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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 공간

by 리박 팔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1. 1990년대, 도시의 맛을 처음 알다.


어릴 적, 주말이면 엄마 손을 잡고 번화가의 롯데리아에 갔다.

종이 모자를 쓴 점원이 반갑게 맞이하고,

불고기버거와 밀크셰이크받아 들면 기분이 좋았다.

그곳은 음식점이기 전에 도시를 상징하는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햄버거는 내가 처음 경험한 도시의 맛이었다.


KFC는 또 다른 세계였다.

후라이드 치킨은 낯설도록 바삭했고

옥수수와 비스킷은 한국 음식과는 전혀 다른 풍미였다.

백화점 안,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야 했던 그곳에서

나는 외국에 온 듯한 특별함을 느꼈다.


그 시절 패스트푸드는 자주 가지 못하고 빠르게 먹고 나가는 곳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설렘 그 자체였다.


2. 2000년대, 익숙한 안식처가 되다.


대학교 시절, 맥도날드는 친구들과의 아지트였다.

수업 이후, 빅맥 세트를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들었고

아르바이트 전에 초코콘으로 허기를 달랬다.

늘 같은 자리, 같은 조명, 같은 메뉴.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버거킹은 조금 더 조용한 편이었다.

테이블 간격이 넓었고 창가 자리는 혼자 앉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와퍼 세트는 비싸지만 든든했고

그 고요한 분위기 덕분에

혼자 밥을 먹는 연습도 그곳에서 했다.


이 시기에 패스트푸드는 단지 빠른 음식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3. 2010년대, 나만의 취향을 반영하다.


동네에 맘스터치에 생겼을 때,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매장이 크지 않았지만 따뜻했고

치킨버거가 정말 바삭했고 가격도 부담 없었다.

혼자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그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써브웨이는 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빵부터 야채, 소스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은 새로웠고

나의 취향을 반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고

건강한 한 끼를 혼자 해결하기 좋은 공간이 되었다.


이 즈음,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먹고 머무르는 만큼 패스트푸드 공간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4. 2020년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기준이 되다.


처음 셰이크쉑에 갔을 때,

햄버거를 먹는다기보다 문화를 소비하는 느낌이었다.

세련된 매장 외관과 나무 테이블, 은은한 조명 그리고 잔잔한 음악 등은

패스트푸드인데 패스트 하지 않았고

손님들의 태도조차 여유로웠다.


반면 노브랜드 버거는 효율적이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깔끔한 공간에서 간단히 식사하였다.

노란색의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었고

불필요한 건 없었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날의 기분과 필요에 따라

패스트푸드를 선택한다.

5. 결론: 공간은 나를 알고 욕망을 반영한다.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도

나는 매번 다른 이유로 다른 공간에 앉아 있었다.


공간은 조용히 진화하였다.

내게 어떻게 머물고 싶은지 묻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패스트푸드 공간은 이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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