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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만 훌륭한 일

천 자의 생각 1

by 최형주

와이프에게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글 써서 한 달에 백만 원만 벌 수 있으면 지금 일 그만둘 수 있어.”

이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그만큼 글로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사실.

둘째, 그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능력에 나에게는 없다는 자조.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그만큼 가치 있다는 믿음.


글쓰기는 신경계 속에 나뒹굴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정리’는 이미 존재하던 것을 찾아내서 눈에 띄도록 만드는 정도의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실로 스웨터를 짜듯이,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 지도 모르는 분명하지 않은 것들에 질서를 부여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에 가까운 행위다.

그리고 그 정리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것을 ‘가능한 정확하게’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USB나 HDMI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 부족한 단어와 문장들을 어찌어찌 조합해 글로 만들더라도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런 ‘글쓰기’가 인간의 본질에 닿아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지루하다. 딱히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쓰자고 마음먹고 자리에 앉아도 무얼 어떻게 쓸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괜스레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그러다가 어쩌다 무언가를 쓰고 나서 읽어보면 의미 없는 문장들만 가득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해결할 만한 뾰족한 수는 없다. 더 정확하게 내가 생각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잘못 읽히지 않고 과장되거나 모자라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냥 중간중간 딴짓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자리를 붙이고 앉아서 버티는 수 밖에는 없다.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나온 결과물이, 세상을 뒤흔들만한 글은커녕 동전 몇 닢도 받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고 누구에게 환영받지도 않는다. 그래도 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인해 선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글쓰기는 지루하다.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고, 결과물은 보잘것없다.

그렇지만 훌륭하다.

그 이유 하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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