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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16. 2021

언뜻 생각에 古稀가 가까이 있었다.

(아침에 만난 생각, 티베트에서 만난 간절함)

아침에 언뜻, 몇 살인가 궁금했다. 내가 몇 살이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살았지만 왠지 궁금했다. 생년월일을 생각해 보니 古稀에 근접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 무엇을 했는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잔디밭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내리쬐는 햇살이 한없이 맑아 보인다. 푸른 숲에서 튀어나온 햇살은 맑아 눈물겹다. 햇살 따라 날아가는 산새들이 삶의 희열을 준다. 새로운 봄을 다시 맞이하는 느낌이 아닌가? 아내에게 남도로 봄 나들이나 가자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 후, 아내가 선뜻 따라나선다. 언제나 고마운 아내이다. 서둘러 찾아 나선 곳은 지리산에 안겨있는 산청이었다. 웬 산청?


산청,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군 단위 도시이다. 동쪽으로는 합천군과 의령군에 접해 있고,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진주시와 하동군에, 북쪽은 거창군과 접하고 있는 동네이다. 산청을 찾아가는 이유는 지리산에 안겨  왠지 친근함을 주어서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과 삶의 역사가 숨어 있는 지리산,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남원시 인월면을 통해 실상사를 찾기도 하고, 구례를 통해 섬진강과 화개장터를 찾기도 한다. 지리산은 언제나 푸근함과 고즈넉함이 있기 때문이다. 실상사를 지나 노고단과 구례 화엄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부름이 산뜻하고, 들림이 상쾌한 산청은 지리산이 품고 있다. 산청을 자주 찾아가는 이유이다.

산청 아름다운 절, 수선사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시골집은 아직 녹음이 어설프다. 남쪽으로 갈수록 녹음은 짙어갔다. 점점 진한 녹색이 되어간다. 작은 나라에서도 이런 변화가 신기했다. 함양에 이르자 햇살은 훨씬 풍부해졌고, 덩달아 산은 푸름으로 가득했다. 멀리서 지리산이 넘실댄다. 언제나 푸근하고 그리운 지리산이다. 푸름을 주고 넉넉한 먹거리를 주며, 언제나 안락함을 주는 지리산이다. 두 시간여를 달려 산청에 도착했다. 시내에도 봄이 가득 왔다. 그리고 지리산도 가득 내려왔다. 나물이 내려왔고 사람이 내려왔으며 녹음이 내려왔다. 봄과 지리산이 내려와 잘 어울리는 동네이다. 조용한 동네 산청을 지나 가끔 찾는 수선사를 찾았다. 조용하고도 한적한 절집이다. 아침이라 그런지 찾은 사람이 적다. 고즈넉한 절집 풍경이다.


수선사는 지리산 웅석봉 아래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찰이다. 전통문화와 현대적인 감성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집이다. 가끔 찾아도 신선함을 늘 간직하고 있다. 연못과 정원이 잘 어우러져 마음마저도 선해지는 곳이다. 절집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전경은 긴 호흡을 멎게 하는 풍경이다. 연못에는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사찰에 잘 어우러지는 찻집도 있다. 아내는 절집에 들러 절을 한다. 언제나 절집에선 절을 한다. 무슨 생각으로 절을 할까? 가끔 손녀도 동행하면 절을 한다. 시키지 않아도 한다. 무엇으로 알고 절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손녀가 기특하기도 했었다. 오늘따라 절을 하는 아내를 유심히 바라본다.


나도 한 번 해 볼까를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절을 하다 하염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서이다. 눈물이 흐르면 어떨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먼 지리산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찻집을 향했다. 생강차와 대추차를 주문했다. 신선한 지리산 바람에 묻혀 앉았다. 한참을 앉아 바라보는 지리산은 변함이 없었다. 내 마음은 가눌 길이 없다. 벌써 고희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단다. 한 일도 없는데 벌써 그리 되었단다. 태어나서 한 일이 무엇인가? 아이들한테, 아내한테 해 준일이 없다. 쓸데없는 걱정만 하다 나이만 먹고 말았다. 괜히 허송세월 한 기분이다.


변함없는 지리산에 눈길을 주며 왠지 허전함에 서성인다. 오랜만에 전통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참견을 한다. 세상 물결에 깊이 젖어 있는 전통시장을 얼른 벗어나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찾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지리산이 품은 갖가지 나물이 맛깔스럽다. 각종 나물로 밥상이 가득하다. 된장국에 각종 나물로 허기를 메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청에 오면 꼭 가는 길이다. 고속도로를 가능하면 피한다.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산청에서 마천을 지나 남원시 인월로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는 언제나 녹음이 무성하고, 길이 잘 가꾸어져 있다. 길 옆으로는 붉은빛의 꽃잔디가 가득하고, 곳곳에 영산홍이 붉은빛으로 갈아입었다. 계절 따라 다양한 색깔로 길손을 기쁘게 해주는 길이다. 푸름이 넘쳐흐른다. 그곳에도 인간의 조형물이 앞을 막는다. 곳곳에 뜬금없이 있다. 동의보감촌이라는 곳도 있다. 늘 지나치며 거들떠보지 않던 곳이다. 아내가 궁금하다는 말에 동의보감촌으로 향했다. 역시 생각했던 곳이었다. 각종 음식점과 상점으로 가득한 상점의 모임이다. 음식을 파는 각종 상점도 있고 한의원도 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는 중이다. 한 가족이 구경을 하며 지나간다.


부모님과 딸 내외가 여행을 온 모양이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는 따라가는 길이 힘에 겹다. 앞서 가던 딸이 이야기한다. 불편한 곳이 있으면 진찰받아 보라고. 뭐라고?  우선은 다리가 불편하시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저 정도의 연세에 불편한 곳이 한두 군데일까? 상관도 없는 여행객의 쓸데없는 걱정이다. 딸의 건네는 소리가 건성으로 하는 듯해 마음으로 참견해보는 소리이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다. 쓸데없는 걱정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남원시 인월로 향하는 길은 오늘도 신이 난다. 곳곳에 물이 흐르고 지리산 녹음이 곳곳에 내려왔다. 인적이 드물어 좋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더 좋다. 곳곳에 푸름이 가득하다. 흐르는 물도 왠지 정겹게 다가온다. 인월면에 가까워지자 은행나무가 보인다. 가을이면 멋진 그림을 주는 곳이다. 자그마한 새싹이 은행나무를 초록으로 물들였다. 흐르는 냇물과 잘 어우러진다. 위쪽으로 지리산이 굽어보는 절경이다. 대단한 그림이다. 언뜻 이정표가 나타난다. 어디쯤인가 생각하는 사이, 보이는 것은 실상사였다. 벌써 지리산 실상사에 도착한 것이다. 자연에 반해 먼 길을 벌써 온 것이다. 오랜 된 사찰 실상사로 향했다.

수채화, 석양을 받은 파도

쓸데없는 나이만 들어 입장료도 받지 않는단다. 좋기도 하지만 서글프다. 예전에는 길가에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두 분만 계신다. 돌아가셨는지 빈자리에 마음이 불편하다. 도랑에는 물이 가득 흐른다. 지리산이 품어내는 맑은 물이리라. 절집에 들어서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템플 스테이를 하는 중인지 차량이 많다. 절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편안한 실상사이다. 높은 언덕을 오르는 절집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절집이기 때문이다. 한적한 지리산이 흘러 평지가 되었다. 넉넉한 평지에 사찰이 자리했다. 마음이 편하다.


절집을 둘러보다 발길을 멈추었다. 절집 앞을 지나다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춘 것이다. 산행을 마친 듯한 여인네가 절을 하고 있다. 맨 땅에 엎드려 절을 한다. 한참을 엎드려 하는 절이 그렇게도 간절해 보인다. 한참을 바라봐도 그칠 줄을 모른다. 땅바닥에 대고 하는 기도가 처절하리만큼 진지하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했을까? 고희에 근접한 객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는 객도 간절한 한이 남아 있는가 보다. 고희의 객은 무엇이 간절해 아침부터 이 먼길을 달려왔을까? 덩달아 궁금해하는 여인의 생각이다. 천천히 절집을 벗어나 길을 재촉한다. 곳곳에 지리산이 자리했다. 언제나 푸근한 산자락이다. 


인월을 벗어나 집으로 오는 길, 천상 고속도로를 택해야 했다. 쓸데없는 나이 생각에 한 나들이였다. 다시 돌아가 일상에 머물러야 한다. 한참을 달렸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 이렇게도 빨리 차를 몰아야 할까? 잠시도 쉼이 없이 달려온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희의 삶도 그렇지는 않았을까? 또 쓸데없는 걱정이다. 어느새 생활터전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언제나 푸근함을 안겨주는 시골집이다. 뜨락엔 아직도 햇살이 남아있다. 엊그제 심은 상추와 곰취가 나풀거린다. 싱싱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손녀가 심은 수선화가 노란색 꽃을 피웠다. 옆에는 튤립이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치장을 했다. 금낭화가 붉은빛으로 낯을 붉힌다. 순간, 古稀라는 단어가 낯설어진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바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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