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자의 생각 3
최근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을 완결 편까지 모두 보았다. 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그리고 이야기가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며,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장면과 대사와 사건들이 하나둘씩 의미를 드러내며 맞물려 들어가는 그 순간들이 감동적이었다.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처음부터 작가가 설계해 둔 하나의 큰 그림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남들이 이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나 또한 이 이야기를 명작이라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떡밥’을 잘 배치하고 기막히게 회수하는 작품들을 우리는 명작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떡밥과 그 회수에 열광하는 걸까?
떡밥은 작가가 작품 속에 흩뿌려둔 단서나 복선이며, 독자에게 작가가 준비한 거대한 세계의 단면을 살짝 보여주는 장치다. 독자는 떡밥을 통해 작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하며, 작가의 설계에 대해 신뢰감을 가지고 기대를 한다. 즉 떡밥이 잘 회수된다는 것은,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세계를 구상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런 치밀한 설계로 이루어진 작품이 명작이라 평가된다.
이렇게 예술작품을 대하는 방식은 어찌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닮았다. 플라톤은 우리가 보고 만지는 현실 세계는 진짜가 아니라고 말했다. 진짜는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형상, 이데아다. 우리는 불완전한 현실을 통해 그 이데아의 그림자만을 볼 뿐이다. 예술작품을 만들 때 작가는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작품, 이데아적인 서사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작가의 역량이나 표현 방법의 한계 등, 이데아를 현실로 불러오는 데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작가가 구상한 방대한 이데아적인 서사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것 또한 그 장애물 중 하나다.
그렇기에 훌륭한 작가는 조그만 사건부터 천천히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그와 동시에 떡밥을 뿌리며 이데아적인 서사의 밑그림을 그린다. 독자를 세계 속으로 점점 더 몰입시키고, 처음에는 단편적인 장면이나 단어 혹은 사건으로만 존재하던 떡밥들이 하나의 완전한 결말을 향해 연결된다. 그때가 우리는 비로소 작가가 구상한 이상적이고 완전한 세계 -이데아- 를 바라보며 감동을 받는다.
<진격의 거인>은 이 과정이 훌륭하게 설계된 작품이었다. 수많은 장면과 대사들이 결국 하나의 결말을 향해 귀결되며, 가슴속에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자유란 무엇인가, 벽 밖의 세계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조각난 파편처럼 보였던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구조로 완성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 세계가 처음부터 작가의 머릿속에 있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상적 세계를 엿보았다고 느낀다. 명작이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서 이상적 세계의 그림자를 보고, 그 세계의 완성에 함께 도달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진격의 거인은 그 조건을 충족한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