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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인 김장 소금, 골짜기는 지금 바쁩니다.

(가을이 주는 골짜기 풍경)

by 바람마냥

늦가을이 내려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체육관으로 향하는 새벽이다.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몸을 깨우기 위해서다. 하얀 서리가 자동차를 덮어 썰렁함을 주는 골짜기에 들려오는 소리는 작은 도랑에 물이 흐르는 소리다. 봄부터 겨울까지 그침이 없는 그 소리도 썰렁하다. 차를 몰고 아래 동네로 내려오자 늦가을 풍경이 누워 있다.


여름내 기른 배추밭이 나타났다. 긴 장맛비가 배추를 망쳐 놓았고 그예 트랙터로 갈아엎은 흔적이다. 상품성이 있는 배추만 간택되었고, 대부분은 버려졌다. 짓밟힌 배추에 내린 서리가 썰렁하다. 농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늦가을 골짜기이지만 아름다움도 섞여 있다. 길가에 있는 메타쉐콰이어 풍경이다.


이차선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가로수 잎에 주황빛을 발하며 하얀 서리와 맞서고 있다. 하얀 서리발을 뚫고 나온 주황빛, 늦가을을 암시하는 아름다움이다. 산 언덕에 버티고 있던 산국도 고개를 숙였다. 노랑에 얹힌 하얀 서리가 초겨울로 가는 길목임을 알려준다. 단풍이 들길 고대했던 벚나무도 늦가을이 넘은 초겨울이다.


골짜기의 삶도 분주해졌다.

봄부터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던 벚나무다. 단풍이 드는가 했는데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고 말았던가? 앙상한 가지만이 떨고 있는 아침은 썰렁하다.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파크골프장도 비어있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인데, 늦가을 바람이 사람의 발길도 끊어 놓았다. 서둘러 들어선 체육관도 늦가을 분위기다.

언제나 많은 이웃들이 어울려 운동하던 곳인데, 몇 명의 남자만 보인다. 골짜기 김장철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서둘러 한 회원이 문을 나선다. 왜 그리 서두르냐는 질문에 김장하러 가야 한단다. 엊저녁에 절여 놓은 배추를 씻으러 가는 길이란다.


지난달에 김장축제가 열렸다. 수많은 배추가 실려오고,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배추를 절이기 위함인데, 저 많은 것이 필요하다니 대단하다. 축제일엔 밥도 얻어먹을 수 있고, 간단한 떡과 막걸리도 제공되는 알찬 축제였다. 골짜기의 넉넉함을 건네주는 바쁜 철이 돌아온 것이다.

시골에서 한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김장철, 곳곳에서 절임배추를 팔고 있다. 전국으로 배송되는 절임배추생산이 동네마다 이루어진다. 비닐하우스가 절임배추 공장으로 둔갑했고, 배추를 나르는 트럭이 오고 간다. 동네 단위로 공동작업을 하고, 가족단위로도 절임배추를 생산한다.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오자 파란 조끼입은 어르신들이 모여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이다. 간신이 몸을 가누는 어르신들, 건강을 챙기면서 푼돈이라도 벌고 싶어 오신 분들이다. 얼른 인사를 하자 반가워하신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길러야 하는데....

어느 어르신의 한탄 아닌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다. 죄송스러움에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도 햇살이 찾기에는 이른 골짜기다. 돌아오는 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문을 여는 무인노점상은 문을 닫았다. 계절에 따라 품목이 변하는 곳, 배추와 무 그리고 호박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비닐로 덮어 놓은 모습이 썰렁하다. 호떡과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도 문을 닫았고, 과일 상점도 포장으로 덮여있다. 늦가을의 추위가 모두를 움츠리게 한다.


자연은 신비했다.

도로에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도심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심으로 일거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일터로 나서는 일꾼들의 바쁜 발걸음이다. 먼산에도 늦가을이 찾아왔다.

낙엽송 잎이 누렇게 변했고, 언제나 푸르르던 소나무도 변했다. 가지 아래쪽으론 누런 잎이 차지했고, 위쪽으로 푸르름이다. 산 아래쪽으로는 누런 낙엽송이 자리했고, 위로는 푸름을 먹은 잣나무가 자리했다.

골짜기의 소나무와 산 모양이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주황빛과 초록이 만나는 자연의 모습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구김 없이 어우러지는 자연을 닮을 수 없을까 하고 헛튼 생각을 해본다.


아침을 기다리던 햇살이 산을 넘어왔다. 어느새 하얀 서리발이 녹아들었고, 마음마저 따스하다. 서서히 골짜기가 깨어 날 시간, 아이들이 등굣길을 서두른다. 동네에 있는 두 명의 초등학교 학생, 동네의 보물이다. 등하굣길에 대형버스가 대령하고 있다. 오래전, 먼 자갈길을 오가던 초등학교시절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자 손을 흔든다. 얼른 동네를 지나 들어선 뜰에도 햇살이 가득이다.

귀하게 찾아온 맑은 햇살, 골짜기에 자리 잡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삶을 위한 처절한 몸짓은 맑은 햇살에도 무심했다. 햇살은 햇살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왔다. 아무 감각도, 느낌도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이다. 세월은 흘렀고 몸과 삶의 모습이 변했다. 자연이 아름답고, 햇살이 반가운 이유다.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한 세월이다. 이웃과 어우러지는 자연이 신비스럽다. 늙을 줄 몰랐던 어리숙한 삶이 알려준 사연이다. 언제나 젊음일 줄 알았던 그 세월은 어느덧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 문턱이다.


초겨울을 맞이하는 골짜기의 삶, 맑은 햇살과 놀고 있는 뿌연 안개가 산 허리를 감았다. 산 중턱을 오고 가는 안개는 쉼이 없다. 여기에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노력으론 어림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단풍이 되어 초겨울 풍경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까? 늦가을이 초겨울과 다투는 골짜기 풍경에 생각이 멈추어버린 아침이다(2025.11.12일 오마이뉴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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