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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른 시대 - 전공의, 언보싱, 이종범

천 자의 생각 4

by 최형주

작년 초부터 이어진 의료계 파업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 중이던 인턴·레지던트들이 사태 이후 병원을 떠나 일반의로 취업했고, 현재 절반 이상은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한다. ‘수련’이라는 이름 아래,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병원의 주요 업무를 떠맡던 전공의들이 빠져나가자 그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고 있다.


기업에서는 최근 ‘언보싱(Unbossing)’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관리자 직급으로의 승진을 꺼리는 경향이다. 책임은 커지고, 업무는 늘어나지만, 보상의 증가는 미미하다. 누구도 그 자리를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종범 전 KT 위즈 코치가 시즌 중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의 감독직을 맡기 위해 팀을 떠난 일이 있었다. 물론 시즌 도중의 이탈은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연봉, 부족한 휴식, 감독의 거취에 따라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는 불안정한 코치직에 비해, 예능 감독이라는 자리는 비록 비정통적일지라도 더 나은 처우와 주목을 제공한다. 코치직이 적성에 맞아 오랜 커리어를 쌓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종범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싼 값에 중노동을 감당하던 인턴·레지던트, 보상은 제자리지만 책임은 늘어나는 관리자, 그리고 불안정한 위치에서 낮은 대우를 감수하던 코치. 그들은 왜 자리를 떠나는가? 아니, 그동안 그런 조건 속에서도 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가?


그 이유는 단 하나, ‘견디면 보상이 온다’는 믿음이었다. 전문의가 되면 더 큰 연봉과 명예를, 관리자라면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과 사회적 지위를, 감독이 되고 싶다면 일정 기간 코치 생활을 거쳐야 한다는 관례가 있었다. 과거에는 이 믿음이 일정 부분 작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반드시 주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요즘 세대가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내할 만한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10년 뒤의 조직이 살아남아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시대다. 미래의 보상을 전제로 특정 계층의 희생을 요구하던 구조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노력을 정당하게 보상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런 조직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봉급쟁이고 세입자야. 내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 전혀 없어. 아들에게 일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아냐. 나는 녀석이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조차 모르고 있어. 또 내가 익힌 규범은 내 아들에게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될 가능성이 많아. 녀석은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테니까 말이야.”

– 미셸 우엘벡, 『소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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