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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ug 22. 2024

낮에 뜬 달과 악몽 -7. 해결

여행 소설

 산을 내려올 때 무당 할머니가 했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 이거다 싶은 것 딱 하나만 떠올려보려무나. 그리고 1년간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그걸 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중요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것 하나는 꼭 지켜야 한다. 너의 생각대로 해야 한다. 무얼 할지, 어떻게 할지, 언제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다. 끌리는 대로 하려무나.”


 할머니는 이야기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하라고. 처음 들을 때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1년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 무엇을 할 것인지만 알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여겼다. 그렇지만 어려운 것은 실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 마음이 걸림돌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여행을 떠올리고 난 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정말로 맞을까? 그로 인한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세계 곳곳의 거리들을 걸어보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비용과 학업이나 취직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수록 그 빛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내 어깨와 등에는 풍요로운 미래와 부모님의 기대라는 짐이 있었다. 때로는 그 짐이 내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짐이 되어, 나를,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지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지 않은가. 나를 10년 넘게 괴롭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 생각되는 바로 그것. 꿈. 악몽. 애초에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닌가. 언제나 악몽을 걱정하고 대비하는 삶이 너무나 지겨웠고 버티기 힘들었다. 악몽만 꾸지 않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떠나고 싶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악몽이라는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여행을 떠날 이유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악몽은 1년에 열 번 넘게 꾸준히 나를 찾아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찾아온 것은 아니다. 몇 달 동안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한 달에 세 번이나 들이닥칠 때도 있었다. 이상한 경험을 겪은 산을 내려오고 난 후에는 반년 정도 악몽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행을 진정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할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악몽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반년 동안 잠잠했던 탓인지 혹은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인지, 악몽은 평소보다 거세게 나를 몰아쳤다. 더 잦은 간격으로 찾아왔고 후유증은 더 심했다. 언제나 악몽은 소식 없이 찾아왔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까지는 알 수 없다. 잠에 들고 나서, 영겁 같은 꿈을 꾸고, 어떻게든 깨어나고, 실제로는 한 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오늘 악몽이 찾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해 잠시 잠에 들면 어김없이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도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보냈다. 그리고 언제 또 악몽이 찾아올지 몰라, 평범한 밤에도 불안해하며 잠에 들었다. 길게 잠을 자지 못했고 무기력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었다.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바로 부적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부적이라 하면 대개는 황색 종이에 붉은색으로 일, 월, 광 등의 한자가 적혀있는 종이를 떠올린다. 황색은 빛을 상징하고 적색은 생명을 상징한다. 부적을 쓸 때도 생명력을 가득 담는 심정으로 힘차게 글자를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적은 곧 생명력이다. 삶의 에너지다. 옛사람들은 그런 에너지가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부적을 사용해 악몽을 몰아낼 수 있었다. 글을 써서 베개 밑에 넣거나 한 것은 아니다. 노래를 들었다. 아이돌의 노래를.


 처음은 우연이었다. 산을 내려오고 난 후 일 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언제나 그렇듯 악몽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악몽을 꾸게 되는 날 밤에는 으레 그렇듯이,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멍하니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영상을 보거나 웹서핑, 게임을 하더라도 집중을 할 수도 없고 재미를 느끼지도 못해, 결국에는 멍하니 누워있게 된다. 기숙사는 보통 시끌시끌한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평소 잠을 잘 때면 잘 들리던 시계 초침소리, 냉장고 소리, 벌레나 새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세상 속에 나 홀로 존재하는 듯한 적막함이었다. 그 적막 속에서 조용히 누워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나와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내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리라.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잠시 슬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음 날이 되고, 며칠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흘러가겠지. 두려웠다. 이대로 누워있으면 그렇게 자연스레 나는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 세상과 나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태블릿 PC가 있었다. 유튜브 앱을 켜서 아무 노래나 틀었다. 화면에서 어느 아이돌 그룹이 활기차게, 생기 넘치게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일어선 채로 멍하니 그들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아침이었다.


 그렇게 10년간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어이없게 해결되었다. 그 후로 악몽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룻밤 내내 끝나지 않던 악몽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악몽이 찾아오더라도, 한 번의 악몽만을 견뎌낸 후 그저 이어폰을 꽂고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면 되는 것이다. 많은 노래들 중 가장 활기 넘치고 밝고 신나는 곡들을 찾아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두었다. 일반적으로 잠들기에 적합한 노래들은 아니지만 상관없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노래가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악몽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금세 잠들었다. 악몽이 찾아오더라도 다음 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마조마하게 악몽을 기다리는 나날들은 끝이 났다. 나는 문제없이 일반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문제가 해결된 것이 맞나?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증상만 해결한 것이 아닐까? 쓰라린 상처를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옷으로 감싸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버티는 꼴이 아닐까?’ 그러면 결국에는 곪을 대로 곪아서 심각해진 상처를 대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 터무니없이 이상한 행위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여행 생각은 점점 사라져 갔다. 여행을 가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행동에 맞추어 생각도 바뀌었다. 할머니가 말한 것,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주변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라는 것인가? 나의 미래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고 행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인가? 그것은 독단이 아닐까. 여행을 간다는 이전의 고민들이 미성숙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라는 말은 내 마음을 떠났다. 세상의 논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났다. 나는 30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고민을 떨쳐버린 나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얼마간의 취직 기간을 거쳐서 회사에 들어갔다. 하루의 절반은 침대에서 자고 뒹굴고, 나머지 절반은 회사에서 보내는 보통의 삶이 주어졌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를 지금까지도 쭉 다니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육아도 없고, 장기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거나 한 적도 없고, 몸이 아픈 적도 없는 성실한 일꾼이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거나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무기로 회사를 다닌다. 딱히 적성에 맞거나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그거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을 뿐이다. 태어나 대학교까지 배운 것 이라고는 성실히 노력하는 것 하나뿐이었으니. 직장에서의 취급은 게임의 NPC 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획기적인 성과를 내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의 업무를 한다. 동료들과의 교류는 없다. 회식을 빠지지는 않지만 주도권을 가진 적은 없고 금방 자리를 뜬다. 이런 직장에서의 업무들이 나에게 활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 보고, 책 읽고. 그렇게 걱정 없이 사는 것이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


 며칠 전 점심시간 낮에 뜬 달을 보면서 시작된 회상은 이걸로 끝이다. 과거를 기억해 내기 위해 작성한 워드 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마치 소설 속의 한 단락처럼 읽혔다. 그렇지만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부족한 글 솜씨를 제외하더라도 핵심이 텅 비어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실제 내 과거니까.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회상을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 속으로.


 이 회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14살의 가을밤 어느 꿈을 꾸었을 때처럼,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나는 조금 변했다. 그전 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점차 버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고, 끼니마다 밥을 챙겨 먹는 것조차 귀찮다. 그냥 멍하니 누워서 있는 시간을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악몽의 빈도도 더욱 잦아졌다. 그전까지도 악몽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이제 악몽을 꾸지 않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가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나를 괴롭혔고 40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찾아오고 있었다. 앞서 찾은 부적인 아이돌 노래의 효력은 아직 유효하지만 수면의 안락함을 앗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회상 이후로 악몽을 꾸는 것이 당연해졌고 방에는 계속해서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피로가 날이 갈수록 축적된다.


 그렇게 축적된 피로와 떨어진 의욕은 나를 무기력으로 몰아넣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수십 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고 있는 그런 시간들이 늘어난다. 낮인지 밤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나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헷갈리며 어떻게든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눈치챈다. 매일 꾸는 악몽에서 나는 무언가에 쫓기고 도망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은 현실과 똑같지 않은가? 학생 때는 시험이나 숙제에, 직장인 때는 밀려드는 업무와 실적 평가에, 그리고 인생 전반적으로 나를 휘감고 있는 기대와 타인의 시선에 쫓기며 살아간다. 그 악몽은 일종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쫓아오는 그 무언가가 나를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수 없는 악몽을 꾸면서도 무엇이 나를 쫓아오는지 한 번 도 맞닥뜨려 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 때 산 속에서 나를 때리던 그 무엇인가에서 도망쳐온 것 처럼, 현실에서 나를 쫓아오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처리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부터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거슬리고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다. 낮고 묵직하며 신경을 간지럽히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보았던 소리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내 주변 어딘가에 그 소리는 존재한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출근하며 걷고 있을 때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잠시라도 멈출 때면 나는 다시금 그 소리를 감지한다. 어느 날 잠을 자려고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소리를 어디서 들어보았는지 떠올린다. 산 속이다. 치악산 위의 그 무당의 집. 그 집에서 밤에 들었던 벨소리다. 낮고 묵직하고 뇌에 직접적으로 울리는 듯한 소리. 이 소리도 악몽처럼 분명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벨소리에 집중해보려 하지만 방 안에 틀어둔 아이돌 노래가 거슬린다. 그렇지만 노래를 끌 수는 없다. 노래를 끄면 악몽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고, 안 그래도 낮아진 수면의 질은 저 아래로 처박힐 것이 뻔한 일이다. 벨소리에 대해, 그 메시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잠을 청한다.


 그렇게 회피하고 미루고 무시하며 지냈다. 그러나 악몽과 벨소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고 나날이 존재감을 더해갔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나는 결심한다. 벨소리의 메시지를, 그리고 악몽 속에서 나를 쫓아오는 무언가를 직접 맞닥뜨리기로. 노래를 켜지 않고 침대 옆에는 노트와 펜을 둔 채로 잠을 청한다. 한 번에 성공할 생각은 전혀 없다. 수 백번이 걸려도 된다. 그 형체를 노트 속에 담아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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