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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낮에 뜬 달과 악몽 - 3. 치악산

여행 소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그리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치악산으로 이동한다. 나는 기차나 시외버스 등 긴 거리를 이동할 때는 대체로 잔다. 멀미가 심해서 그렇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그런 버릇을 들이고 나니 이동수단에 타기만 하면 졸린다. 가끔 자느라 내릴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교통수단을 탈 때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장소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운전하거나 걸어서 혹은 직접 운전하지 않더라도 풍경을 보는 등 이동 여부에 대해 인식하면서 움직인다면 출발지와 목적지가 이어져 있다는 연속적인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풍경을 볼 수 없는 지하철을 타거나, 풍경을 보지 않거나, 잠이 들면 결과는 상이하다. 경험이 연속적이지 않다. 그러한 불연속성은 도착 장소를 기존에 생활하던 곳과는 무언가 동떨어진 곳이라는 감각을 주게 된다.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러한 이질감이 여행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함일지도 모른다.


 치악산 자락에 도착했다.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도 서울보다는 공기질이 깨끗할 테지만, 그 외에도 무언가 다른 느낌을 든다. 어디든지 사람과 자동차,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차 있는 도시와는 다르다. 사람도 나뿐이고 나를 여기까지 실어다 준 버스 이외에는 차도 없다. 들려오는 소리라곤 바람, 나무, 그리고 어딘가에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뿐이다. 무언가 마음이 차분해지고 신성한 느낌이 든다. 오늘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가방을 고쳐 맨다. 가방에는 혹시 몰라 준비한 옷 몇 가지와 세면도구, 혹시 등산 중에 배고플까 봐 육포랑 에너지바도 챙겨 왔다. 그리고 할머니께 드릴 선물인 술이 두 병 들어있다. 도수가 45도의 안동소주다. 물에 희석해 먹어도 좋고, 얼음에 차갑게 해 먹어도 좋고, 물론 그냥 먹어도 좋다. 전통적인 직업인 무당에다 나이 드신 분이니 안동소주가 어떨까 싶어 준비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길 주변에 산 밖에 보이지 않았고, 길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버스가 다니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친구가 알려준 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간다. 나무가 울창하고 좁은 길이다. 경사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나무로 인해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정오 부근인데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래도 이정표만 없을 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어 다니기는 불편하지 않았으며 하나의 길 밖에 없어서 별로 헤맬일은 없었다. 그렇게 비슷한 길을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걸었다.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이 길을 걸으면서 산속에 사시는 무당 할머니는 이 길을 평상시에 걸어 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 있는 마트라도 가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여기를 지나가야 할 텐데. 왜 이 산속에 사시는 것일까? 그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이 산속에 사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산속을 걸을 때는 시간, 공간 감각이 희미해진다.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니 올라오기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났다.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와도 길이 포장도로가 아니라 제법 힘들다. 무엇보다 어디까지 가야 도착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압박으로 다가온다. 친구는 버스에서 내려서 입구에서 네다섯 시간 정도 올라가면 처음으로 갈래길이 나올 것이고 오른쪽 길로 가면 그 끝에 할머니의 집이 있다고 말해줬다. 말해줄 때는 그 정보만 듣고 어떻게 찾아가냐고 따졌었는데, 일단 가보면 안다고 말했다. 그 정보 하나만 가지고 어디가 정상인지 여기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세 시간 정도 지나니 괜스레 겁이 난다. 이 길이 맞는 걸까. 혹시 다른 길로 온 것이 아닐까. 만약 잘 못 왔다면 다시 세 시간을 내려가 제대로 된 길로 다시 네다섯 시간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멈춰 서서 숨을 골라본다. 맞는 건가? 아마 맞을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올라간다. 길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올라오면서 주변을 잘 살피면서 올라오지 않았는가. 등산을 시작한 지 대략 4시간. 계속해서 한 길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르쳐준 대로라면 슬슬 갈림길이 나올 것이다. 


 5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갈림길이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갈림길이라기보다는 메인에서 뻗어나간 서브 길이다. 포장된 길은 아니지만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켜켜이 쌓여 길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갈림길처럼 보이는 길이 하나도 없었고, 시간상 슬슬 나올 때가 된 찰나에 나온 걸 보니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 숨을 고르고 길로 들어선다. 길을 따라가니 머지않아 평평한 공터와 집이 있었다. 아무래도 올바르게 찾아온 듯하다. 근처에 창고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고, 구석에는 텃밭이 가꾸어져 있었다. 텃밭이나 창고에 기대어진 여러 농기구를 보았을 때 사람이 사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외에 다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드문드문 들려오는 산새의 소리 이외에는 다른 소리가 없다. 집 근처로 가보아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노크를 한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인기척도 없다. 실례합니다, 하고 소리 높여 불러보아도 대답은 없다. 아무래도 잠시 집을 비우신 것 같다. 살짝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문이 잠겨있지는 않았다. 하긴, 굳이 문을 잠글 필요는 없다. 이런 곳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도둑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집에 그냥 들어가는 것은 꺼려진다. 잠시 생각하다가 일단 집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집에 기대어 앉는다. 긴장이 풀리니 두 시간 등산의 피로가 몰려온다. 팔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켠다. 육포를 꺼내서 씹는다. 그러다가 아까 한 생각이 다시 들었다. 평범한 20대 남자인 나도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왜 이 올라오기 힘든 곳에서 생활하시는 것일까. 산속에 사는 것에 큰 장점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본다. 공기가 좋다. 그리고 매미소리가 가득하다. 산속을 올라오기 전 까지는 매미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는데, 이 집 주변에 매미가 많이 서식하는 것인지, 혹은 공터라서 소리가 잘 들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매미소리로 가득하다.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매미 소리가 주변을 덮고 있다. 기대어 앉아 귀를 기울여 매미소리를 들어본다. 평소에 듣던 매미소리와는 조금 다르다. 산속에 사는 매미와 도시에 사는 매미는 다른 것일지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크고 높은 소리는 아니다.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다.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소리다. 귀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뇌에 직접적으로 들리는 것처럼. 여기는 또한 인공적인 빛이 없다. 구름이 안 끼는 날이라면 별도 잘 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하늘이 맑다. 한밤중에 밖에 나오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소다. 지금 9월이라 날씨도 덥지도 춥지도 않고 적당하다. 밤에 밖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공기가 좋다는 것 이외의 차이점은 역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점을 치거나 운세를 보고 돈을 벌어야 하는 무당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분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니 일반적인 무당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서 넌지시 경고를 한다거나, 친척이나 이웃들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능력에 대해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진짜로 능력이 있다는 것의 반증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귀신이나 영혼, 샤머니즘 같은 것은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직 과학으로 증명된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는, 그중 특히 사람에게는 수많은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중에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중에 예지력,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수많은 상황 요인을 알아차리는 높은 인지력과 그것에서 결과를 도출해 내는 연산력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슬리퍼를 신은 채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가는 사람의 발 앞에 얼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사람이 미끄러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과 비슷하지만 더 수많은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재빠르게 고차원적으로 처리한다면 미래를 점치는 것도 가능하다. 수백만 명 중 한 명 꼴로 그런 사람이 나오지만 자신마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없고 자연 속이라 받아들이고 처리할 정보가 제한적인 이런 장소가 그런 능력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장소인 것이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곳까지 찾아올 테니까. …라는 쓸데없는 망상을 해본다. 그냥 여기는 집이 아니라 별장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쯤 오는 주말농장 같은 느낌으로. 내가 오늘 찾아온다는 것은 알고 계실 테니 지금 오는 중이실지도.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 오는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해도 슬슬 지고 있다. 오후 네 시. 땀도 다 식어서 슬슬 춥기도 하다. 오시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인터넷이 신호는 잡히지만 너무 약해 안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친구에게 전화해 보았지만 전화도 받지 않는다. 신호가 약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안 받는 건지. 할머니 연락처도 없어 연락을 할 수도 없다. 계속 밖에서 기다려야 할까. 일단 들어가서 기다려도 괜찮을까.


 고민 끝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한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할머니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몸을 일으켜 옷에 붙은 먼지나 풀을 털어낸 후,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간다. 신발을 벗고 둘러본다. 집에서 주무시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 신발장 오른쪽에는 부엌이, 왼쪽에는 거실이 있다. 그리고 안 쪽에는 방 하나가 있다. 슬쩍 가서 방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집 안에 계신 것은 아니다. 집을 둘러본다. 산 한가운데에 있는 집 치고는 있을 것 다 있는 평범한 집이다. 전기나 수도도 완비되어 있다. 부엌을 본다. 가스레인지는 아니고 인덕션이다. 묘하게 현대적이다. 목재로 지어진 집이라 화재 위험 때문일까? 부엌의 식탁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음. 내려가기에는 늦었으니 자고 갈 것. 집 안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써도 좋다. 밤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 것.’


정황상 나에게 할 말을 써 놓은 메모일 것이다. 원래 계셨는데 어떠한 사정으로 다른 곳에 가신 것 같다. 지금 내려가면 밤이 되어 길을 잃거나 위험할지도 모르니 자고 가라는 것 같다. 약간 허무하다. 여기에 오려고 새벽부터 출발해 한나절 간 등산을 했는데. 그런데 약간 헷갈리는 것은, 내일이면 오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헛걸음이라 생각하고 돌아가라는 의미인가? 행간에 내가 눈치채지 못한 의미라도 있나 싶어 몇 번도 읽어 보았다. 딱히 다른 뜻은 없는 듯하다. 혹시 다른 메모가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없다. 아무래도 나에게 전달할 말은 이게 전부인 듯하다.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밤은 위험하고 굳이 바쁜 일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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