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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낮에 뜬 달과 악몽 - 4. 전화

여행 소설

 그렇게 되었으면 일단 저녁이다. 배고프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써도 좋다고 하셨으니. 냉장고에는 김치나 장아찌로 보이는 여러 반찬들이 있었다. 밥솥에는 밥이 없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밥을 지어먹어야 하나보다. 그 정도까지 마음대로 쓰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귀찮기도 하고. 찬장에 파스타면과 레토르트 소스가 있으니 이것을 먹기로 하자. 물을 끓이고 파스타면을 넣는다. 시간을 재려고 스마트폰을 보았는데, 배터리가 40%다. 바보같이 보조배터리나 충전기를 들고 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집 안을 찾아보았지만 충전기는 없었다.  내일 내려가서 집까지 갈 것을 감안하면, 지금은 꺼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면 삶는 시간은 적당히 세기로 한다. 


 익힌 파스타면을 적당한 그릇에 담고 소스를 붓고 섞는다. 그릇과 포크를 들고 부엌의 식탁에 앉아 먹는다. 이제 저녁이 시작인데 잘 때까지 무얼 할까. 거실에는 소파와 테이블만 있을 뿐, 텔레비전은 없다. 스마트폰을 끈 데다가 시계도 없어 정확히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대략 7시 정도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12시는 되어야 자니까 5시간 정도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일단 집을 나가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혹시 할머니가 올라오고 계실지도 모른다. 집으로 오는 갈림길까지 나가본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고 아래를 유심히 살펴보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들리지 않는다. 풀, 숲, 새소리 말고는 작은 인기척조차 없다. 갈림길에서 집 방향이 아닌 위로 올라가는 길을 본다. 아래보다 나무가 촘촘히 들어서 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어두운 것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보는데서 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건 위로 올라가는 것은 가벼운 식후 산책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코스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드러눕는다.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깔기도 내키지 않고, 적당히 소파 쿠션 하나를 베고 누웠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어떤 이유에서든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면, 거기다 그 취소에 대해 늦게 알게 되었다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에. 하지만 나는 지금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왜일까. 나중에서야 알아차린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무당 할머니를 찾아와 상담하는 것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보다는 여기 산 깊은 곳까지 찾아온다는 귀찮고 수고로운 행동을 통해서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까지 노력을 하고 있다’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할머니가 계시든, 무슨 말을 하시든 큰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한 달간 묵언 수행을 하라고 하면 그리했을 것이고, 매일 100번씩 절을 하며 천지신명께 기도를 하라고 하면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내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내 문제는 누군가와 함께 해결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어렴풋이 느꼈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간접적이며 먼 길을 돌아가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운 해결 방법이다. 많은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이 시기의 나는 그런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나 수업, 과제 따위의 닥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잠에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벨소리가 울린다. 특이한 벨소리. 보통의 벨소리처럼 신경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라, 낮고 묵직한 그렇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리다. 뇌를 울리는 것처럼,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소리다.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키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서 나는 벨소리지? 스마트폰은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전원을 껐을뿐더러 이런 벨소리는 처음 듣는다. 그럼 이 소리는 내 벨소리가 아니라 이 집의 전화일 것이다. 아직도 집에 전화가 있는 곳이 있나?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있기에 가게에만 유선 전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무당 할머니의 집이니 영업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다. 내가 받아야 하나? 어떤 전화인 줄 알고? 받을지 말지 고민한다. 여기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눈을 비비고 엉거주춤 일어난다. 일단 받기로 한다. 그런데 전화는 어디 있을까.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안방이다. 다이얼을 돌려서 전화하는 방식의 오래된 전화기다. 낡았어도 소리는 우렁차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니 일단 가서 받아본다.


“여보세요.”

“...”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흔한 숨소리도.

“여보세요?”

“...”

말이 없다. 할머니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아서 놀란 것일까? 할머니가 안 계시다는 것만 말하고 끊자.

“지금 할머니가 부재중이십니다. 내일 다시 걸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의 높낮이나 말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중성적인 목소리다.

“… 집의 뒤 쪽을 보면 샛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쭉 오시면 됩니다.”

무슨 소리지? 할머니한테 하는 소리겠지? 내가 한 말을 못 들었나보다.

“할머니는 지금 부재중이세요. 저도 만나려고 왔는데 못 만났네요. 메모라도 하나 남겨드릴까요?”

“집의 뒤 쪽을 보면 샛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쭉 오시면 됩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하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말하려는 찰나,

“… 무당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말하는 것 입니다. 집의 뒤 쪽 샛길을 따라 오세요.”

흠칫 놀라 수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잠시 수화기에서 얼굴을 멀리 떼어놓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나? 여기를 소개해 준 대학동기, 그리고 무당 할머니뿐이다. 그 둘이 나에게 이런 장난을 칠 이유는 없다. 잠시 생각하다가 수화기에 얼굴을 붙이고 말한다.

“…누구세요?”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매몰찬 대답.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다. 말문이 막힌다. 그냥 끊어버릴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질문을 해 보고 끊는 것으로 하자.

”… 왜 내가 당신 말을 들어야하는 거죠?“

수화기 너머에서는 작은 한숨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대답이 이어진다.

”당신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오지 않는다면 당신의 반복되는 악몽과 그에 대한 불안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만 말해두죠.“


악몽? 불안?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한다. 그게 무슨 소리지? 잠시 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고는 뒷걸음질 치며 수화기를 떨어트린다. 어떻게 아는 거지? 지금껏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서둘러 수화기를 든다. … 전화는 끊어진 상태다.


 어떻게 하지? 말을 들어야 하나? 지금 이 밤에?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잠에 들기는 한 것 같은데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은 꺼져있고, 집 안에 시계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몇 시 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전화기 너머의 그 사람은 내 꿈에 대해서 알고 있다. 혹시 내가 악몽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아니, 없다. 이에 대해 술김에라도 말하지 않으려고 지금껏 편안하게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려고 생각은 해본 적 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시에 문제가 될 까봐, 대학교 들어와서는 소문이 퍼져 대학 생활을 망치고 취직도 못 하게 될 까봐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내 증상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몇 명 있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증상뿐이다. 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혹시 이 무당 할머니네 집에 자주 걸려오는 장난전화일까? 무당을 찾아올 만한 사람들은 무언가 안 좋은 꿈을 꾼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여러 가능성에 대해 잠깐 고민하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본다. 캄캄하다. 할머니의 집 말고는 아무 광원도 없다. 일단 집 뒤편으로 돌아가 본다. 수화기 너머의 말 대로 길이 하나 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길 저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고민하다가 집 옆에 있는 창고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마치 나보고 사용하라고 하는 것처럼 커다란 손전등이 하나 놓여 있다. 들고 나와 샛길 앞에 선다. 다시금 고민한다. 가는 게 맞을까? 이 밤 중에, 무엇이 나올지도 모르는 산 깊은 곳으로? 내 꿈에 대해서 안다는 말 하나만 듣고? 분명 무당 할머니는 메모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밤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 것.’ … 그렇지만 나는 가야 한다. 나는 꿈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왔고, 기대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내 악몽에 대해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의 제안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곳에 온 이유가 없다. 해결할 수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야 한다. 이 말을 무시한다면 내 꿈을, 악몽을 영영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손전등을 들고 샛길로 들어간다. 앞은 캄캄하고 길은 구불구불하다. 손전등은 겨우 발 밑 만을 비춰줄 뿐이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 악몽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당사자인 무당 할머니는 자리를 비웠고,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 꿈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꿈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이고, 내 꿈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밤 중에 나를 이 산속 깊은 곳으로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생각하지만 실마리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참을 걷던 중 길이 끊겼다.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춰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나무와 풀,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있을 뿐이다.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손전등의 불빛도 숲 속 어둠에 먹혀버려 먼 곳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맑은 날이지만 샛길을 따라 들어온 이 숲 속은 나무가 우거져 달빛도 비치지 않는다. 돌아갈 때 혹시 배터리가 모자랄지도 모르니 손전등을 끄고 내려놓는다. 불을 끄고 나니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어둠. 얼마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떠올리고는 주변을 향해 저기요, 하고 외친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몇 번 더 소리를 높여 외쳐보지만, 내 외침 또한 어둠 속에 삼켜져 먹먹하게 들린다. 역시 아무런 응답도 없다. 걸어오느라 지쳐서 자리에 주저앉는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짙은 어둠에 시각이 마비되고 나니 시간감각마저 모호해진다. 이곳은 샛길이 맞을까. 제대로 길을 따라온 것이 맞을까. 아니 지금 여기가 현실이 맞을까? 전화를 받을 때부터 쭉 꿈인 것이 아닐까? 뺨을 살짝 때려본다. 당연하게도 감각은 확실히 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의 흙을 턴다. 아무래도 그 전화는 별 의미 없는 장난이었던 듯하다. 손전등을 들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는 찰나, 휙 하고 무언가 휘두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피하려다가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는다. 뭐지? 바람? 나뭇잎인가? 기척이 있던 곳을 보지만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착각한 것일까? 다시 일어나 주변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 다시금 기척이 느껴진다. 피하긴 했지만 머리 옆으로 무언가 휘둘러졌다. 진짜다. 진짜 무언가 있다. 길쭉한 나무막대기 같은 것이다. 누가 휘두르고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손전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 빠르지는 않지만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허겁지겁 피하다 보니 등이 나무에 부딪힌다. 그다음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무릎을 맞는다. 아픔에 무릎을 움켜쥐고 쓰러지고 차례로 머리와 어깨, 몸통이 가격 당한다. 아픔에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몸을 웅크려 방어한다. 혼란스럽다. 이게 무슨 일이지? 무엇보다 억울하다. 내가 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산 깊은 곳까지 시간 내서 왔다. 그런데 어쩌다가 갑자기 아무런 논리도 개연성도 없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왜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런 어둠 속에서 얻어맞아야 하는 것일까. 억울하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이런 내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휘두르기가 몰려온다. 아픔에 어느 정도 적응되고는 옆으로 굴러 피해 일어난다. 어디서 이런 공격이 들어오는 것인지 어둠 속을 노려본다. 이제는 눈이 어둠에 적응되었는지 흐릿한 형체가 보인다. 그 형체를 노려다 본다. 그 녀석도 나를 노려보는 듯 가만히 서 있다. 나보고 덤벼보라고 하는 듯이. 그를 주시하며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맞서 싸워야 할까, 아니면 도망쳐야 할까. 이 녀석이 나를 불러낸 사람일까. 내 악몽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일까.

“너 뭐냐? 내 악몽에 대해 어떻게 알고있지?”

 아무 대답도 없다. 아니, 말을 할 수 있는지 조차 의문스럽다. 애초에 사람이기는 한 걸까?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아닐까? 주변을 곁눈질로 슬쩍 훑어보니 굵은 나뭇가지가 몇 개 보인다. 저 녀석이 들고 있는 것도 기껏해야 막대 같은 것이다. 싸워야 할까? 그 형체는 더는 덤벼들지 않고 나를 향해 가만히 서 있다. 표정도 없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녀석의 뜻은 명확하게 느껴진다. 덤벼라. 나에게 달려들어라. 나와 맞서라.


 …아니다. 이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과 싸울 수는 없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는 것은 자신 있다. 악몽 속에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으니까. 한 번 더 공격이 들어오면 그때를 기회삼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 녀석을 주시한다. 시야 구석에 아까 떨어트린 손전등이 보인다. 그 녀석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손전등을 향해 달려가 집고는 켜서, 걸어온 온 길을 따라서 뛰어서 도망친다. 달리다 몇 번 넘어질 뻔하면서 정신없이 계속 달린다. 뒤는 쳐다보지 않는다. 집 근처까지 어떻게든 도착했다. 중간부터 따라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힘이 빠져 문 앞에 드러눕는다. 드러누운 채로 심호흡하며 밤하늘을 바라본다. 숲 속은 암흑같이 캄캄했지만 집 주변은 나무가 없는 공터라 달빛이 비쳐 어둡지 않다. 너무나 어두운 곳에 있다가 온 까닭일까 한낮처럼 밝다고 느껴진다. 공터의 밤하늘 정중앙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다. 보름달이 내 눈을 가득 채운다. 잠이 쏟아진다. 여기서 잠에 들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길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체감으로는 잠이 들자마자 깬 것이라고 느껴질 만큼 짧고 달콤한 잠이었다. 눈이 부시다. 눈을 뜨고 이내 강렬한 태양빛에 눈이 자동으로 찌푸려진다. 잠에 들기 전 달이 있던 바로 그 자리, 하늘의 정중앙에 태양이 있다. 눈을 찌푸린 채 살짝 해의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조그만 달이 있다. 낮에 뜬 달이다. 잠에서 깬 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있었다. 달을 홀린 듯 바라보면서. 낮에 뜬 달. 낮이었지만 밤만큼이나 더 선명하게 보였다. 강렬한 태양 옆의 달이라는 그 이미지는 그 당시의 장소, 상황과 더불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낮에 뜬 달을 보고 이 과거의 일들이 이렇게 생생히 떠오르는 것을 보면 꽤나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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