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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죄책감이라는 길 (상)

성장소설

“… 다녀왔습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나지막이 말한다. 듣는 사람은 없다. 물론 대답도 없다. 여기는 혼자 사는 원룸이다.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면 왠지 쓸쓸함을 느껴, 들어갈 때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인사를 하곤 한다.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고, 우편함에서 가져온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곧장 침대로 향한 뒤 쓰러지듯이 앞으로 눕는다.


오늘 면접을 보고 왔다. 어느 중견기업의 면접이었다. 대학교 학과와 일치하는 곳은 아니었다. 월급도 그리 많은 곳은 아니고, 출장과 전근이 잦다는 단점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뽑아만 준다면 군말 없이 다니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았다. 면접장에 온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학벌도 좋고 스펙도 월등한 사람들로 보였다. 모두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준비해 간 대로 어찌어찌 말은 끝냈지만 그중에서 돋보일 만큼 잘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피곤하다. 이대로 잠들어버릴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내일 모이는 면접 스터디의 모임장이 스터디 준비에 대해 리마인드 시키는 메시지다.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어. 떨어진다고 해도 계속 연습하고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지금은 경쟁 사회다. 능력이 특출 나지 않으면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아니,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그런 사람들이 나보다 더 노력할 거야. 내가 풀 죽고 지친 지금도 노력하고 있겠지. 능력도 떨어지는 주제에 노력도 안 하는데, 이런 내가 무슨 수로 합격하겠어. 내일을, 다음을 준비해야지. ……라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몸은 그대로 침대 위에 있다.


나는 지쳤다. 다음 달이면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3년이 된다. 처음에는 별일 아닐 줄 알았다. 다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나도 대학 4학년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대학생의 기분을 버리지 못했다. 전력으로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적당히 대학 수업을 듣고, 적당히 놀러 다니며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취업 준비를 했다. 그때는 내가 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고,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성적이 특출 난 것도 아닌데 그런 노력으로는 어디에도 붙을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이 금방 지났다. 졸업이 눈앞에 다가오자 슬슬 위기감이 들었다. 소수지만 졸업 전에 이미 일을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고, 취직이 확정되어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즈음 친구들끼리의 술자리나 같이 밥을 먹을 때의 소재는 항상 일자리였다. 누구는 취직했다더라, 누구는 최종 면접까지 갔다더라, 어디는 공채로 몇 명을 뽑는다, 등등. 직장을 구한 친구들은 그런 모임에서 취업 정보나 구직 비법, 직장의 분위기, 상사의 험담 등을 하면서 성공을 뽐냈다. 그러한 것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부러움과, 질투와 함께 의욕이 생겼다. 왜 쟤는 성공했는데 나는 안 될까, 나도 곧 저렇게 될 것이다 등등. 대학 졸업 후에는 이전보다 현격하게 많은 노력을 했다. 지원서를 넣고, 시험 준비를 하고, 면접 스터디를 하고, 무수히 많은 자기소개서를 썼다. 구직 활동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진했다. 목표는 처음부터 그리 높지 않았다. 대기업이나 평가가 좋은 공기업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위치나 근무, 급여에서 적당한 평가를 받는 중견기업이 목표였다. 딱히 원하는 직종은 없었다. 그저 사람 대우를 받고 일하는 곳에 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수십 곳에 지원서를 넣었고 몇 군데에는 면접까지 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떨어졌다. 의욕이 점차 떨어졌다. 자존감도 함께. 나는 지쳤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 선한 세상이나 악한 세상 같은 것은 없다. 사회는 그저 계속 변할 뿐이다.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진 내가 잘못된 것이겠지.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대학 생활을 포함한 나의 최근 몇 년이 지탄받을 정도로 불성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평범했다고 생각한다. 요란스럽게 놀러 다닌 것도 아니고 틀어박혀 공부만 한 것도 아니다. 적당히, 다들 하는 것만큼 했다. 그럼 최근 몇 년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되돌아봐야 알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가거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기억이나 학원을 마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거나 하는 등의 기억은 드문드문 난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뿌옇게 흐리다. 오래되어서일까, 혹은 평범한 내용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다지 추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로 채워진 까닭일까. 내가 직접 결정해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빈말로도 능동적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는 학생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독서 정도 말고는 없다. 학생 시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떤 과목을 공부할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슨 공부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언제 일어나서 언제 잠에 들지 모두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는 조금의 시간에 어떤 티비 프로그램을 볼 것인지 혹은 어떤 책을 읽을지 정도였다. 이건 나만이 겪었던 독특한 경험은 아니다. 정도는 달라도 많은 학생들이 이런 시절을 지나왔을 것이다. '허튼 생각 말고 앉아서 공부나 해.'라는 것은 전국의 어머니의 입과 학생들의 귀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아니던가.


마치 정해진 레일 위를 나아가는 기차처럼 살았다. 성적이 출중하거나 그 외의 재능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KTX라기보다는 무궁화호나 기껏해야 새마을호 정도겠지만. 레일 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만은 않았다. 아주 어려웠다. 내가 결정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연유에서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있어야 하는지 나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 나는 적당한 크기의 텔레비전과 도서관 회원증이 가지고 싶은 전부였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돈은 적당히 있으면 충분하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도 원하는 직업은 없다. 언젠가 생길 직업에 대한 욕구나 하고 싶은 일을 대비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몇 년간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강제로 공부를 시키니까 하기는 했지만,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받아들였고 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간단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마치 스스로 선택하여 공부를 하고 있는 것 마냥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K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무슨 대학에 갈지 또한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 부모님과 내 시험 점수가 토론해 내가 갈 대학이 결정되었다.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일, 미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은 없었다. 대학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라면 하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잤다. 그렇게 대학에 왔다. 그런데 대학에 오니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라고, 레일에서 내려와서 직접 뛰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취직을 할 때가 되니 창의성이 중요하고, 남들과의 차별성이 없는 틀에 박힌 인재는 뽑지 않는다고 떠들어댔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사회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었다. 어떻게든 내 길을 찾으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은 딱히 없었지만 일단 대학교 성적도 챙기고 영어 점수나 그 외 교외 활동 등도 꾸준히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번화가에 가면 수 십 명쯤 있을 것 같은 개성 없는 인간. 아무 회사도 받아주지 않는 취준생.


그래. 나도 알고 있다. 20대를 다 소비하며 이런 경험을 몇 번씩하고 나니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았든 내 행동에 대한 결과는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코흘리개든 미성년자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무리 부모나 선생이나 사회가 이래라저래라 강압적으로 시키거나 입에 바른말로 꼬드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넘어간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기껏해야 ‘나도 그렇게 하면 잘 될 줄 알았지.’ 하면서 미안해하거나, ‘그렇게 하면 다들 성공하던데 네가 문제야’ 라거나 혹은 ‘선택은 네가 한 것인데 왜 나보고 그래?’라고 할 뿐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나도 참 멍청하다. 어차피 이렇게 취직도 못할 것이었으면 그냥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나 할 걸 그랬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말이지. 나에게 그런 게 있던가?


침대에 누운 채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해봐야 얻는 건 하나도 없는데.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둔다. 스터디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옷차림도 아직 밖에서 들어온 그대로다.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옷을 벗어 잘 개어두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엎드려 눕는다. 기운이 없다. 이대로 자버릴까. 엎드린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거기엔 내 손등이 있다. 멍하니 손 등을 바라본다. 그대로 몇 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내 손 등을 바라보고 있으니 손등이 생소하게 보였다. 손등 위에서는 이리저리 핏줄이 교차하며 불규칙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난 솜털, 가죽 아래의 굵은 핏줄. 붉은 부분, 거뭇거뭇 한 부분, 점도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 신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가 손 일 텐데도. 그 손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말하길, 매일 버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버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고 탄다면 그것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실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 손, 내 몸, 그리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 몸을 내가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강물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 채 떠내려가듯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대로 잠깐 잠들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잠이었다. 꿈을 꾼 것 같다. 여느 꿈이 다 그렇듯 어떤 꿈이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략적인 이미지 정도만 남아있다. 울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다. 구석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 최근 이 꿈을 자주 꾼다. 이 꿈을 꾸고 나서는 깨고 난 후에도 그 이미지가 머리 한편에 남아서 잔류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김이 서린 렌즈로 찍은 사진처럼 어렴풋하게. 오늘 본 면접에 대한 아쉬움, 그 후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생긴 불안과 허무함, 그리고 잔류하는 꿈 이미지까지 겹쳐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대로는 스터디 준비고 뭐고 제대로 할 수 없다. 저녁식사 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달리기를 하며 머릿속을 비워버리자.


나는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대신 실제로 쓰는 행위를 통해서 정리한다.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날아다니는 것들을 잡아다가 종이 위에 적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략적으로 정리를 하고 나 나름대로 받아들인다. 소설을 읽을 때도 인물이나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옆에 노트를 펴두고 메모를 하며 읽는 습관이 있다. 그렇지만 이 방식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함도 있다. 내가 고민한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가, 부조리한 상황이라던가, 쓸데없는 걱정인 줄 알면서도 계속 생각나는 것들이라거나. 그럴 때는 달린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달린다. 수 킬로미터를 달리다 보면 머릿속이 깔끔해진다.


이것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생 때다.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릿속이 복잡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할 거면 차라리 운동장이나 몇 바퀴 돌고 오렴.’이라고 말했다. 그때 당장 달리러 나간 것은 아니다. 선생님도 그냥 집중을 못 하는 학생에게 면박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흘려 들었는데, 어느 주말 집에서 머릿속이 딴생각으로 가득 차 공부가 잘 안 될 때 불현듯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차라리 운동장이나 몇 바퀴 돌고 오렴.’ 어차피 공부도 잘 안 되는 데 운동이나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가서 달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머릿속은 상쾌했다. 그 후에는 쉽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달릴 때는 달리는 것에만 집중한다. 들숨과 날숨, 팔과 다리의 움직임, 페이스, 이동거리 등등. 달리기로 머리가 가득 채워져 원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온갖 것들이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달릴 때는 달리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데 삶을 사는 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왜 이리도 많은 것일까.


지금 사는 곳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오피스텔이다. 필요한 가구들은 모두 있고 혼자 살기에도 적당한 크기다. 무엇보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건물 내에 체육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체육시설이라고 해봐야 러닝머신 몇 개와 사이클 머신 몇 개 있는 것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밖에 나가서 뛰는 것도 좋지만 비가 올 때도 있고, 집에서 달릴 수 있는 장소까지 가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도 밖을 달리는 것은 마주 달려오는 사람이나 루트 등의 잡음이 있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야 그런 것도 포함해서 달리기라고 할 테지만, 나는 달리기를 머리를 비우는 용으로 쓰는 것뿐이니 굳이 밖에서 뛸 이유는 없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2층으로 향한다. 그리고 달렸다. 적당히 지칠 만큼 뛴 후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는다.


운동을 마치고, 식사를 하고, 간단히 집 정리를 하다가 집에 들어올 때 가져온 편지들을 발견했다. 요즘 시대에 종이로 오는 중요한 편지는 없다. 아마도 매달 오는 가스비, 관리비 통지서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 적십자사에서 보내는 헌혈 및 기부 권유 편지 정도다. 편지를 뒤적거리며 내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빗나가는 편지 하나가 있었다. 평범한 흰 봉투. 보내는 사람 이름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다. 내 글씨다. 지금의 내 글씨보다는 날림이 없이 정확한 획으로 적혀있고 그래서 앳된 티가 나지만, 분명 내 글씨다. 학생 시절 내 글씨.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던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N 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행사를 했던 것이겠지. 그 편지는 나중에 읽기로 하고 나머지는 휴지통에 버린다. 지금은 내일 스터디 모임 준비를 해야 한다. 검색하고, 정리하고, 쓰고, 읽어보면서 내일 면접 스터디 준비를 진행한다. 준비를 하는 동안, 아까 받은 편지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다. 언제 쓴 것이고 어떤 내용일까. 저 편지를 썼을 때의 나는 지금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공부할 때 책상 정리가 하고 싶은 것처럼, 공부하기 싫어서 편지가 신경 쓰이는 것이겠지. 편지를 읽는 것은 스터디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후에 나에게 주는 포상으로 하기로 하자.


밤 11시, 스터디 준비가 대강 끝났다. 나머지는 내일 일어나서 모임 가기 전에 끝내면 된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양팔과 양다리를 펼치며 기지개를 켠다. 편지를 읽고 내 궁금증을 해소한다면 상쾌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을 것이다. 편지를 가져와 책상에 앉는다. 편지 봉투는 풀로 붙여져 있다. 가위로 위쪽을 살짝 잘라낸 후 안에 있는 편지지를 꺼낸다. 아무 무늬 없이 줄만 있는 단순한 편지지. 편지봉투에 적힌 글씨와 동일한 글씨로 쓰여 있다. ‘10년 후의 나에게’라는 문구로 편지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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