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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Mar 09. 2024

예술과 심미안에 대하여

주간 여행 에세이 28

 아르헨티나에서 보름간 머무르며 다양한 것을 먹고 보고 즐겼다. 아르헨티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고기와 함께 말벡 와인을 셀 수도 없이 마셨고,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화려한 탱고쇼도 관람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물론 항상 즐거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의문점이 생겼다. 언제나 다른 종류의 말벡 와인을 주문했는데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이게 맞는 것일까? 이 와인들 중 어느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일까? 그 평가는 어떤 특성에서 기인한 것일까? 탱고쇼를 즐겁게 관람했는데 그 공연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공연일까?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관람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환원되었다.


’좋은‘ 예술작품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심미안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무엇이 예술인가? 음악, 회화, 조각, 소설, 건축 등이 일반적인 예술에 포함된다. (개인적으로는 요리와 주류도 충분히 예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정의와 분류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여러 방식’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예술로 인해 탄생한 유형무형의 작품이 예술작품이다. 이 예술작품들 사이에는, 적어도 같은 종류의 예술작품 간에는 우열이 있을까? 다른 말로, ‘좋은’ 예술작품이란 존재하는가?


 시대와 환경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작품의 가치는 오직 돈으로만 매겨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높은 예술작품이 분명 존재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테레즈 데케이루>가 밀리의 서재 소설 항목의 책들 99%보다 완성도가 높은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모든 소설에 대해 등수를 매기지는 않더라도, 두 소설을 비교한다면 더 좋은 소설을 꼽을 수 있다. 열등한 소설, 이라고 하면 조금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스코틀랜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이다.’ 나도 이처럼 더 좋은 소설이, 더 좋은 예술작품이 분명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작품이 좋은 작품인가? 예술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으며, 그 요소들이 적절히 분포되고 배합되어 높은 완성도를 나타내는 작품이 좋은 예술작품이다. … 뻔하고 범용적인 말은 쉽다. 자세히 들어가면 너무나 어렵다. 예를 들어, 좋은 소설이란 어떤 소설인가? 소설의 구성 요소들을 몇 가지로 나누고 점수를 매기고 종합한다면 억지로 우열을 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소설을 판단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단은 읽는다. 그 후 요소를 분석하기 이전에 바로 좋다 나쁘다에 대해 자연스레 판단한다. 냉철한 판단이라기보다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 개개인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이 정도로 주관적이라면 기준 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렇다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근거는 없는 아주 개인적인 소감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책은 읽고 나면 훌륭하다는 감각이 온몸을 감쌀 때가 있다. 나는 그 감각에 대해, 그 이유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심미안을 가질 수 있을까? 결국에는 반복이다. 의식하며 반복하고 공부하는 것뿐이다. 와인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면 일단 많이 마셔보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실 때 신중히 맛보고, 맛없는 와인을 마셨을 때와 맛있는 와인을 마셨을 때의 차이를 기록해야 한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품종과 토양과 양조방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명성이나 가격 등 외부적인 요인과 품질을 떼어 놓고 생각하는 객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공부한다고 해서 예술작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의 지식수준에 이르러야 작품의 전체 면모를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심미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식의 저주일지도 모르겠다. 그전까지는 기분 좋게 잘만 마시던 값싼 와인을, 와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난 후에 마시면 단점들이 너무 도드라져 마실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나는 모든 예술에 대해 잘 알고 싶지는 않다. 탱고 쇼는 재밌게 관람했지만 딱 거기까지로 남고 싶다. 그렇지만 책 그리고 술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고 싶다. 더 알수록 재미있고 활력과 만족감이 생긴다. 아직은 초기 단계, 많이 즐기고 경험하는 단계다. 언젠가 경험과 지식이 쌓여 심미안을 가지게 될 그날을 향해 많이 읽고, 많이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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