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4교시

by 리박 팔사

이것이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1장.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고요?


지금 들으면 좀 놀라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

4교시까지만 있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건 분명한 등교였다.

다만 토요일 아침은 조금 느슨하게 시작하였다,

등교는 했지만 가방이 가벼웠다,

교과서는 덜 쌓고 도시락은 안 싸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오늘은 4교시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1시 40분, 학교 종이 울리는 그 순간은 거의 축제였다.

책상을 정리하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가방을 메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날의 점심은 분식집, 문방구, 친구네 집 등 주로 밖에서 먹었다.

토요일 오후 동네만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분명 존재하였다.


2장. 오늘은 어디서 놀까?


평일에는 약속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표, 교실, 책상, 의자, 표정도 다 똑같았다.

하지만 토요일은 조금 달랐다.

3교시쯤이면 슬쩍 고개를 돌려 친구랑 속삭였다.

“끝나고 어디서 볼래?”, “오락실 갈래? 아냐 오늘은 운동장에서 모이자.”

토요일 오전은 수이 아니라 우리끼리 놀 계획을 짜는 시간이었다.

그날 오후는 우리의 자유였다.

나는 보통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 안에서 축구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공을 들고나가면 이미 몇 명은 모여 있었다.

놀이터에 어정쩡하게 줄 선 아이들, 철봉에는 줄넘기 챙긴 아이도 있었고

어느새 축구 동아리 모임이 완성되었다.

그날따라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가 까치발로 꺼내기도 했고

공원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같이 먹기도 했다.

그날 단지 안은 충분히 크고 바빴다.


3장. 우리의 자유는 반경 500미터


때로는 비디오 가게에도 들렸다.

‘터미네이터 2’, ‘다이하드’ 같은 테이프를 골라서 친구네 집에 모여 보기도 하였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문방구 앞에서 오락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리에게는 자유로운 주말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유도 도시계획이 미리 정해놓은 경로 안에 있었다.

분식집, 오락실, 문방구, 비디오가게, 학원, 놀이터 등 전부 단지 안 도보 5분 거리였다.

도시계획은 이미 이동 동선을 기능적으로 설계해놓고 있었다.

학교는 아파트 단지와 딱 붙어 있었고

학원은 상가 건물의 3층이나 4층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놀이터는 건물 사이사이에 고르게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방향이든 우리 또래가 나타날만하였다.

심지어 토요일 점심 이후 저녁까지만 신도시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되 구도심이나 중심지 등 너무 멀리까지 가서는 안된다라고 합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도시의 질서와 도시계획의 합리성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집 - 학교 - 상가 - 운동장 - 놀이터 - 친구집, 정해진 코스를 챗바퀴처럼 돌고 있었다.

4장. 고요했던 일요일


그리고 일요일은 마치 도시 전체가 쉬는 것처럼 고요했다.

놀이터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비디오 가게도 대여만 되고 반납은 자동함에 넣으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상가도 대부분 철문을 내린 채 조용했다.

하지만 나는 오전부터 바빴다. 교회가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는 옷을 조금 더 단정히 입었다.

평일보다 신경 쓴 옷차림, 걸음도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예배당 안에서는 장난을 치지 말아야 했고 성가대가 노래하는 동안은 정숙해야 했다.

엄마와 아빠도 하루 종일 교회에 있었다.

성인 예배, 봉사, 오후 예배까지 우리 가족은 일요일 대부분을 교회에서 거의 보내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해는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나른한 기운이 밀려왔고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일요일은 뭔가를 하지 않는 날이기보다 뭘 할 수 없는 날처럼 느껴졌다.


5장.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토요일 설렘의 공기와 일요일 조용한 질서는 도시가 만든 삶의 방식이었다.

학교는 단지 옆에 있었고 상가에는 늘 아이들을 위한 동선이 있었으며, 주말이면 도시 전체가 쉬고, 노는 흐름이 정해져 있었다.

신도시는 마치 도시민의 삶을 계획해 놓은 것처럼 우리들에게 제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자랐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오락실과 비디오 가게에서 미국을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유는 이미 만들어진 틀 속에서 허락된 것으로 보인다.

도시는 효율성을 계획했고 사람들이 관리되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우리의 삶을 유지 및 관리되지 않았다. 1997년 IMF 이후 단지 안 풍경은 집안마다 달라졌다.

조용히 이사 가는 집,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아졌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삶의 균열.

계획된 구조는 있었지만 변화하는 삶에 대응할 여유는 구조 속에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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