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보내며)
오랜만에 우체국을 찾았다. 부산에 사는 딸과 분당에 사는 아들에게 총각김치를 보내기 위함이다. 무거운 상자를 들고 들어선 우체국, 언제나 한가함에 기분이 좋다. 시골에 있는 우체국 그리고 농협 등엔 인구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나 한가하다.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택배상자 무게를 잰다. 성의껏 주소를 적고 안내해 줌에 기분까지 상쾌하다.
며칠 전 멀리 사시는 누님이 전화를 하셨다. 총각김치를 담그고 총각 무가 남았으니 총각김치를 담아가라는 전화다. 매년 누님의 밭에서 기른 총각무와 파 그리고 갓을 이용해 총각김치를 담아 오는 계절이다. 언제나 넉넉하게 심고 가꾸어 나누어 주는 누님 내외다. 늘 고맙게 생각하며 담가 온 총각김치를 아들과 딸에게 부치고 나오는 길이다. 누님 내외가 어렵게 길러낸 무와 파, 언제나 받기만 해도 될까?
매년 아내와 이젠, 시골에서 구입해 총각김치를 담그자고 결론을 내린다. 언제나 받기만 하는 것이 죄송스럽고 어려움을 드리기가 안쓰러워서다. 굳게 마음을 먹고 말씀을 드리면 그렇게 하자하신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면 또 전화를 하시는 누님 내외다. 어렵게 길러 놓았는데 남으면 뭐 하느냐는 누님의 성화다. 적당한 양만 재배해도 되건만 넉넉하게 길러 놓아야 마음이 편하신 누님 내외다. 어렵게 길러 놓은 정성을 생각해 또 김장김치를 담가오곤 하길 몇 년째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 오로지 무와 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손수 나서서 다듬고 씻어 총각김치를 담가주신다. 일찍 가지만, 새벽부터 무를 뽑고 다듬으며 준비해 놓으신다. 아내도 김치를 담그지만 늘 망설이는 것은 양의 조절이다. 고춧가루를 얼마나 넣어야 적당하고, 소금의 양은 어떨까를 늘 망설인다. 거침없는 몸짓으로 해내는 누님의 솜씨는 따라갈 수 없다. 고맙게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드린다.
내년에는 각자가 김장을 하자고. 하지만 일 년이 지나면 또 같은 일을 반복하고 만다. 오랫동안 주고받은 정을 뗄 수 없어서다. 우체국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를 생각해서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내 아버지와 어머님이다. 맛있는 밥이라도 먹으라며 언제나 농사지은 쌀을 보내 주셨다. 일 년간 농사를 짓고 방아를 찧어 보내주셨던 하얀 쌀, 얼마나 힘겹게 농사를 지으셨을까? 나는 그 고마움을 얼마나 알고 먹고살았을까? 또, 내 아이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기어이 떠나려는 자식에게 한 톨이라도 더 주려는 부모님이셨다. 차문을 열고 참기름 한 병을 찔러 넣어주시고, 빈자리 있으면 무엇이든 쑤셔 넣고야 말으셨던 당신들이었다. 여름내 고추를 길러 고춧가루를 준비하시고, 비탈밭에 깨를 심어 기름을 짜셨다. 기어이 줘야만 했던 부모님, 내 부모가 주였던 것을 다시 내가 자식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세월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계절, 따스한 밥 한 끼도 제대를 해드리지 못한 부모님이셨다. 두고두고 남아 있는 가슴의 한, 이젠 누님에게라도 해드려야겠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떠나 그리움 속 따스함이라도 나누고 싶은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