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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낮에 뜬 달과 악몽 - 5. 여행

여행 소설

 잠에서 깨어 달을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으로 들어가 꺼 두었던 스마트폰을 켜는 일이었다. 확인한 시간은 이미 점심 즈음. 올라오는 데에 5시간이 걸렸으니 내려가는데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저녁때 예약해 둔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선물로 가져온 술은 놔두고 짐을 챙겨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나를 불러낸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떻게 내 꿈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일까. 왜 나를 아무 설명 없이 때리려고 했고 자기를 만나러 오지 않으면 내 악몽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일까. 가능한 케이스를 추려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소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마치 꿈같은 느낌이다. 혹시 이 상황들이 모두 꿈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해를 등지고 산을 내려갔다. 어제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길에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에 지쳐서 나무에 기대어 멍하니 쉬고 있을 때 나무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산짐승일까 해서 소리가 난 곳을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내가 앉아 있는 곳 바로 옆의 숲에서, 할머니가 한 분 걸어 나왔다. 마치 집 바로 앞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가벼운 옷차림에 나이에 비해 전혀 세지 않은 새카만 머리카락. 무엇보다도 등이 꼿꼿하다. 날카로운 눈매와 함께 마치 산속에서 오랜 시간 수련을 한 듯한 인상이다. 할머니는 수풀 속을 헤치며 천천히 걸어 나오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구나.”


무슨 소리지? 나는 멍하니 앉아서 서 있는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태양을 등진 채로 서 있어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다시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구나. 민정이가 보낸 아이가.”


민정. 내 대학 동기의 이름.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소리는 이 할머니가 바로 그 무당이라는 이야기다.


“아, 안녕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그래, 반갑다.” 할머니는 인사를 받으시고는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


“미안하구나. 내가 어제 갑작스레 일이 생겨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래, 어젯밤엔 별일 없었고?”


그러고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어젯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꿰뚫어 보려는 듯이.


 그 말을 듣고 망설였다. 그 일을 이야기해야 할까?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그의 말을 따라 밤의 숲으로 나갔고, 그랬더니 누군가 갑자기 덤벼들었고, … 이런 이야기를 한들 내 말을 믿어줄까?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이상한 이야기다. 거기다 내가 왜 그런 전화를 따라 숲으로 갔는지 말하다 보면 내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원래부터 그 이야기를 하러 이 산에 온 것 이기는 하지만, 지금 내려가는 상황에서 말하기는 조금 껄끄럽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잠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다시 말을 꺼내었다.


“아니, 괜찮다. 말하지 말려무나. 대충 어느 상황일지 짐작이 되는구나. … 이 산의 밤에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거든. 놀랬을게다.”


 말하는 할머니는 온화한 얼굴이었다. 지난밤의 그 일들은 흔한 일들인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 찾아올만한 사람들이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테니, 그런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일은 으레 일어나는 수준의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서둘러 내려가야 버스를 놓치지 않겠구나.”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긴, 여기 밑에 오는 버스가 몇 대나 된다고.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한 가지만 말해주마. 산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무얼 하고 싶은지 하나만 생각해 보거라. 무엇이든 상관없다. 딱 하나. 이거다 싶은 것 딱 하나만 떠올려보려무나. 그리고 1년간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그걸 해.”


그렇게 한다면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게다,라고 할머니가 직접적으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정확히 그 말처럼 들렸다.


“… 제가 떠올린 무언가가 제가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어보았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1년간 한다고 해도, 그 행위가 정확하지 않다면 나는 그냥 허무하게 1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없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좋을 텐데.


“그런 방법은 없단다.” 할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이내 표정을 풀고는 마치 자신의 손자를 보는 것처럼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주마.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중요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것 하나는 꼭 지켜야 한다. 너의 생각대로 해야 한다. 무얼 할지, 어떻게 할지, 언제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끌리는 대로 하려무나.”


인사를 하고 내려가는 길, 할머니는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 요즘 애들은 이런 걸 말해줘야 안단 말이지.”


 그 말은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태양을 등진 채 나를 내려다보는 할머니의 머리 오른쪽에는 달이 조그맣게 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을 내려가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샤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에 들 때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하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주제는 마치 혀 끝에 돋아난 혓바늘처럼 어떤 생각을 할 때든 무슨 말을 할 때든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이것저것 모두 떠올렸다. 등산, 야구나 축구 같은 운동, 독서, 글쓰기, 노래, 춤, … 오만가지 직업들과 취미들을 떠올리고 그 일들을 직접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이거다 싶은 느낌은 어디서도 받지 못했다.


 며칠 후.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의 여느 대학교가 그렇듯 내가 다니는 곳도 산에 있어 수업을 들으러 올라가려면 제법 경사진 코스로 20분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잘 내려오지 않고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내려온다. 대학이 산 위에 있다는 것은 수많은 단점이 있지만 한 가지는 좋다. 풍경이 아름답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에는 은행잎이 거리에 흩날린다. 곳곳에 화단이 있어 계절별로 바뀌는 꽃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눈으로 덮인 새하얀 캠퍼스를 거닐 수 있다. 주차 공간이 적어 차가 많이 다니지 않고 도보가 잘 되어 있어서 곳곳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날도 하루 수업을 모두 끝낸 후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벚꽃 철이 지난 시기라 거리에는 벚꽃 잎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고 아직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꽃들도 조금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며 걷는 학생들 사이로 멍하니 터벅터벅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의 거리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처음 떠올렸을 때는 다른 일들을 떠올렸을 때와 같이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가 여러 나라를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점점 더 색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영국 중세풍의 거리를 걷는 나, 지중해 바닷가를 걷는 나, 적도 부근의 열대 밀림을 걷는 나, 화산을 걷는, 나.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 후 다른 일들을 몇 가지 더 떠올리기는 했지만, 가장 끌리는 것은 이것이었다. 지구의 여러 나라를 방문해 그 나라의 거리를 거닐어보는 것. 간단히 말해 여행이다.


 그날 밤 왜 여행을 결심했는지는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때 이전에는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여행을 가고자 했는지 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명쾌하지는 않더라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가진 자유로움의 영향이다. 여행, 자유.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 한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은 자유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학생 때는 하라는 대로 주어진 일들을 - 그러니까 공부를 - 기계적으로 처리하며 살아왔다. 한국의 시험들은 창의력이나 자유로운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 이미 구조와 풀이 방법이 정해져 있는 수많은 문제와 정답들을 머리에 집어넣은 후, 짧은 시험 시간 내에 빠르고 정확하게 쏟아내는 것이 시험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 이상 똑똑할 필요도 없다. ‘이따위 시험이 내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그리고 높은 점수를 위해서는 최대한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필요할 뿐이다. 학생이니까 어쩔 수 없어, 혹은 대학에 가면 다 할 수 있어,라는 말로 자신을 다독이며 기계적으로 공부를 했다. 학생 때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가성비 좋은 활동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는 명확했다. 공부를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것이었고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택하게 된 과정뿐만 아니라 시험공부 그 자체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처음에는 흥미가 있는 과목도 있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 색다른 형식의 문제를 이리저리 풀어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니까. 도화지에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렇지만 똑같은 문제를 수백 개, 수천 개 푸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새하얀 도화지를 연필로 까맣게 만드는 일과 같다.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계적으로 정해진 법칙에 따라 빈틈없이 새까만 도화지를 수도 없이 만드는 일. 나에게 중고등학생 시절의 공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그 공부라는 지루한 일에 더해 나에게는 악몽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무것도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조차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그런 시절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여행이라는 자유로움에 이끌렸던 것이다.


 무당은 나에게 말했다. 이거다 싶은 것을 정해서 1년간 그것을 하라고. 나는 여행을 선택했고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결심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직 학기 중이니 다 내팽개치고 그냥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돈이 없다. 1년간 여행을 가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었기에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짜는 것은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어디를 갈 것인가? 숙소비와 식비는 대략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여행을 가는 것이 정답일까? 한참 동안은 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 집중했다.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며 어디를 가면 좋을지 찾아보았다. 복잡했다. 종국에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조금 더 간단한 접근을 하기로 했다. 일정을 정하고 어느 정도의 금액이 나올지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으로 금액을 정하고 그 금액에 일정을 맞추는 것이다. 여행 중 꼭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색다른 길을 걷는 것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숙소에서 자는지, 이동 수단이 편한지 등은 내가 타협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들이었다. 다행히 몸은 튼튼하다. 예산을 조금 넉넉하게 잡아두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금액을 대강 산출해 보니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얼추 준비할 수 있을 듯했다. 학기 중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자고, 방학 때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 된다. 조금 더 자세한 계획이야 1년간 돈을 모으면서 세워도 충분하다. 휴학을 1년 해야 하니 그 밑작업도 해두면 될 듯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렇게 여행 계획을 짜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몇 달의 시간 동안 악몽이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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