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돈이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부모님에게 말을 할 것인가. 어쩌면 내 의사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몇 주 정도, 길면 방학 때 한 두 달 정도 여행을 갔다 오는 일이야 흔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학업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휴학을 해야 한다면? 그로 인해 졸업이 미뤄지고 취직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나는 그런 불이익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그 이유를 부모님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내 악몽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정체도 이유도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행을 가는 것이 도대체 왜 악몽을 해결하는 방법인지에 대해 - 그 방법을 친구의 무당 할머니가 알려주었으며, 직접적으로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런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곁들여서 - 또한 그것이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이상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왠지 가능할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날 산에서 있었던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에게 여행에 대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악몽을 없애는 것을 제외한다면, 내가 여행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 보이니까’이다. 그렇지만 재미는 감히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여행을 자주 가는 친구들에게 여행을 왜 가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기분 전환 삼아서, 관심 있던 것들은 직접 찾아가서 보려고, 그냥 가고 싶어서. 친구들의 대답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기에 별 수 없이 이런 몇 가지 이유들을 섞어서 내 스토리를 만들었다. 마치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처럼, 회사 상사에게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는 것처럼.
참 어리석은 일이다. 허락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그것을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고, 또 결과를 감당할 수 있으면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독립적인 개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부모와 다른 집에 살고, 그렇게 부모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대의 나에게 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실감 나지 않았다. 미래보다는 과거가 더 가까웠다. 대학은 중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을 뿐 핵심은 똑같았다. 그 핵심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가정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예컨대, 대학교 휴학신청서 양식에는 부모 서명란이 있다. 학교를 잠시 쉬는 것은 학생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 1학년이 되면 만 19세가 넘어 투표를 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지만, 대학교의 입장에서 대학생은 온전한 성년이 아니었다. 부모가 대학 등록금을 내고,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부모의 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학과 사무실에는 매일같이 학부모의 전화가 걸려오고 때로는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자신들의 아들딸을 위해서. 수강신청을 실패했는데 수업에 넣어줄 수 없냐, 휴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성적이 어떻게 되냐, 시간표가 어떻게 되냐, 등등. 원칙적으로는 학부모에게 이러한 학생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줄 수 없다. 그렇지만 대학교에 전화를 걸거나 찾아오는 학부모들은 아들딸이 자신과 타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어떤 대학교에서는 이러한 학부모의 민원이 너무 많아 힘든 나머지 학부모가 직접 학생의 시간표, 성적, 학사일정 등등을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회에서 대학생은 독립적인 성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변명일 뿐이다. 독립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내가 가정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의 근원은 편안함이었다. 내 생활비를 내가 벌지 않아도 된다는 몸의 편안함보다는 정신의 편안함이다. 돈이야 어떻게든 벌 수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는 스트레스는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등학생까지 나는 결정해야 할 것이 없었다. 몇 시에 일어날지, 삼시세끼 무엇을 먹을지, 무슨 과목을 언제 공부할지, 어느 대학을 들어갈지까지.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기에 아무 책임도 질 일이 없었다. 가정을 나오고 난 후, 독립을 하고 난 후에는 이제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들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두려웠기에 빠져나오지 않는 것을 택했다. 결정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면 편안하다는 사실을 청소년기에 자연스레 깨달았고 거기에 중독되어 버렸다. 그때의 나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대학생이 된 후 늦잠을 자도 되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게임을 해도 된다는, 유아 수준의 자유에 함몰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자신의 행동을 부모에게 허락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저 여행을 가려고 생각 중인데요.”
부모님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눈짓을 했고 어머니는 대화를 이어갔다.
“갑자기?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생겼어?”
“아니요.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고 싶은 것은 아닌데요, 세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어요. 다양한 문화도 경험하고, 그 나라의 유적지와 박물관도 가보고, 색다른 음식들도 먹어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구경도 하고, 그런 여행이요.”
“기간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1년 정도요.”
표정의 변화 없이 이것저것 질문만을 던지던 어머니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1년이라는 기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상상해 보는 듯이. 그러고는 이내 말을 꺼냈다.
“너무 길지 않니?”
“1년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가는 건 아니고 돈을 좀 모아야겠지만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여행자금을 모으려고 하는 거 거든요. 앞으로 1년 정도 더 모으고, 두 학기 휴학을 하고 여행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내 여행 준비 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평가를 기다렸다.
“1년 간 여행을 다녀오면 그동안 지금 배우는 것들도 까먹을 거고,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졸업할 텐데. 졸업 전에 휴학하면서 스펙 쌓아서 경쟁력을 올리는 애들도 많잖아. 그래도 부족한 마당에 1년을 여행으로 허비하면 취직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어머니는 부드러운 어조와 현실적인 이유로, 철없는 아이를 부드럽게 타이르는 듯이 반박했다.
“여행 후에 더 노력하면 되죠.”
나는 반항 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그 뒤로도 몇 마디 말이 더 오고 갔지만 서로 간의 진전은 없었다. 나는 여행을 가도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고, 어머니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말없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돼. 1년은 길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그날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이후에도 여행에 대해서 부모님과 수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몇 번의 대화는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가도 괜찮다고 주장했고 부모님은 너무 길고 취업이나 학업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말했다. 대화는 그렇게 긴 평행선을 그렸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 속에서 부모님의 상황과 생각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로도 딱 그럴 정도이기도 했고, 회사에서의 상황도 몇 년 이내에 나가는 것이 확실시된 상태였다. 곧 다가올 은퇴를 대비하며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내가 갑자기 여행을 가겠다고 한 것이다. 여행자금은 모두 내가 마련해서 가겠다고는 했지만 부모가 얼마간 지원을 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가게 된다면 대학 졸업과 더불어 나의 독립이 미뤄진다. 일단 여행 기간만큼 미뤄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여행으로 인해 내 경쟁력이 떨어지면, 취업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부모님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반대를 하는지,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의아했다. 그렇지만 상황을 알고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여행 이야기를 처음 꺼내고자 했을 때 나의 걱정은 여행의 이유였다. 어떤 행위든 그걸 하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중요한 법이고,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행의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왜 여행을 가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여행은 으레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유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님이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여행의 기간과 그 결과였다.
1년 간의 여행. 여행 자금이야 어떻게든 마련하면 된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말한 것처럼 1년 간의 여행은 1년의 공백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휴학하기 전에도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대학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1년을 허비하고 오면 복귀한 뒤 수업을 따라가는 데도 힘이 들 것이 분명하다. 다른 대학생들은 방학 때 공모전을 준비하거나, 인턴을 하는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졸업 후 취직을 할 때도 면접관은 반드시 물어볼 것이다. 그 1년 동안 무엇을 했고, 그 활동이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친구들은, 취업에 있어서 경쟁자들은 다들 열심히다. 구직자는 매년 쏟아져 나오지만 좋은 기업은 몇 명 뽑지 않는다. 경기는 매년 안 좋고 물가는 매년 오른다. 나는 여행의 후폭풍을 견딜 수 있을까?
그 시절의 나의 고민을 지금 떠올려보면 취직을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마치 내가 벼랑 끝에 서 있으며, 가벼운 일탈만 하더라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 여겼었다. 쉽사리 취직하지 못한다면 내가 패배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유치원생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취업이었기에, 그 임무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느냐 마냐에 대한 문제는 대학, 취업, 부모님의 은퇴, 독립 등 여러 문제가 엮여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에 핵심은 자신감이었다. 남들은 앞서 나가며 노력하는데 나는 따라갈 수 있는가?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가? 나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가? 나는, 나를 믿는가? 나에게 자신감이 있었다면 해결책은 간단했다. 부모님의 은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독립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생활하고,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천천히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하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만약 여행을 떠나고 구직 활동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할지라도,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달라졌으리라.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고,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런 부모님과의 여러 번의 대화 이후에도 고민할 시간은 많았다. 어차피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1년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해서 고민했다.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6년간, 초등학교부터 치면 12년간, 하고 싶은 것 못하면서 공부만 했는데. 1년간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만 선후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1년간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간다는 계획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이며, 세상물정을 모르는 이야기였다. 말이 좋아 1년이다. 1년간 여행을 가려면 그 1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모으는 1년간 학기 중에도 방학 때도 다른 활동 대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나 다른 활동으로 스펙을 쌓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물론 어딘가에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훌륭한 성적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정도로 뛰어나고 성실하지 않다. 동기들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방학 때도 인턴을 하거나 공모전이나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등 졸업 후 취직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사람들은 노력할 때 나는 놀러 다닌다면 졸업 후 어떻게 될까? 대답은 물론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