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처음 만나 힘차게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영어 듣기 평가에 훈련된 내 귀는 그의 이름이 '딘'인지, '닉'인지 확실히 듣지 못했다. 영어를 수년동안 공부했지만 원어민의 발음과 속도는 듣기 평가와 전혀 달랐다. 'Hi'로 시작된 그의 말은 나의 뇌가 영어를 한글로 해석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말 그대로 뇌가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6년 넘게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했는데 이름도 못 알아듣다니. 게다가 한 글자인데.
1년 전,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며칠 동안 비가 내렸고 아마 비가 그친 뒤 닉을 만났을 것이다. 이때의 기억이 벌써 흐릿해져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쓰레기 버리는 방법을 모를 때였으니, 도착 후 일주일이 채 안 됐을 것이다.
잠깐 내가 살던 집은 네 개의 집이 같은 진입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공용 마당 같은 공간이 있고 네 집 모두 그 입구를 사용한다. 그래서 오며 가며 이웃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집을 한국에서 사진으로만 보고 계약을 했기 때문에 도착해서야 어떤 집인지 알 수 있었다. 직접 봤다면 계약을 망설였을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빈번하게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장점 하나만 보고 계약을 했고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Nick을 만났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첫 만남에 나누는 영어 대화는 한국의 영어 교육 과정 중에서도 초반에 배운다.
'Hi, Are you moving here? I'm living next door. Nice to meet you! I'm Nick. And This is my partner Chloe'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사실 훨씬 더 많은 말을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저 내용뿐이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를 붙잡고 쓰레기 버리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영어가 어려운 나지만 질문을 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다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닉은 매우 좋은 질문이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앞에 놓인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쓰레기통 2개에 대해 설명해 줬다. 하나는 일반쓰레기통이고 하나는 재활용 쓰레기통인데 왜 둘 다 recykling이 쓰여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약 5분 동안 이어진 Nick의 설명을 반도 못 알아들었다. 닉은 내가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확인하듯 빤히 나를 바라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6년 동안의 듣기 평가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마 2배속, 아니 3배속으로 빠르게 돌린 느낌이다. 닉은 애매한 내 표정을 봤는지 못 봤는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아직 끝나지 않은 쓰레기통의 사용법과 쓰레기통을 내놓는 날짜, 요일 등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나는 그의 말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recykling이라고 인쇄된 글자에 몰입하고 있었다. 분명히 하나는 일반 쓰레기통일 텐데 말이지. 닉의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고 우린 헤어졌다. 집에 들어와 구글에 뉴질랜드 쓰레기 버리는 방법을 검색했다.
열정적인 내 이웃 닉은 항상 밝았다. 190이 넘어 보이는 키에 한 덩치 하는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How are you!'라고 인사했다. 처음엔 '뭐야, 어디에서 봤는데 외국인들은 인사를 'How are you'라고 인사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라고 생각했다. 이건 구식 인사법이고 한국 영어는 너무 틀에 박혀있는 교육이라고 한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토종 뉴질랜드 사람 닉은 나를 볼 때마다 'How are you!'라고 인사했다. 유튜브에서 본 모든 것을 믿으면 안 된다.
그의 가족은 닉과 클로이, 그리고 2살 꼬마 올리버까지 세 명이었다. 그리고 작년 9월 30일에 둘째가 태어나 네 식구가 되었다. 우리 집 둘째와 닉의 둘째는 생일이 똑같다. 나는 클로이가 임신한 사실을 7월이 될 때까지 몰랐는데, 한 겨울 어느 날 저녁에 만난 닉이 흥분해서 나에게 '둘째는 딸이야!'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이야기했을 때 알게 됐다. 나는 클로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에 덩달아 같이 흥분했고 우리는 아주 신이 났다. 그는 나를 덥석 안았다. 태어나서 외국인이랑 처음 해본 허그 인사는 조금 어색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밀라의 탄생을 기다렸다.
닉은 기타를 들고 우리 집에 건너와 큰 애와 같이 기타를 쳤고 우리 집 마당에 무릎까지 자란 잡초도 깎아줬다. 도둑이 자전거를 훔쳐갔을 때 같이 걱정해 주고 경찰을 불러주겠다고 했고(내가 만류했다. 도둑을 잡을 확률이 낮다), 두 번째 도둑을 만났을 때도 우리 집에 들어와 나를 걱정해 줬다. 두 번째 도둑은 현행범으로 잡혀갔고 작년에 있었던 그 일로 나는 올해 뉴질랜드에 입성하자마자 경찰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의 재판 때문에 나의 진술이 필요하니 한번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불쌍한 도둑과 나. 그는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고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귀찮은 일이 생겼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한 해를 보내고 긴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와 두 달의 휴가를 보내고 1월 말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내가 집을 비운동안 닉은 내 택배를 받아 보관해 줬다. 11월에 주문한 물건이 오지 않아서 결국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떠났는데, 이때 뉴질랜드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 시작이라 배송이 더 느리다고 한다. 그렇게 나에게 도움만 준 닉은 마지막으로 집까지 나에게 넘겨줬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학교와 가깝고 안전하고(비록 도둑이 두 번이나 들었지만. 뉴질랜드는 좀도둑이 많다고 한다.) 깨끗한 동네다. 집주인이 들어올 예정이라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거라고 부동산 관리자에게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도로가에 있는 그 집에 살면서 블라인드를 올릴 수가 없었고 집순이에겐 너무 답답한 집이라 나도 연장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닉은 나에게 밀라가 태어나고 식구가 늘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살던 집의 다음 세입자가 됐다. 뉴질랜드는 빈 집이 별로 없고 오픈 하우스를 통해 집을 둘러본 세입자들이 지원서류를 제출하면 집주인이 제일 마음에 드는 세입자를 고른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집을 또 둘러봐야 한다. 10군데도 넘게 지원서를 냈는데도 이사할 집을 못 구했다는 소리를 커뮤니티에서 많이 본 참이라 걱정이 많았다. 이 동네를 떠나면 집은 구할 수 있겠지만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닉은 흔쾌하게 부동산 매니저와 집주인에게 나를 소개해줬고 나를 보증해 줄 2명의 사람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려줬다. 그리고 12월에 그 집을 계약했다. 닉의 집은 뒤쪽에 마당이 있어 사생활 보호가 잘되고 전 집보다 훨씬 넓고 창이 많았다. 지금 닉이 떠나고 내가 이사 온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이 집에 사는 내내 닉과 클로이, 그리고 아이들이 그리울 것 같다.
닉은 20대 후반이었지만 든든한 친구였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닉이 이사 가기 전 그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허그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서양식 인사에 꽤 익숙해졌는데, 다른 키위와 허그 인사를 할 일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겠다.
닉 가족이 사용했던 뒷마당에서 글을 쓰고 있다. 며칠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어느새 가을이 왔다. 끔찍하게 추운 뉴질랜드의 겨울이 찾아오고 있지만 작년보다 덜 힘들 것 같다. 해가 많이 들고 쳐다볼 창이 많은 집이다. 일 년 내내 나를 도와주고 마지막엔 집까지 주고 간 키위 친구와 오래 인연이 지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