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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낮에 뜬 달과 악몽 - 2. 광어회 그리고 무당

여행 소설

‘좋은 분이신 것 같은데,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네요.’ 


최근에 친구의 소개로 두 번 만난 사람에게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알겠다고,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란다고 답변을 보낸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첫 번째에는 서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날 약속날에 불현듯 그 악몽이 재발하고 만 것이다. 약속을 취소한다는 문자는 남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고, 해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리 없다. 결국엔 이렇게 된다. 365일 중 악몽으로 틀어박히는 기간을 다 합쳐 보아도 대강 보름 정도다. 하지만 그 보름은 1년의 자유를 충분히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어느샌가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기간과 겹쳐 시험을 망친 적도 한 번 있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대학교는 수업을 한 두 번씩 빠져도 동아리를 빠져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어떻게 만들지? 만약 오래 사귄 여자친구라면 이런 나를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깊은 관계를 쌓기 전에 이런 식으로 끝난다. 나는 과연 누군가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만약 연애를 한다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피상적인 관계로만 남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취직을 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지도 해결책이 없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고 난 후에도 나를 좋게 봐줄 직장 동료가 있을까? 연차를 전부 틀어박히는 데 써야 할지도 모른다. 직장을 다닐 수는 있을까?



 소개를 주선해 준 대학동기에게 톡을 보낸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잘 안되긴 했지만, 그래도 소개해준 친구에게 술이라도 한 번 사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딱히 별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술 사준다고 하고 횟집으로 불러냈다. 모둠숙성회가 메인인 가게다. 일반 횟집보다는 가격이 비싸서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누가 사준다거나 공짜로 먹을 기회가 생길 때 혹은 반대로 누군가에게 대접할 때 가기 좋은 장소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오는 콘치즈와 부추전과 술을 마시면서 수업이나 최근 뉴스, 주식 같은 잡다한 이야기들을 한다. 메인인 모둠회가 나오자 대학동기, 민정은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안된 거야? 또 뭐가 문제야. 처음 봤을 때 괜찮다고 이번에는 잘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


여기 광어회는 일반 횟집과는 다르다. 3킬로 이상의 대광어만 쓴다고 한다. 상추에 대광어를 한 점 올리고, 쌈장, 마늘, 청양고추를 섞어 만든 회막장을 올려서 먹는다. 소주를 한 잔 마신다. 오늘은 평소보다 술이 덜 쓴 것 같다.


“나도 이번에는 잘 될 줄 알았지.”


“그래서 뭐가 문제였는데? 문제를 알아야 다음번엔 좀 더 잘해볼 거 아냐.”


얘는 나에게 무슨 빚이 있는지, 아니면 중매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준다. 


“처음 만날 때는 분위기 괜찮았지. 스타일도 좋고, 이야기해 보니 책이나 영화 취향도 비슷하던데.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더라. 서로 잘 맞아서 잘 될 것 같았는데”


 “그런데?”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게 문제. 만날 때는 괜찮은데, 만나지 않을 때 연락을 지속하고 계속 이어가는 게 힘들어. 눈앞에 없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쏟는 게 어렵달까? 거기다… 두 번째 만날 약속을 했는데 딱 그때 무슨 일이 생겨서 말이지. 약속을 미루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끝나버렸네.”


“또 그거냐? 갑자기 틀어박히는 그 습관?.”


이 친구는 내 그 틀어박힘을 대강 알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 현상만큼은. 대학에서 알게 된 같은 과동기고, 같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습관이 아니라니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뭐 어찌 됐든 그거 맞아. 그거 때문에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나니까 뭐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런 거지, 뭐.”


도미회를 한 점 집어 와사비간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하고, 달다. 소주도 한 잔 마신다. 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종류의 씁쓸함을 맛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 습관인지 버릇인지 하여간 뭐든 간에 빨리 어떻게든 해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


“어떻게든 한다니?”


“이유를 찾아서 없애버리든 어떻게든 하라는 거지. 계속 그러면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지 않겠어?”


“그건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니까… 심리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것인지.”


“그거 때문에 병원에 찾아간 적은 없지?”


“그렇지. 몇 번 가보려고 한 적은 있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민정은 전복을 초장에 살짝 찍어 먹는다. 이어서 소주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나에게 무언가 말해줄 것이 있는 걸까.


“너 귀신이니 신령이니 그런 무속 신앙 믿냐? 무당이라거나.”


“뜬금없네.” 


무속 신앙이라니?


“뭐 … 딱히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정도.”


“.. 사실 우리 할머니가 무당이다?”


“와, 진짜? 그런 직업 가진 사람 주변에서 처음 보네. 사람들 점치고 그러는 분이야? 어떻게 무당이 되신 거야?”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먼저 무당은 두 가지로 나뉜다. 세습무와 강신무. 세습무는 말 그대로 세습을 통해 무당이 된 사람이다. 특정한 지역의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주면서 마을 축제나 굿을 진행하는 사람. 굿은 여러 신들에게 인간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비는 행사이며, 우리나라에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는 굿들은 대부분 세습무들이 보유하고 있다. 강신무는 다르다. 강신무는 신병이 들거나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사람이다. 그 신기를 이용해 점을 치거나 사주팔자를 보는 등으로 돈을 벌거나 한다. 물론 타인이 신병이나 신내림을 확인할 방법은 없기에 사이비나 사기꾼도 많다. 친구의 할머니는 신병이 들어 강신무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무당이라 하면 말이지, 보통 부정적인 시선이 많거든. 특히 최순실 사태 이후로는 말이야.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꼬드겨서 돈을 뜯어낸다거나. 할머니는 그런 사람은 아냐. 점을 봐주시는데 돈을 받지도 않으시고, 딱히 영업을 하시는 것도 아니라서. 거기다… 할머니는 점이 진짜 잘 들어


맞는다고.”


“진짜로?”


“응. 진짜.”


친구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게 술을 한 잔 따른다.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영어 학원을 그만두라고 하시는 거야. 나야 뭐 학원 그만두니까 당연히 좋아라 했지. 어머니는 당연히 할머니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잘 다니고 있는 학원을 왜 그만두냐고 말했지만. 아버지가 설득했지. 할머니는 어지간한 일이면 찾아오지 않는다, 자기도 할머니의 능력을 백 프로 믿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완고하게 말씀하실 때는 한번 믿어 보는 게 어떠냐고. 그러고 세 달 후에 학원 선생 중 한 명이 아동학대랑 성추행으로 잡혀 갔어. 그 이후에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예전에도 그런 일 많았고, 그래서 친인척들은 할머니 말은 다 믿는다고 하시더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뭐 …. 근데 할머니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너의 그 습관, 혹은 그 병에 대해서 할머니가 뭔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친구가 말하기를 주변 사람들이나 친인척들은 하던 일이 난관에 봉착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할머니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마치 부족사회의 제사장이나 농경사회에서의 촌장이나 어른이 하던 역할과 비슷하다. 무당이니 무속신앙이니 하는 것을 그다지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당면한 이 문제가 병원에 가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 현대의학과 과학 혹은 심리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더 근원적인, 원시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문제에는 조금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무속 신앙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을까?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더 고민하고 말을 꺼내보았다.


“내가 찾아가거나 그러면 할머니께 너무 폐를 끼치거나 그런 거 아냐?” 


 “뭐 딱히? 할머니 술 좋아하시는데, 좋은 술 한 병 사가면 될 거야. 그것보다는 네가 찾아가는 게 더 힘들걸?”


“왜? 어디 사시는데?”


“강원도 치악산 위에. 버스 타고 산 아래까지 가고 네다섯 시간쯤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그런 정도라면 괜찮다. 오히려 서울 내에서 지하철로 간단하게 도착할 수 있는 장소라면 뭔가 김이 새는 느낌이다. 다음에 친구가 할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언제 찾아가면 괜찮은지 알려주기로 했다. 과연 이걸로 내 문제에 대해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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