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하며, 거실 풍경)
세월은 고집만 남겼단다.
글을 쓴답시고 모자라는 단어를 끌어모아 나열하고, 음악을 한답시고 어설픈 음을 실어 나른다. 여기에 그림 같지 않은 수채화를 한답시고 화실을 드나드는 모습은 영 낯설다. 가끔 툭하고 튀어나오는 주머니 속 외로움과 쓸쓸함을 잊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성성한 몸뚱이를 자랑하던 시절은 지났고, 주머니 속 허전함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어지간한 친구들도 제 갈길을 가려는지 저만의 고집으로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늙으면 고집만 남는다 하지 않던가! 이것저것을 하던 중, 늙어가는 몸에 알맞은 주종목이 한두 가지 남았다. 이젠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나만의 종목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주종목마저 버리면 살아갈 희망이 없어서다. 나이 들어 고집에 세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릎이 아프다며 자전거 타는 것도 그만두고, 산에 오르는 것도 포기했다. 등산을 하는 것도 능력에 따라 구분한다. 처음부터 출발하기도 하고, 중간에서 끼어들기도 한다. 어쩌면 점심상이 아쉬워 찾아오는 친구도 있으니 세월이 성큼 지났음을 알게 한다.
얼마나 다행이던가!
아직은 헬스장도 드나들고, 짧은 거리의 마라톤도 이어가는 중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지만 조금은 힘에 겨워진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내려온 러닝머신, 도대체 세월의 무게가 얼마냐 한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냐는 말에 무릎이 괜찮냐는 다른 질문이다. 아직은 견딜만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직도 뛸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눈치지만 조금은 힘이 든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것이 있다던가!
오늘도 체육관에서 한 시간여를 땀과 씨름을 했다. 개운한 몸은 다시 살아났다는 한숨이다. 얼마나 다행이던가! 간신이 걷고, 엄두도 못 내는 친구도 있는데. 내색은 하지 않지만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쉬울 때도 있다. 쉽지 않은 단어를 나열하고 있는 이유다. 그래도 쉼이 있는 쓰기가 어렵지만 조금 쉬운 듯하고, 상쾌해서다. 글을 쓴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음을 안다.
수학을 가르치던 사람, 언제나 직선만을 고집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긴 곡선을 돌아가는 원심력을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고, 참아냄도 쉽지 않아서다. 한 가지 내세 울 살아감의 고집이 있었다. 나와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야 한다는 고집이다. 며칠 전, 어설픈 글을 쓰며 깜짝 놀랐다.
어림도 없는 글쓰기, 순식간에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뒤적이다 보니 어느 포털 사이트에 제목이 감지된 것이다. 아, 그리움에 익숙한 사람들이 찾아 주었구나!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럴듯한 글도 아니고, 그리운 어머니를 연상하며 쓴 글인데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치열함이 녹아든 삶이다.
며칠 후, 포털사이트에 다시 제목을 입력해 봤다. 깜짝 놀란 것은 같은 두 곳에서 감지된 것이다. 내가 올린 사이트에 하나이고, 또 하나는 알지도 못하는 카페에 오른 글이다. 제목도 같고 내용도 같은 내 글이다. 얼른 카페를 찾았는데, 어설픈 내 글이 좋았는가 보다. 제목에서부터 내용까지도 그대로 복사를 했다. 한자도 틀리지 않는 글인데, 글쓴이는 내가 아니고 본인이란다. 내 글도 쓸모가 있는가 보다. 누군가는 좋다고 느꼈으니 내 글을 그대로 복사해 간 것이 아니겠는가?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성 글을 남겼다. 별것도 아닌 내 글을, 그것도 글자하나도 틀리지 않고 복사를 해 놓고 대담하게 본인이 지은 글이라 한다.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한 모습을 보고 돌아서 나왔다. 하루가 지나고 포털사이트를 열었더니 카페의 글은 오간데 없다. 다시 카페에 들어가 보니 글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흐르는 세월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이것저것을 기웃거린다. 늘, 내가 했으니 모두 할 수 있다는 말로 대신하는 것들이다. 어설픈 내 글을 갖겠다 하고, 어설픈 그림을 부러워한다. 무엇이 그리 갖고 싶고 부러울까?
수십 년 또는 그보다 많은 세월의 공을 들여 외로움을 달랜 일들이다. 나와의 치열한 공방 없이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던가! 어설프고 모자란 일이라도 치열함이 숨어있다. 눈을 비비며 체육관을 갔고, 술자리를 피해 화실을 드나들었다. 저린 몸을 흔들며 자판을 두드리고, 입술이 터지도록 마우스피스를 물었다. 쉬이 부러움을 탐낼 일이 아닌 것이다. 섣불리 얻고자 함은 어리석음이요,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길 수도 없다.
꾸준함과 치열함에 숨어 있는 이일과 저일, 흐르는 세월과 함께하려는 내 삶이었다. 어설프고도 모자람이 가득한 삶, 그것도 나로서는 최선이 담긴 내 삶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