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22
여행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바쁜 일상 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온 것이기에, 하루하루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아침 일찍 나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즐긴 후 저녁 늦게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겨우 누이는 날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빈둥대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전자의 바쁜 날의 경우에는 오늘 하루 정말 알찼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게 잠에 든다. 후자의 휴식일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힘들었으니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내일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장기여행을 하며 이런 날들을 수십일 보내면서 이런 감정에 대해, 그 근간과 활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루종일 바쁘게 보내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을 때 느끼는 감각은 바로 충족감이다. 다시 말해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의 특이한 점은 개인별로 하루에서 전 생애에 이르기까지 특정 주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충족감을 달성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앞서 충족감이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감각이라고 했지만, 하루대신 한 달이나 일 년 혹은 전 생애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물론 그 주기별 달성량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그 충족감 달성량을 의식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하루동안 빈둥거렸으면 저녁 무렵 불안이 몰려와 운동을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 평일에 보람 있는 일들을 못했다고 생각되면 주말에 무언가를 하려는 충동이 든다. 혹은 반대로, 충족감 달성량을 채울 만큼 보람찬 일을 했다면 나머지 시간들은 빈둥거려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충족감과 직접 연관된 감정은 바로 허무함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는 부조리의 근원인, 삶의 전적인 무의미에서 비롯되는 그 감정 말이다. 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알찬 하루, 충족감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한다. ‘내 하루는 의미 없지 않아! 내 생애는, 나는 의미 없지 않아!’ 하고 외치는 것이다. 특출 난 역사적 인물들의 과감한 선택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이 허무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들이 수 없이 많다. 장기집권 후에 독재를 추구하는 정치인들, 가문이나 핏줄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 사람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 원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들도 그 허무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허무함이라는 가뭄이 휩쓸어 비워버린 의미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행위 중 과시욕 혹은 허영심, 좋게 말해 명예욕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때 허무함을 이길 수 있을 만한 충족감이 순간적으로 주어진다. 이에 중독되면 관심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무엇이 의미 있는지 찾기를 포기하고 타인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 나는 별로인 것 같은데 다들 좋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된 것 같아.‘ 이러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에 편하다. 그렇지만 내 유일한 권리이자 의무인 사고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남에게 이양하는 행동들이다.
아직 나도 무엇이 진실로 나를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하고 행하는 모든 과정의 근간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이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좋든 싫든 나는 충족감과 그 근간의 허무함이라는 감정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알찬 내 생애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그 목표를 향해 충족감과 허무함이라는 감정들의 고삐를 직접 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