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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Feb 10. 2024

여행하며 사는 삶, 일반인에게도 가능할까

주간 여행 에세이 24

 여행 중에 쉬면서 밀리의 서재나 알라딘 전자책을 이용해 책을 읽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파이어(FIRE)족에 대한 책이나 유튜브가 쉽게 눈에 띈다. 그만큼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진 것이기도 하고, 또 파이어족과 관련된 금융 경제 지식이 내 나이대(30대)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파이어족이란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일까. 파이어(FIRE)는 경제적 독립 Financial Independence and 조기 은퇴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로, 파이어족은 이런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정의만을 가지고는 어떤 것을 목표로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 글에서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파이어족이 왜 유행인지, 그리고 여행과 파이어족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파이어족이란

 파이어족은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40, 50대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경제적 독립이란 어디서 어떻게 독립한다는 말일까. 회사로부터의 독립이다. 회사에 고용되어 그 대가로 받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얻어 회사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경제적 독립이다. ‘다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영업을 할 수도 있고, 건물을 매입해 월세를 받을 수도 있고, 책을 쓰거나 유튜브를 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파이어족이 택하는 방법은 금융 소득이다. 안정적으로 우상향 하는 미국 지수에 투자해 상승분의 일부를 매도해서, 혹은 배당주를 사서 배당금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이 주로 회자된다. 파이어족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여기서 발생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파이어족은 단순히 부자가 아닌가?


 파이어족의 핵심은 많은 돈이 아니라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는 것, 그리고 금육소득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근로소득 중에서 대부분을 투자해서 원하는 목표금액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면 목표금액이 비현실적으로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얼마를 모아야 할까? 연생활비의 25배를 모으는 방법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방법은 자산이 평균 4%의 수익률을 낸다고 가정했을 때, 그 수익만큼을 매도해서 생활비로 사용한다는 가정이다. 2023 가구당 평균 월 생활비는 282만 원이다. 이 연생활비의 25배는 무려 8.46억이다. 한국에서 자산이 10억이라면 상위 10%다. 10억을 모으고 조기에 은퇴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냥 부자다. 그렇기에 여기서 요점은 생활비를 평균보다 훨씬 더 줄이고, 연 4%가 아닌 더 높은 수익률을 장기적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만약 생활비가 월 200만 원이고 수익률이 연 5%라면 4.8억을 모으면 된다.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금융자산이 꾸준히 우상향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 물가 상승도 고려해야 하고, 연금저축과 국민연금 수령 시기 및 금액도 고려해야 하기에 계산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그렇기에 파이어족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생활비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검소한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정도의 금액은 근로소득이 아닌 금융소득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루 16시간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절약이 좋고말고를 떠나서 모두에게 가능하지는 않다. 거기다 금융지식을 이해하는 머리, 순간적인 하락에도 버틸만한 멘털, 10년 이상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꾸준함이 아무에게나 있지 않다.


파이어족이 유행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파이어족이 유행일까? 걱정이 많아져서 그렇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80세를 넘긴 지 오래다. 그렇지만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50세고, 그 후에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실질 은퇴 연령은 72세다. 거기다 평균 취직 연령은 점점 늦어져서 30이 넘었다. 십수 년을 공부해 봐야 고작 20년 남짓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러고 난 후에도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뭐 하고 먹고살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소비를 줄이고 직장이 없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그중 하나가 파이어다.


 파이어의 유행에서 현재 한국의 여러 특징들을 찾을 수 있다. 파이어에 필요한 금융지식을 노력한다면 얻을 수 있을 만큼 정보가 열린 사회가 되었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고, 수십 년 후 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안정된 사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낮은 성장률로 인해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이 중요해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일터가 내 자아실현의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직장은 돈 버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명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무리 빠르게 경제적 독립을 일궈낸다 하더라도 10년은 넘게 일해야 할 텐데 돈 하나만을 보고 다니기에는 너무 길고 아까운 시간이 아닌가.


파이어족과 여행에 대하여

 나는 지금 6개월 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하며 사는 삶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꿈은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그때의 나에게 세계를 여행하며 수입을 올리는 방법은 그 직업이 유일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임을, 특별한 소수에게만 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면 여행하며 사는 삶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 말한 파이어족의 방법을 차용하면 된다. 소비를 줄이고 투자를 늘려서, 일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수입이 지속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수입으로 여행을 하며 살면 된다. (한국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물가가 비싼 나라가 되었기에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저렴할 때도 많다.)


 물론 의도적인 조기 은퇴를 할 생각은 아직 없다. 나는 직장에서 돈 이외의 다른 것들도 얻고 싶다. 관계, 경험, 자존감이나 성취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일을 하다 자연스레 그만두는 시기가 오면, 그때까지 모아둔 지식과 돈을 바탕으로 여행하는 삶을 살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기, 그 이후 여행을 다니며 살 때부터는 놀면서 쉬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그 후에도 나는 무언가 일을 할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나는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계속해서 찾아다닐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가진 것이 많아지면, 선택지가 더 많아지고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여행하며 사는 삶이 선택가능하고 매력적인 선택지일까? 만약 그렇다면 수십 년 후 여행하며 사는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현재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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