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록을 듣지 않는 너에게 록을 말한다는 것

천 자의 생각 07

by 최형주

최근에 직장을 옮기게 되어서 출근시간이 1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그것을 핑계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구매했고 유튜브는 이때다 싶어서 여러 노래들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이 노래다. 아이묭의 <너는 록을 듣지 않아>. J-pop은 거의 들어본 적 없고 일본어도 잘 모르지만, 듣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너는 록을 듣지 않고,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록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어.> 이런 내용의 가사다. 다음 달에 결혼을 앞둔 나에게, 계시처럼 이 노래 가사가 다가왔다.


사람은 서로 매우 다르다. '매우'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사람과 사람은 마치 텅 빈 대양에 드문드문 위치한 섬들처럼, 혹은 공허하고 광활한 우주에서 조그마한 빛을 만드는 항성들처럼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있다. 사람의 내면이라는 심연이. 아무도 그 심연을 건널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심연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수긍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약간은 이해받고 싶어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 저런 것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했고, 이렇게 생각해. 넌 어때?’


<너는 록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 그래도 너에게 록을 들려주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너에게.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와 네 사이가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기 위해서. 나는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좋아하고,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살아왔고, 사랑을 했는데. 넌 어때?>


다음 달 결혼을 한다. 아무리 배우자라 하더라도, 서로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일상을 보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약속은 할 수 있다. 항상 대화할 것이라고. 심연을 인정하고 직시하고, 그래도 가까워지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한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매일 밤 침대에 함께 누워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언제나 말하고, 그리고 물어볼 것이다. 넌 어때?


23년 2월, 출근 전 카페에서

keyword
이전 06화심지어 돈도 준다. 그곳이 직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