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정리하며)
가을을 즐길 겨를도 없이 추위가 몰려왔다. 갖가지 꽃으로 물들였던 정원도 적막하다. 하얀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던 모습이 안쓰럽도록 계절은 잔인했다. 여름내 푸름을 주던 그 자연, 가을로 가는 듯 모양만 갖추고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다. 여기저기에 가을 껍데기들이 수두룩하다. 이것을 언제 치워야 할까?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선 화단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엉켜있다. 어떻게든 정리를 해줘야 계절이 순환을 알 것 같아 잔디밭으로 나섰다.
골짜기엔 갖가지 터줏대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산 짐승들이 그렇고, 갖가지 곤충과 새들의 텃새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가 뱀이 싫어한다는 메리골드를 곳곳에 심어 놓았다.
주황빛을 맑게 건네주는 꽃을 싫어한다니. 가을까지 주황빛으로 골짜기를 밝혀주던 꽃, 초겨울은 공평하게 냉정했다. 잎은 어느새 검음으로, 주황빛 꽃도 수명을 다했으니 정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도 환호하던 꽃을 외면하고 뿌리째 뽑아내는 마음, 좀 잔인한 인간이었다. 이렇게도 냉정할 수 있을까?
자그마한 텃밭에는 이것저것을 심었다. 고추도 심고 가지도 심었으며, 부츠와 배추도 심었으니 내심 부자인 농부다. 벌써부터 고추의 잔재를 정리하려는 아내였다. 허전한 텃밭이 보기 싫어 그냥 두자는 의견으로 모아졌고, 아직도 텃밭을 지키고 있었다. 잔인한 서리발은 그냥 두지 않았으니 검음으로 울부짖는 고춧대를 정리했다. 시원함에 섭섭함이 겹치는 오후, 늘어진 황겹매화가 여유롭다. 아직도 초록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초록의 여름이어도 황겹매화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뜰에 나뒹구는 낙엽을 정리한다.
낙엽, 갖가지 즐거움을 주던 초록이다. 봄부터 초록으로, 여름엔 진초록으로, 가을엔 진한 가을을 실었었다. 무심한 서리를 받아들이며 초겨울을 맞이했다. 어느새 몸을 웅크리고 어쩔 줄 모르고 헤매는 낙엽, 기어이 제자리로 돌려줘야 했다. 낙엽을 쓸고 모아 산으로 옮겨 대지에 돌려줘야 했다.
수없이 떨어진 가을의 껍데기를 정리하는 오후는 초겨울이다.
오늘따라 도랑물 소리도 겨울이다. 우렁찬 소리는 오간데 없고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무심히 울어대는 이웃집 닭소리도 을씨년스럽다. 품앗이 울음소리도 없고 홀로 목을 늘인 목소리다.
얼른 화단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름내 화단을 메꾸어 주었던 꽃, 꽃범의 꼬리였다.
초겨울의 싸늘함은 꽃범의 꼬리도 예외일 수 없다. 검게 변한 줄기를 잘라내고, 휑한 화단을 정리하는 마음은 편치 않다. 그렇게도 연한 분홍으로 화단을 지켜주던 꽃이다. 진한 여름장마도 거뜬했고, 세찬 비바람도 이겨낸 꽃이다. 기어이 겨울 앞엔 몸을 낮추었다.
가을이 올 사이도 없이 와버린 초겨울을 어떻게 달래 볼까?
해마다 가을이면 연례행사가 있다. 지는 가을을 보내기 싫어 국화꽃을 들여놓는 것이다. 환한 노랑과 붉음으로 골짜기를 치장하고 싶어서다. 꽃이 지고 나면 화단에 묻어, 내년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회 화분 세 개를 들여놓았다. 오래전에 배우려던 국화 기르기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노랑과 붉음이 곁들여진 국화화분은 아직 건재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늘 부지런을 떤다.
저녁이면 현관으로, 아침이면 데크로 나들이를 하는 꽃이다.
뜨락에 있던 구절초와 잘 어울리던 국화인데, 이젠 국화만이 꽃을 넘실대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동네벌과 나비들, 화분에 있어도 향은 짙은 이유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찾아온 골짜기, 여름과 가을을 빛내주던 꽃들은 종적이 없지만 노랑과 붉음으로 빛나는 국화가 아직은 싱그럽다.
골짜기의 서늘함을 막아주는 국화가 아직은 집을 지키고 있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