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축제를 마치며)
세월 축제는 늘, 준비해야
지루한 겨울이 물러가고 싱그러운 봄이 왔다. 날씨도 풀렸고 여기저기에 꽃 소식이 가득이다. 동네도 꽃천지요, 곳곳에서 꽃을 반기는 축제가 한창이다. 꽃의 축제, 먹거리 축제 등 전국에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축제의 장이 마련되고 있다.
축제의 계절, 세월의 축제는 어찌해야 할까? 누가 해주는 축제도 아닌 늙음과 함께하는 세월의 축제를 마련해야 했다. 세월을 축하하는 나만의 축제를 위해서다. 오로지 내가 만들고 즐겨야함은 오래전에 이미 알았다.
20명에 가까운 회원의 색소폰 동호회, 대부분 근로자들이다. 낮엔 일을 하고, 저녁에 만나 합주와 개인 연습을 한다. 삶이 풍요해졌음을 실감하는 저녁, 회원들이 힘들어도 즐거워한다. 음악의 변두리에만 있었던 사람들, 봄을 축하하는 축제를 해야 할 것 아니던가? 색소폰 버스킹,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빵만 먹고살 수 없는 삶, 국수도 먹고 더러는 쌀밥도 먹어야 늙음에 재미도 있다. 쳇바퀴를 돌리듯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고, 무료함을 탓하며 살 수는 없어 회원들과 함께 세월의 축제를 해 보기로 했다.
준비된 축제, 언제나 어렵다.
음악이라곤 '음'자도 모르고, 미술에도 문외한이던 사람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남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하는 분야인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한 번 해보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회원들과 어울려 무작정 달려들어 도전하고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누군가는 '그때 그것을 해 볼걸!'이라는 말이 가장 슬프다 했다. 지금 아니면 평생 할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하며 살아왔다. 무식하게 덥석 시작한 것이 색소폰 연주이고 수채화였다. 어울리지 않는 음악실과 화실, 친구가 어디를 다니느냐 묻는다. 어울리지 않음에 감출 수 있을 때까지 우물거렸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시기, 화실에 간다는 소리에 친구가 되묻는다. 어디라고? 큰 소리로 '화실'하며 소리를 질렀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래위로 훑어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동명이인인 줄 알았단다. 늙어가면서 시작한 일들이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음은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에 가까이 시작한 미술과 음악, 칠순(七旬)이 넘도록 부여잡고 있다. 이웃이 묻는다. 어떻게 배웠느냐고? 내가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언제나 그렇다. 취미로서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대신 할 말이 없다.
봄, 늙음의 축제 계절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난, 늙을 줄 몰랐다. 어느 날 깜짝 놀라 세월을 세어봤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세월임에 새 봄의 축제요, 가을날의 세월 축제를 계획했다. 봄이 오면 봄을 축하하는 색소폰 버스킹에 수채화 전시회를 앞장서서 준비했다. 한 해가 기우는 연말이면 감사의 음악회를 준비한다. 외로운 준비에 푸념할 여유도 없었다.
지난해 가을 축제가 끝나고 새봄 축제를 준비했다. 동호회원들과 어울려 일주일에 한 번, 모두 모여 합주연습을 했다. 어려워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솔로와 듀엣곡을 준비하는 몇 달이 지나갔다. 어렵게 연주장을 마련하고 연주회를 준비 중이었다. 바쁨에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친구의 전화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 전시회가 2년 지났으니 전시회를 다시 해 보자는 전화다. 은퇴한 친구들, 역시 세월의 축제가 아쉬운 것이다. 회화와 서예 그리고 사진 등의 취미생활을 모아 하는 전시회였다.
바쁜 일 때문에 고민하는 사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친구 협박이다. 기꺼이 참여하기로 하고 서서히 준비했다. 색소폰 버스킹 준비에 정신이 없는데, 전시회까지 고등학교 동기 20여 명과 준비를 하며 4월을 맞이한 것이다. 색소폰의 음과 수채화의 색의 축제, 세월의 축제가 두 마당이다. 색소폰 동호회원 20명과 연주회를, 동기생 20여 명과 전시회를 마무리했다.
세월이 만들어 준 은퇴의 삶, 본인이 만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자식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오로지 내가 나서야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음에 서둘러 준비하고 버티는 것만이 늙음에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 오늘도 서둘러 준비를 한다. 글을 쓰고 색소폰 연주를 해야 한다.
다시 수채화를 만나러 화실로 달려가야 한다. 무엇이 나온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분서주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어렵고도 힘겹지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다. 늙을 줄 몰랐던 젊음은 갔고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삶에 이것 말고 할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이유다(오마이 뉴스에 투고 했으나,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