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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학입시

by 문객

한국 직업 사전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직업명은 대략 만 육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 알고 있는 직업은 대략

몇 개나 될까요?

의사, 변호사, 한의사, 교사,

이발사, 청소부, 농부, 어부,

소방관, 경찰,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아무리 써 봐도 백 개를 넘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학생들한테 알고 있는 직업명을 써보라고 하니

평균적으로 오십 개 정도를 씁니다.

직업을 오십 개 정도 안다는 것은

곧 본인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오십 개 정도로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오십 개 중에

본인의 개성과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관심과 인기에 따라 분류해 보면

학생들이 선택해야 할 직업은

고작 10개 안팎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꿈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한 발짝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오직 점수와 성적으로만 평가받다 보니

정작 본인의 성적으로는

사회적 인식이 높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음을 알고

꿈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꿈을 가진 학생들조차도

본인의 개성과 가치관에 맞는 꿈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성적에 맞게 위조된 꿈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학교는 오늘도 끊임없이

성적과 등수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다 공부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다만 언어 및 논리·수학 지능이 높기 때문이지

다른 모든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가드너가 다중지능이론에서 밝혔듯이

사람들은 각자가 부여받은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을 키우면서

각자의 재능에 맞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데,

우리 사회는 오직 한 가지 재능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 재능에 맞는 일을

선택하는 데에만

손뼉 치고 경배합니다.

1, 2, 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 5, 6등급은 치킨을 굽고

7, 8,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는 뼈 아픈

풍자적 표현이

교육의 실상이 되어버린 현실엔

희망이 없습니다.

성적과 등수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그런 길을 당당하게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만큼

사람들의 머리를 아름답게 깎아주는

이발사도 존경받고

들녘에서 밭을 일구며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의 삶도 모두가

똑같이 차별 없이 존경받을 수 있을 때

학교도 더 이상

점수와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는 말 그대로 학생들을 위한

꿈의 공작소가 될 것이며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시간을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꿈이 없는 아이들의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정말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꿀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차마 꿈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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