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딩동!
"39번 고객님~"
다음 고객을 호출했다.
"안녕하세요.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내 앞에 앉으셨다.
"예금이 만기가 되어서 왔습니다. 이천만원 중 천만원은 재예치하고, 나머지는 찾도록 해주이소."
통장, 신분증, 도장까지 착착 꺼내어 올려놓으신다.
그런데 예금주는 남편, 신분증 또한 남편의 것이었다.
"고객님, 만기금 전체를 재예치하는 업무는 대리인이 서류를 갖춰오시면 가능하지만 일부라도 찾아가셔야 한다면, 반드시 본인이 나오셔야 해요."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진다.
"매년 내가 했어요. 남편은 몸이 불편해서 누워있어요. 오늘 집수리 비용을 줘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그렇지만 규정대로 해야 하기에,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내게 속삭이듯 말씀하신다.
"사실... 남편이 모르는 돈인데, 그거 알면 나한테 월급을 안 줄 텐데..."
순간, 마음이 찡했다.
그 ‘월급’은 남편이 매달 주는 생활비. 수십 년간 가정을 꾸려오며, 남편 몰래 모아온 돈.
그 돈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할머니의 자존심이자 독립적인 삶의 흔적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드리고, 사정을 이해하지만 죄송하다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못 갑니다."
할머니는 돌아서더니, 입구에서 다시 번호표를 뽑아 들고 의자에 앉으신다.
가까이 다가가 여쭈었다.
"혹시 더 하실 업무 있으세요?"
"다른 창구에 가서 다시 사정해 보려고요."
나는 옆 직원에게 슬쩍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두 번의 거절을 당한 할머니는 힘없이 돌아가셨다.
점심시간. 자리를 뜨려는데, 입구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할머니였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정정한 할아버지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