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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0. 2022

고희(古稀)의 청춘은 다시 또, 도전하는 삶이다.

(고희를 걸어 가는 인생, 가을에 만난 풍경)

아내와 함께 먼 동해안 여행길에 올랐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들러 닭갈비를 만나고, 인제 용대리로 길을 잡았다. 겨울이면 늘 찾아가는 여행지 중에 하나다. 용대리의 황태 덕장의 겨울 추억을 안고 진부령을 넘어 고성 바닷가로 향한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진부령 고개, 여기가 동해안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동해의 푸름을 만났다. 위대하고도 대단한 동해의 짙푸른 파도를 만난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내와 함께한 수채화 소재를 찾아 나선 길이다. 수채화의 소재는 늘, 계곡의 힘찬 물줄기와 파도가 넘실대는 푸르른 바다였다. 고성 백섬의 위대한 파도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몇 해전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자전거로 달렸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푸른 파도가 있고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동해안 7번 국도 길이다. 


자그마한 뒷동산으로 둘러싸인 초가지붕 위로 커다란 감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긴 가지가 초가지붕을 바라보고 있고, 뒤 울 밤나무가 초가집을 지켜준다. 밤나무 밑으로 자리한 소박한 장독대, 어머님의 놀이터요 삶의 터전이었다. 장을 담그고 둘레엔 화단을 만들어 고된 삶을 쉬어가는 곳이다. 빨간 채송화는 소박했고 분홍 분꽃은 봄을 전해주곤 했다. 감나무에 파릇한 싹이 돋아 나올 즈음이면 어머니의 고된 삶이 시작된다. 자그마한 텃밭 농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봄이 무르익어 갈 무렵, 조팝나무가 꽃을 피우고 찔레가 꽃을 달았다. 동네 벌이 바빠질 무렵이면 아버지의 고단한 삶도 시작된다. 못자리를 해야 했고, 모를 심어 삶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타작을 해야 하는 일 년의 수고는 땀으로 얼룩진 고단함이었다. 

동해가 내준 환상의 파도

20여 년 부모님의 고단함을 먹고 자란 철부지는 출세를 해야만 했다. 농사의 고단함이 자식만은 안된다는 당신들의 고집 때문이었다. 어려움 속에 입학한 사범대학, 등짐으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의 소원이셨다. 평생 학교 선생을 원하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원만 풀어드리려 했던 사범대학에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고시를 기웃거리고 유학을 고민하던 사이에 친구 따라 강남을 간 것이다. 순수함을 무기 삼아 야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미취학 아동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칠 장소는 구걸하다시피 하여 빌린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심훈의 상록수 속 촛불과 남포 불이 등장했다. 남포 불을 달아 놓고 가르치는 눈물겨운 야학이었다. 가르치고 싶은 '가르침'이었고, 배움에 목마른 '처절한 배움'이었다. 2년의 야학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한 학업이었다. 야학의 짜릿함은 자연스레 가르치는 길로 인도했고 평생을 해온 일이 되었다.


아버지 소원풀이, 학교 선생이 되었다. 가르치는 일이 소중했던 30여 년의 세월, 아이들과 공감하는 짜릿함의 세월이었다. 가르침이 있고 배움이 있었으며, 서로의 믿음이 있었다. 적은 보수에도 견딜 수 있었던 소중한 삶의 재산이었다. 30여 년의 가르침 속에 만난 아이들은 오래전 야학에서 느낀 즐거움이었다. 순수함이 있었고 살아감의 재미를 주는 30여 년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더 흘러 만난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의 존재를 부정했고, 가르침이 필요 없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허덕거리는 가르침은 점점 힘을 잃어갔고, 삶의 존재가 휘청거리는 하루하루였다. 사교육 앞에 가르침은 어설픈 손짓이었다. 가르침의 설 곳이 없었던 현장, 버틸 여력이 없어 '명예퇴직'이라는 '현실도피'를 하고 말았다. 정말로 허망했다. 어찌 이런 세월이 됐단 말인가? 이제는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된 것이다. 오랜 가르침의 세상을 뒤돌아 보며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소중한 나의 집

가르침의 즐거움과 밝은 웃음이 사라진 제2의 삶,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갑자기 갈 곳이 없는 현실은 사막에 홀로 남겨진 심정이었다. 수없이 들려오는 실직의 세계는 남의 이야기인지 알았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주어진 일이 불만스러웠지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나의 인생은 내가 해결해야 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나만의 삶이었다. 어떻게 살아갈까? 수많은 생각과 방황 끝에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기로 했다. 절실하고도 처절한 삶, 이젠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바삐 살아온 30여 년은 일에 얽매이고,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삶이었다. 살아온 삶을 되짚어가며 남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삶에 지친 시간 속에서도 나의 삶을 지키고 싶었었다. 가능하면 아이들과 같이 있으려 여행을 했다. 배낭을 메고 수십 나라를 틈틈이 드나들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새벽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마라톤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골 생활에서 맛볼 수 없었던 악기를 다루고, 그림 그리는 일에 늘 궁금했다. 언제나 남의 일이었고 부자들의 놀음이라 생각했던 일이었다. 십수 년 전에 시작했던 색소폰 연주, 그간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접어 두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라온 어린 시절, 남들이 하는 그림이 무엇인가 궁금했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그림에 복수를 하고 싶어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수채화가 있었다. 가르침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나의 삶을 포기할 수 없어 해온 소중한 일들이다. 하루의 시간을 분단위로 나누어 살면서 해온 일들이다. 사막에 홀로 남겨진 나의 삶을 메워 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었다. 또 한 가지, 은퇴 후에는 내 삶을 만들어 줄 공간이 아쉬웠다.

자연이 주는 선물

혼잡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삶을 즐길 수는 없을까? 오래전부터 해온 전원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도시를 떠나 조용한 삶의 보금자리, 자식들이 좋아 찾아올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싶었다. 수년 전부터 시골을 오가며 물색한 전원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다. 운동 겸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려운 도전이 또 시작된 것이다. 수없이 찾아 나선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끊임없는 다리품과 노력은 넉넉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아담한 골짜기에 만들어진 보금자리, 꿈같은 전원주택을 마련한 것이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나의 삶을 그릴 일상을 서서히 준비해 나갔다. 수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삶의 방향이 그려지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은퇴 후의 삶, 제2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새벽에 하던 운동을 조금 늦게 시작했다. 늦잠의 여유를 부리는 삶을 만든 것이다. 마음 놓고 늦잠을 누리는 아침은 너무나 행복했다. 하루를 계획하고 서둘러야 했던 일들, 늦잠을 누려 볼 수 없는 삶이었다. 여유롭게 일어나 운동이 끝나면 소중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무엇인가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삶이 담긴 블로그를 접고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도전 끝에 추천받은 브런치 작가, 오전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다. 몇 날을 쓰고 퇴고를 거쳐 글을  발행하고,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다. 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브런치의 글, 부족함을 채우며 좋은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했다. 조용한 전원에서 커피 한잔을 두고 책을 읽는다. 전원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 거기엔 자연과 어울림이 있어 행복하다. 채소를 기르고 잔디를 가꾸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과의 어울림에 정신 줄을 놓고 만다. 

색소폰 동호회 연주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과 어울리며 나물을 뜯고, 피는 꽃을 보며 자연을 벗 삼는다. 친구와 친지들을 불러 골짜기의 신선함을 함께 즐긴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다. 시간에 쪼들려 미뤄왔던 색소폰 연주다. 자그마한 음악실을 만들어 아내는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동호회원들과 일 년간 준비한 연말 연주회를 하고, 가끔 결혼식 축하연주에 출연하기도 한다. 무한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수채화가 있다. 아내와 동행하는 수채화를 배운지도 10여 년이 되어간다. 소재를 찾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나서고, 덩달아 여행은 기본이 되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찾아 나서는 수채화 소재, 덩달아 멋진 먹거리는 덤으로 얻는 삶이 되었다. 동해안을 자주 찾아가는 이유 중에 하나로 수채화 소재를 찾아 나선 길이다. 무모한 도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할 수채화 소재를 얻기 위한 여행으로 동해안을 잡은 것이다. 


오래전엔 고희(古稀)라는 세월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너무도 바쁘게 살아온 삶이었다. 은퇴 후를 전혀 생각지도 않고 생활해 온 삶이었다. 은퇴라는 것은 남이나 하는 일인지 알았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삶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고, 나를 믿고 따라오는 아이들이 한없이 고마웠고 감사했다. 어디서 이런 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대학시절 야학시절부터, 은퇴를 꿈꾸기 전까지의 삶은 잊지 못할 삶이었다. 세월이 변해 끝까지 하지 못한 현실도피가 아쉽지만, 나름으로의 노력을 다한 명퇴였다. 바쁜 살아감 중에 취미 삼아 해온 일들이 삶의 중심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만이 살아가며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어울림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전거와 산행이 있다.

수채화를 만난 파도

건강을 다지며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자전거다. 평생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준비했다. 맑은 공기를 친구 삼아 어울리는 자전거,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주는 놀이다. 가까운 교외를 나가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가끔은 먼 길을 나서기도 한다.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를 향해 7번 국도에 올랐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낙동강을 따라 부산으로 내 달린다. 남한강과 북한강을 따라나서기도 하고, 남도의 맛을 찾아 섬진강을 따라 흘러가기도 한다. 이 맛을 어디서 느낄 수 있는 고희의 청춘들인가? 날렵한 자전거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달랐다. 시원한 강바람과 어울리는 삶을 어디서 누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가끔 찾아가는 산행도 떨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친구들과의 어울리며 주변의 산을 찾는다. 산을 오르내리고 즐거운 식사로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또 글을 쓴다. 가끔은 라디오에도 글을 보내는 즐거움도 있다. 아는 사람이 연락을 한다. 내가 쓴 글이 라디오를 통해 여러번 들었단다.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글도 쓸 줄 안다며 깜짝 놀란다. 결혼식장에 온 축하객이 색소폰 축하 연주를 보고 깜짝 놀란다. 연말 색소폰 연주회 초정장을 받아보고, 수채화 전시화 초대장에 정말이냐 묻는다. 그림을 그리러 아내와 화실을 드나들고, 동호회원들과 어울려 색소폰 연주를 한다. 일 년간 준비한 수채화는 전시회를 열고, 각종 공모전에 출품을 하는 즐거움도 있다. 조그마한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심고, 골짜기를 누비며 나물을 뜯는다. 야채를 심어 친구들과 나누고, 나물을 뜯어 맛깔난 식사를 대접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색소폰 연주로 지루함을 달래며, 아름다운 나의 집, 풍류정(風留亭)에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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