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자의 생각 8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에서 활동적 삶을 노동 labor, 작업 work, 행위 action으로 구분한다. 노동은 생존을 위해 수행하는 반복적인 활동이고, 작업은 세계를 구성하는 결과물을 창조하는 활동이다. 행위는 타인과 관계 맺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활동이다. 아렌트는 이 중 행위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고,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고귀한 활동이라고 보았다.
한국 직장인들은 어디에 속한 활동을 하고 있을까. 직장생활은 대부분 노동에 가깝다. 생계를 위해 수행하는 반복적인 업무이고, 결과물은 쉽게 잊힌다. 간혹 특출 난 사람들의 업무는 작업이 되어서 무언가를 창조하기는 하지만, 행위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이 필요한 사회는 아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창조적 활동인 작업이나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아직도 노동에 머물러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그저 굶지 않을 수 있고 몸을 누일 장소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그런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포함한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남들에 뒤쳐진다는 질투와 불안을 해소하려는 행위가 생존이다. 또한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결과물을 창조하는 작업의 가치마저도 희미해져 간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창작물과 시스템은 과연 몇 년이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존에 쫓기고 변화에 지친 현대인들은 노동에서 작업으로 나아가는 것도, 행위로 넘어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소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려 하지만, 실상 그것은 시장이 허락한 정체성의 복제에 불과하다. 노동은 현대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면화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창조적 일자리로 넘어가야 할까? 예술가나 정치인이 되어야 할까? 아니다. 직업은 행위의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행위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주어진 행동을 반복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새로운 시도를 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될 뿐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업무 속에서 대화하고, 관계를 맺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행위가 될 수 있다.
노동이나 작업은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인간의 일을 하자.
사진: Unsplash 의 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