부분은 부드러우면서도 잘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독특한 사람들은 얼마 있지 못하고 동호회를 탈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호회에 입단하는 사정은 다양하고도 제 각각이지만 같은 소리로 음악을 한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모든 사람들이 한 악기 정도는 다룰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대부분은 감히(?) 도전을 못하는 것이다. 우리 동호회는 30평 정도의 지하를 전세 내어 회비로 운영하고 있다. 전문 음악지도자가 지도를 하고, 회원들이 서로를 알려주면서 실력을 키우고 있는 동호회이다.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음악실이 있어 수시로 문을 열고 연습을 할 수 있다. 회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음악실 밖에는 간판을 걸고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다. 전화번호를 통해 많은 전화가 온다. 여러 가지를 묻곤 하지만 대부분은 망설이다 포기하고 만다. 물론 음악의 기초도 모르고 시작했던 나이지만, 나도 처음에는 수없이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 하지 못하면 평생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과감하게 시작을 했다. 연습할 곳이 없어 산에 올라서 하기도 하고, 노래방을 전세 내어 연습하기도 했다. 음악에 기초도 없고, 연습할 공간도 없으니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 않으면 평생 생각만 하다 마는 꼴이 되지 않는가?

동호회원들의 야외 연주회

음악실이 술집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그 부근에 위치해 있다. 방음장치를 해 놓았어도 소리는 새어 나가게 되어 있다. 소주 한잔 걸치고 지난 길에 만난 색소폰 소리는 그럴듯하다. 거기에 묵직한 테너 색소폰 소리는 발길을 잡아 놓기에 충분하다. 가끔 만나는 소프라노 색소폰 소리도 숨을 멎게 한다. 10여 명이 어우러지는 소리는 가는 손님들을 지하실로 내려오게 만들어 준다. 술김에 소리에 이끌려 찾아와 심각하게 상담을 한다. 하지만 이튿날 술이 깨고 나면 쑥스럽게도 포기하고 만다. 그럼에도 많은 용기를 내어 모인 동호회원들은 일 년간 합주와 개인곡 연습을 한다. 일 년을 노력해서 시월 말쯤에 음악회를 실시하기 위함이다. 초청 대상은 친척과 친지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인원은 대략 150명에서 200명 정도로 한다. 가끔 결혼식에 초대되어 축하연주를 해주면 엄청난 호응을 받기도 한다. 각종 색소폰 경연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올해는 운이 좋아 시에서 운영하는 대형 공연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장소를 대여하는 과정도 상당히 힘에 겹다. 공연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해서이다. 어느 해인가는 같은 날에 10 동호회가 신청을 하여 제비뽑기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는 증거 이리라. 하지만 올해는 서류심사를 통해 선정되어 이제 우리 동호회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날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지도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합주 여섯 곡과 앙코르곡을 따로 준비했다. 그리고 회원들이 독주와 듀엣을 준비하여 진행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음악회를 준비하는 과정도 힘에 겨운데, 올해는 코로나 19라는 복병이 나타나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방역 기준이 조금 완화되어 음악회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고 싶은 회원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긴장 속에 음악회를 준비하였다. 장소를 물색하고, 일 년 내내 연습을 하며 인쇄물을 만드는 노력으로 이제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초청인원도 100여 명으로 한정되고,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 발열 체크와 설문지 작성, 마스크와 장갑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거리도 일정한 간격을 지켜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음악회가 끝나면 찾아온 손님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저녁 식사를 대접했었다. 올해는 식사는커녕, 마실 수 있는 물도 허용되지 않아 간단한 기념품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올해가 벌써 열한 번째인데, 그동안 동호회를 꾸려가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동호회인지라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언제나 열심히 나오던 회원이 마음이 바뀌어 갑자기 짐을 싼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려고 모인 동호회인데도 그렇다. 서로 존중하면서 음악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데 생각은 다르다. 어느 날 보면 악기를 가지고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연말 음악회를 거창하게 준비하여 연주를 한다. 그러곤 짐을 싸서 나가 버린다. 참, 어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생각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을까? 그래서 우리의 정치를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한다. 자그마한 동호회 회원들도 이렇게 생각이 다른데 그들은 어떨까? 자기가 좋아서 찾아온 동호회, 음악이 좋아서 하는 동호회인데 그렇게 박절할 수가 있을까? 참,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누누이 해본다.

10여 명의 동호회원들이 매주 또는 매일 만나 연습을 하는 모습은 너무 좋다. 좋아하는 악기가 매개가 되어 친목을 도모하고, 가끔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좋다.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어 주는 모습이 좋다. 가끔은 먹거리를 듬뿍 가지고 오는 회원도 많고, 계절에 따라 각종 야채를 골고루 싸서 나누어 준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 일까도 생각되지만, 회원들을 위해 정성껏 마련해 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온다. 음료수를 가득 준비해 오기도 한다. 음악실을 스스로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손수 하며 수돗가를 깨끗이 정리해주는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이런 회원들이 있어 어렵지만 음악회를 위해 일 년의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드디어 일 년의 마지막 행사인 연주회가 다가왔다. 


힘겨운 코로나 19를 뚫고 연습을 통해 연마한 연주회를 <시월의 마지막 밤>에 열게 되었다. 연주곡은 합주곡 7곡과 개인 및 듀엔 곡이 10여 곡이니 대략 한 시간 반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서막은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CBS에서 방영된 TV시리즈 주제곡, Hawaii Five-O이다. 이용의 <잊힌 계절>이 시월의 마지막 밤 연주회의  마지막 곡이다. 


같은 악기로 긴 시간을 보여 준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되어 몇 년간 연주를 양보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곡을 연주해 볼 생각이다. 고심 끝에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영화 <미션>의 주제곡, Nella Fantasia를 연주해 볼 생각이다. 그동안 연습해온 실력을 보여줄 생각이지만, 늘 걱정은 남의 앞에 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잘해 보려고 한다. 


매년 연주회를 주관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며 하고 있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고, 커다란 무대에서 한 번쯤 연주해 보고 싶은 음악이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음악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어설프지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층 서재 컴퓨터에 반주 프로그램을 설치해 놓고, 옆에는 늘 색소폰이 놓여 있다. 어젠, 이문세의 <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가을답게 연주해 보기도 했다. 시골집이라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좋다. 오늘도 시월의 마지막 날 음악회를 위해 음악실로 서둘러 가야만 한다. 그렇게 시월의 마지막 날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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