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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27. 2022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한 골짜기다.

(아침에 만난 골짜기 풍경, 가을 거두다)

태풍이 한바탕 굿을 하고 지난 골짜기는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간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음이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골짜기다. 잔잔한 도랑 물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이어진 가을은 어김없이 지난해를 닮아간다. 휑하던 논두렁이 그득해진 골짜기에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안개가 산을 덮었다. 앞 산엔 뿌연 안개가 유연하게 유영을 한다. 저렇게 한가로울 수도 있구나! 가을이면 언제나 가득 해지는 안개가 여기엔 계절이 구분 없다. 골짜기는 온도가 낮아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는 이슬점 온도에 쉽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바쁜지 안개도 서두른다. 잠시 더 보여주면 좋으련만 산 허리를 휘돌아 매정하게 산을 넘어 버렸다. 


서둘러 나선 잔디밭엔 갖가지 벌레들이 인사를 한다. 땅개비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텃밭의 배추를 그냥 두지 않는 땅개비다. 멀리 쫓아내려 하지만 한 두 마리가 아니다. 거미는 벌써 곳곳에 하얀 그물막 설치예술을 끝냈다. 이슬을 먹고 반짝이는 거미줄은 환성적인 예술품이다. 개구리가 놀라 달아나고, 가을 손님 귀뚜라미도 나살려라하며 줄행랑이다. 아내는 벌써 가을, 겨울에 마실 꽃차를 준비 중이다. 널따란 채반에 메리골드 꽃을 말리고 있다. 도랑가에 심어 놓은 메리골드다. 맑은 주황색 꽃이 햇살에 말라 가는 모습에 가을을 실감한다. 오래전 어머니가 말리던 고추 대신, 아내가 꽃을 말리고 있다. 은은한 향이 우러나며 풍기는 맛은 혀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안개가 찾아왔다(서재 앞 산 풍경)

마당 끝엔 꺽다리 코스모스가 꽃을 피웠다. 분홍에 빨강 꽃까지 피워 잔디밭을 호령하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꽃범의 꼬리와 어울리고, 뜬금없이 피어난 붉은 병꽃과 한 무리되어 가을을 노래한다. 앞산의 녹음은 짙어질 대로 짙어 검푸름으로 변했다. 계절을 서두르는 벚나무 잎은 벌써 붉은빛이다. 뭔 할 일이 그리 많아 서두르는지 야속하기도 하다. 더 깊숙이 앞산으로 들어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앞산이다. 아직 덜 익은 밤송이가 수북이 떨어졌다. 커다란 잣나무도 피할 수 없어 덜 읽은 잣이 수북하다. 야속한 힌남노의 심술이다. 굵직한 밤이 더 익어 하품하는 날, 가을은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큼직한 밤송이가 입을 벌리며 커다란 알밤을 뱉어주는 앞산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떨어진 풋 밤송이가 안타깝다. 태풍 탓에 어설픈 밤의 계절이 돌아왔다. 간간히 큰 알밤이 뒹굴고 있지만 아직도 세월이 필요했던 밤송이다. 아내와 비닐봉지를 들고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여기저기 푸른 밤송이 옆에 붉은 알밤이 떨어져 있다. 굵직한 알밤이 탐스럽지만, 덜 익은 밤송이가 수북함에 마음이 아프다. 조금만 더 참아 주었으면 튼실한 밤톨이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잠깐 동안 주운 밤이 비닐봉지에 그득하다. 천혜의 골짜기임을 늘 실감하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봄부터 길러주는 갖가지 나물이 있고, 여름내 주는 시원한 바람이 있다. 갖가지 나물을 비롯해 아낌없이 주는 골짜기는 주는 것이 너무 많다. 

밤의 계절이 돌아왔다.

산 식구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고, 봄철이면 나물을 길러내며 여름내 그늘과 바람을 안겨준다. 연초록이 변해 검푸름으로 되고 다시 가을로 들어가는 모습은 신비스럽기도 하다. 자연의 힘에 감사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인간임을 실감하는 골짜기다. 아내와 함께 주운 밤이 튼실하다. 가을임을 알려주는 앞산의 은혜이다. 가끔 찾아오는 주인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서둘러 밤을 줍고, 시간 나는 대로 주워 먹으라 하시던 할머니다. 어디가 편치 않은 신가?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아침이다. 서둘러 밤 봉지를 들고 돌아오니 왠지 뿌듯한 마음이다.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릴 것인가? 어디서 감히 앞산에서 밤을 줍는 기회가 있단 말인가? 오래 전의 기억이 떠 오른다.


밤나무가 수두룩하던 윗집은 할아버지 댁이었다. 만만치 않은 작은 할머니는 무섭기도 했지만, 욕심이 많으셨다. 뒤 울로 빙 둘러 있는 밤나무 밑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붉은 홍시가 그득해도 감 한 개를 나누어 주지 않으셨다. 왜 그랬을까? 어린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상처다. 여름이면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고, 가을이면 밤이며 감이 넘치는듯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귀한 먹거리지만 바라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왜 그렇게도 모질게 하셨을까?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도 무정하셨을까? 아내와 굵직한 밤톨을 보며 오래 전의 아픔을 기억해 낸다. 다 쓸데없는 일이었지만, 아직도 가슴에 푸른 멍은 가시지 않았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텃밭으로 향했다. 가을 상추와 배추를 심어 놓은 곳이다.

가을 텃밭의 신선함이다.

아침이면 바라보고 저녁에도 쳐다본다. 와, 신기할 뿐이기 때문이다. 작은 모를 심어 놓았을 뿐인데 저렇게 예쁘게 자라남이 신기해서다. 뜯어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자라고 있다. 모진 태풍을 막아주려 비닐을 치면서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바람에 날아가면 덮어주고, 벗겨지면 다시 보호해 주었다. 텃밭이 주인의 은덕에 배반하지 않았다. 가을 상추라는 말을 시골에 오면서 알게 되었다. 가을에 상추를 심는다고? 이웃이 알려준 덕분에 심어 놓은 상추는 바람에 살랑이며 춤을 춘다. 웃자라 쑥갓이 덩달아 몸을 흔든다. 가끔 찾아오는 메뚜기가 삶을 성가시게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가을 상추다. 


붉은빛을 띠는 상추가 야리야리하다면, 짙은 초록빛을 띠는 상추는 조금 억세다. 대신 메뚜기의 침범에도 대담하게 버티고 있다. 작은 바람에도 끄떡없는 고고한 자세다. 옅은 붉은빛을 띠는 상추는 모양과 자태가 다르다. 여린 여인네의 얇은 치마를 연상케 하며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두 가지 종류의 상추 심기를 정말 잘했다.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붉음과 초록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곳에 푸른 쑥갓이 끼어들었다. 전혀 어울림에 흠을 주지 않는 쑥갓이다. 나름대로 어울리는 텃밭에 또 한 식구는 몇 포기의 케일이다. 싱싱함을 자랑하지만 어느 벌레 탓인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안쓰러워 조석으로 바라봐도 막을 길이 없다. 어떻게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오늘도 조심스레 다가가 보지만 허사였다. 

가을 꽃밭의 아름다움

가을을 장식해주는 작은 텃밭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텃밭엔 붉음과 초록이 곁들여진 가을상추의 고고함이 있다. 남과 여가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다.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는 안성맞춤이다. 어울리 속에 우뚝 솟아 오른 쑥갓이 진초록을 알려주고 있다. 초록이 이러함을 널리 알려준다. 벌레들의 침입에 안타까운 케일이지만 아직은 힘을 내고 있다. 작은 텃밭에 화려한 꽃이 피었다. 여름내 삶이 화려했던 곰취가 자취를 감췄는가 했는데 꽃을 피운 것이다. 목을 길게 늘이고 꽃을 밀어냈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메리골드가 붉음을 자랑하고 있다. 야, 저런 색깔이 있다니! 감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만든 아름다움이다. 화초처럼 기르는 작은 텃밭에 하얀 이슬이 찾아왔다. 이슬 위에 내린 햇살이 빛나는 아침이 아름다운 골짜기다. 추석이 지난 계절에 가을이 자리 잡아가는 골짜기, 모두가 살아있음에 너울대는 춤사위가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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