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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24. 2021

야속한 세월 속, 나는 벌써 어른이어야만 했다.

(가을 아침의 단상, 뜰앞의 공작단풍)

늦가을 이른 새벽,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서재 앞 창문을 열었다. 오늘도 아침 안개가 찾아왔다. 하루도 빠지지 않음에 안개도 바빠졌는가 싶다. 앞산을 가득히 메운 안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순식간에 냉기가 창문을 타고 훅 넘어온다. 아침 운동을 하러 가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시골에 살고 있으니 10여 km를 가야 체육관이 있다. 아내가 깰까 봐 조심스레 문을 나서 살며시 문을 닫는다. 게으름을 피우는 몸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오늘따라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내가 어른인가? 어른스럽게 생각하고 또 어른스럽게 행동도 하나? 어른 될 시기가 지난듯한데 이리 살아도 되나?  


시골집이 있는 골짜기엔 하얗게 서리가 왔다. 단속하지 않은 자동차 앞유리에 얼음이 얼었다. 서둘러 얼음을 긁어내는 소리에 온갖 동네 식구들이 참견을 한다. 이웃집 동네 지킴이가 짖어대고, 덩달아 이웃집 닭이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갑자기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몰래 가려던 운동길을 그예 들키고 말았다. 

작은 골짜기에 아침이 왔다.

원래 시골 동네엔 안개가 오고, 느지감치 햇살이 넘어오면 산 식구들이 깨어난다. 산 식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시골 동네를 깨워줘야 주연들이 모습을 나타난다. 시골 동네에 이야깃거리가 많은 이유이다. 한 번에 햇살이 오면 동네를 단박에 보여주는 것 같아 쑥스러운가 보다. 괜히 운동을 간답시고 시골 식구들을 깨우고 말았다. 안개를 뚫고 큰길로 접어들자 안개가 없다. 골짜기를 벗어나자 골짜기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다.


시골 동네 주연이 들어선 큰길, 벌써 많은 차량들이 오간다. 안전이 우선인 자동차 길, 시속 60km를 원칙으로 한다. 사고도 줄고 안전하다는 이유였다. 앞차의 속도는 그의 반도 될까 말까 하다. 차가 잘 안 나가나 하면서 무한의 인내심을 발휘한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차가 길게 늘어서 따라온다. 어떻게 할까? 추월할까 말까를 망설이지만, 2차선 도로에선 만만치 않다. 다시 인내심을 찾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뜻을 헤아린다. 앞차를 추월한다면 조금 빨리 갈 수 있으리라. 조금은 빨리 가겠지만 앞 차 운전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도 불안한 운전인데, 휙 하고 지나는 차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곡식도 익어 고개를 숙였다.

살아가면서 늘 그랬고, 혈기가 왕성했을 때는 더 그랬다. 생각나는 대로 하고야 말았다. 주춤대는 차가 앞에 있으면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추월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았다. 삶에서도 말과 행동이 서슴없었다. 맺힌 말은 서슴없이 해 버리고, 잘잘못을 가려야 했다. 잘못을 지적해야 속이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이었다. 약속한 시간은 빈틈없이 지켜야 했으며, 주고받음은 뚜렷해야 했다. 줘야 함은 얼른 실행해야 직성이 풀렸고,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세금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필요 없는 듯한 물건은 즉시 폐기한다. 아내는 유별나단다. 아침에 꺼낸 생각, 어른스럽다는 말을 되뇌며 떠오르는 행동들이다. 무엇이 어른스러움이고 어른이란 말일까? 동네를 지나면서의 생각은 아직도 혼돈 속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 거지? 갑자기,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도 궁금하다. 어렴풋이 어른이라는 것은 아는 듯 하지만 잘은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된다는 뜻이 어려우니 어른이 되기는 더 어렵다는 생각이다. 어른 노릇 하기는 더 멀은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가을이라 그런가? 아니면 어른이 될 시기가 지나서 그런가? 어른스럽다는 말, 생각이 깊어 남을 배려하는 아량이 있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가끔은 어린아이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한다. 어른처럼 의젓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이르는 말이다. 

가을 나락도 영글어 간다.

'어른처럼'이라는 말, 배려와 넓은 아량을 베푸는 행동을 뜻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섣불리 행동하지 아니하며,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른스러운 삶을 이루기는 참 어렵다.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거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는 길을 양보하지 않아 다툼을 한다. 어깨가 닿았다고 말다툼과 싸움을 한다. 조금만 이해하고 참으면 되는 일들이다. 어른인 듯한 사람을 만났다.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해 보이고, 온화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은근히 얼굴에서 빛이 나오고 있어 또 눈길이 간다. 오래 전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 힘겨운 일을 하시면서도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소위, 쓸데없는 말은 가능하면 자제하면서 꼭, 필요한 말씀만 하셨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순순히 따랐을 리는 만무하다. 아버지의 뜻을 크게 거역하지 않는 삶이지만 늘 그러하지는 못했으리라. 어린 자식들을 보면서 말이 없으셨고 집안의 대소사를 묵묵히 해내셨다.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셨고 늘, 참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참고 또 참는 삶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는 따라주리라는 것이 삶의 철학이었다는 느낌이었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아파하는 자식을 위해 따스한 등을 들이미는 아버지였다.  왜 그렇게 사시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야 그의 뜻을 알았다. 아, 아버지는 어른 이시었구나!  

수채화(갈매기도 날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편안함이 찾아올 때쯤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늦게 철이 들어 어른스러움이라는 것을 가까스로 깨닫게 될 즈음이었다. 어른스러움을 가르쳐 주실 즈음에 돌아가신 것이다. 살만한 시절이 되었으니 어른스러움을 더 보여 주셨으면 했다. 아쉽다는 생각이었다. 말없이 몸으로 알려주셨으니 우둔함에 어른스러움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런 삶이었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삶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음이 아쉬운 세월이다. 조금 더 살아주셨으면 철이든 삶과 어른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벌써 어른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은 아직도 철부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어른스러움을 알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삶을 길게 허락하지 않았다. 삶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철부지의 때늦은 후회다. 어른이 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부단한 노력과 처신으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보다. 얼른 어른이 되어 어른스러움을 보여주어야 했는데 당신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버벅거리며 오늘의 삶도 알지 못하는 우둔함이 야속하기도 하다. 아직도 어른이 됨을 감지할 수 없는 삶, 바쁜 세월 속에 삶이 익어지면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어른임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루지지 못한 어른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늦가을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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