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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4. 2021

전원주택, 조용한 산간마을에 하얀 눈이 찾아왔다.

(하얀 눈이 오던 날, 장독대에 내린 눈)

엊저녁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잠자리에 들기 불편했다. 혹시, 많은 눈이 내려 사람들이 오고 가기가 불편할까 해서다. 새벽에 눈이 떠질 사이도 없이 궁금했다. 조심스레 창문을 열자 안개 대신 하얀 눈이 보인다. 조용한 산간마을에 하얀 눈이 내린 것이다. 누구도 오가는 사람도, 떠드는 사람도 없는 조용한 산간마을이다. 큰 도시에서 10km 떨어진 곳이지만, 산간벽지처럼 가끔 닭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인간의 흔적도, 산짐승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평화스러운 시골집의 아침 풍경이다. 가끔은 매칼없이 짖어대는 동네 개만이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골짜기,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가 없다.


수도 없이 찾아와 재잘거리던 참새도 소식이 없다. 이층 서재 앞에 늘 얼쩡거려 언제나 손사래를 치게 했던 참새였다. 처마 밑 따스한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나 보다. 앞산 낙엽송도 조용히 차렷 자세로 서 있다. 잎이 거의 떨어져 산속이 훤히 보인다. 산속에 모든 것을 감추어 주던 낙엽송이었다. 푸르름을 벗어던지고 주황빛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낙엽송이 기력을 잃었나 보다. 고요한 산을 지키며 서 있다. 낙엽송 아래로 하얀 눈이 내렸다. 간간이 산짐승이 오고 간 발자국만이 남아 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 깜짝 놀랐다. 살짝 얼음이 얼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잔디밭에도 눈이 찾았다.

산간마을에 위치한 주택은 근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온도가 4도 정도는 차이가 난다. 현재 온도가 영하 3도 정도이니 얼음이 언 것이다. 엊저녁에 내린 눈이 살짝 녹아 얼음이 언 것이다. 조심스레 데크를 내려선 잔디밭에 서리 대신 눈이 내렸다. 기어코 겨울이 오긴 온 모양이다. 앞 산에 쌓인 것은 아니지만 산비탈엔 허연 눈이 보인다. 가끔 울어대던 고라니도 오늘은 소식이 없다. 처절한 소리로 울부짖던 고라니도 어디선가 웅크리고 햇살을 기다리나 보다. 게으름을 떨던 국화가 후회스러운 표정이다.


자연스레 두었던 국화, 게으름을 피우며 늦가을에 꽃을 피웠다. 지난해 꽃을 보고 화단에 심어 놓은 것이다. 필까 말까 한동안 망설이다 늦게 핀 꽃에 눈이 내렸다. 햇살이라도 찾아왔으면 하지만 시골구석에 자리한 화단은 인내가 필요하다. 하얀 눈이 내렸지만 국화의 품위만은 잃지 않음이 대견스럽다. 우직스러운 것은 국화만이 아니다. 굳건히 소리를 내고 있는 작은 도랑이다. 시골집이 한층 돋보이게 하는 도랑이다. 여름을 지나 가을에 몸집을 줄였지만 아직도 품위를 지키고 있다. 한결같이 옹알거리며 내는 소리는 여전하다. 곳곳에 하얀 눈이 찾아왔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내가 할 일만 한다는 도랑물의 고집이다.

앞산을 넘은 햇살

듬직한 것은 국화와 도랑물뿐이 아니었다. 하얀 눈을 쓰고 있는 몇 점의 수석이다. 한동안 수석 수집에 혼을 빼앗겨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수석, 무엇이 그리도 정신을 빼앗았을까? 자그마한 수석에 온갖 시름과 풍경이 담겨있다. 혼을 빼앗아 갔던 이유였다. 수석 수집에 혼이 나가 수집하고, 받침대를 손수 깎았다. 밤새도록 받침대를 깎고 색을 칠하는 수작업을 했다. 수십 점을 모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보던 수석이었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서 소중한 몇 점만을 남겨놓고 정리를 했다. 남은 것 중에 몇 점은 집안에 두고, 작은 것을 밖에 두고 감상을 한다. 작은 수석에 하얀 눈이 내린 것이다.


온갖 시름과 환희를 주었던 수석, 하얀 눈을 쓰고서도 끄떡없다. 젊은 시절에 온갖 시름과 환희가 담겨 있는 수석 한 점이다. 어둑한 그늘에 앉아 올 테면 와보라는 듯이 눈을 쓰고 있다. 반가운 햇살이 찾아오면 하얀 눈을 털어내고 한 숨을 쉴 것이다. 이웃집 닭이 세를 과시하며 추운 아침을 깨워 준다. 남은 닭은 아직도 웅크리고 있나 보다. 심통을 부리던 이웃집 개는 무엇과 놀고 있는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이, 앞 산 너머로 햇살이 찾아왔다. 반가운 햇살, 햇살이 있고 없고는 천지가 달라짐을 쉽게 알 수 있다. 헐렁해진 앞산의 나무 사이를 비집고 햇살이 찾아왔다. 

눈이 내린 수석 한점

오늘따라 찾아온 햇살도 하얀빛이다. 어느새 찾아온 햇살은 건너 산까지 차지했다. 하얗게 비춘 햇살은 동산 곳곳을 보여준다. 마치 시골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빛이다. 고요한 골짜기에 외로운 닭소리가 울려 퍼지고, 순간을 놓치지 않은 햇살이 넘어온 것이다. 먼 하늘에서 거대한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앞 산에 나무가 있고 없음에 따라 햇살의 뭉치가 다르다. 화살과 같은 한 점의 햇살이 있는가 하면, 기다란 햇살이 하얀 선을 그려 놓는다. 갖가지 영상 기술을 선보이던 영사기가 한꺼번에 햇살을 쏟아부었다. 


산골짜기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며 시골 동네는 부산하게 움직인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바쁘게 돌아간다. 이웃집 동네 지킴이가 마구 짖어대고, 눈까풀이 무거웠던 이웃집 닭들도 하루를 시작한다. 서서히 동네가 밝아지면 하얗게 내린 눈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산을 넘은 햇살이 큰 몫을 하고, 이웃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오가는 길이 편해야 하고, 사람의 흔적으로 사람 집임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 문턱을 넘은 겨울이 하얀 눈을 줬지만, 가을은 선뜻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곳곳에 뿌린 하얀 눈은 햇살이 서서히 지워나갔고, 남은 곳은 이웃들이 털어내고 말았다. 시골 동네가 서서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눈이 온 산간마을의 아침 전경이다. 

호젓한 골짜기 집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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