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길들이기

by 봄날의 옥토

지난 4월.
생일날 남편에게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수필가로 등단한 아내에게 어떤 선물이 어울릴지 고민했을 남편.
고민 끝에 고른 만년필은 꽤 적절한 선물이었다.

내용물을 모른 채 소박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받았을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일이 참 오랜만이었으니까.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고 상자를 열었다.
뜻밖에도 만년필이 들어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은은한 핑크 색.
문구류를 좋아하는 나는 뚜껑을 열었다 닫아 보고, 메모지에 글씨도 써보았다.
부드럽게 써지는 느낌이 좋았고, 종이 위를 스치는 펜촉의 서걱거림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만년필은 볼펜과 달랐다.
45도 각도로 기울여야 했고, 글씨는 제법 굵게 나왔다.
나는 그동안 펜을 거의 90도에 가깝게 세워 쓰는 습관이 있었고, 0.5mm 정도의 가는 펜을 선호해 왔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쓰기 습관’이었다.

처음엔 만년필이 손에 익지 않아, 내가 쓴 글씨가 어색하고 못나 보였다.
점점 쓰기 싫어졌고, 결국 만년필은 서랍 속에 들어가 한동안 잊혔다.

그러다 문득 펜을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펜에 길들여져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꾸 쓰다 보면 익숙해질 테니까.
그날부터 노트에 매일 짧은 글 한 편씩 필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도 필사했다.
내 글을 만년필로 옮겨 적는 기분은 묘하고도 새로웠다.

몇 주가 지나자 만년필은 내 손에 착 감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주 만족스럽다.
손가락에 힘을 빼고 45도 각도로 기울이면, 굵고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나만의 새로운 글씨.
나는 요즘 그 글씨로 내 글을 필사하고 있다.
작은 변화이자 새로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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