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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Oct 27. 2020

둥근 소리, 엄마

생일



- 엄마, 엄마~~

- 왜?

-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마워요. 고생했어요.

-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어머니, 후배들, 지인들에게 축하인사받느라 한껏 들떠 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니, 대단하지. 

20살 엄마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해 무서운 할아버지를 피해 21살의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 당시 엄마는 미싱일을 하고, 아버지는 시청에서 근무하셨다.

나를 낳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어린 청춘에 걸었다.

고생 끝에 나를 낳고서야 불안과 초조로 할아버지를 찾은 엄마. 

그리고 나를 할아버지께 맡기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다시 일터로 나가 엄마로서의 야무진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미루고 미루던 군대에 입대하여 3년 만에 병역을 마치고,

뒤늦게 합동결혼식을 올림으로 정식 부부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난 장녀다.

요즘 엄마를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허리와 다리 관절이 안 좋아 빠릿빠릿하던 몸이 느려졌다.

귀도 어두워져서 통화할 때는 싸우듯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듣는다.

그럼에도 보청기는 거부한다.

내가 무슨 노인이냐며.....

틀니 때문에 말소리는 뭉그러지고, 발음은 눈치 없이 자꾸 새 나간다.

영락없이 노인이다.


"엄마" 하고 불러 볼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걸음마를 떼기 전 처음 배운 말

"음~마!" "음마, 음마, 음마.... 엄마!"

제대로 발음이 될 때까지 쉼 없이 나왔을 말.

좋은 날에도 "엄마", 슬퍼도 "엄마", 아파도 "엄마", 외로워도 "엄마", 놀라도 "엄마",

기뻐도 "엄마", 기도할 때도 "엄마", 노래할 때도 "엄마", 늙어도 "엄마".....

평생 불렀던 '엄마'라는 단어를 탑으로 쌓으면 아마 하늘에 닿고도 남을 것이다.


"엄-" 소리에 이미 목이 잠긴다. 입 안을 가득 채운 둥근 소리가 목젖을 진동한다.

'엄' 음절 하나가 크고도 높은 신의 사랑과도 같은 절대적 사랑이 들어있다. 

"마-" 하고 소리를 내면 거침없는 사랑이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간다.

어떤 단어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 "엄마"안에 생명이 있고, 존재가 있고 죽음이 있어 우주 하나가 통째 들어가 있는 말이다. 묵직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엄마~"

자꾸자꾸 불러보고 싶다.

나이 들어 늙어 가는 이 딸이 아이처럼 불러본다.

엄-마, 엄-마, 엄-마……


오늘은 내 생일이다. 

스무 살 엄마 배에서 태어나 지극한 사랑을 지금껏 받아 온 나는 엄마의 자랑이다. 

이러니 내가 대단할 수밖에.


내겐 아직도 우주가 있다.

생일 케이크 위에서 빛나는 촛불을 보며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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