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주 Mar 16. 2024

해외에서 굳이 한식을 찾는 이유

주간 여행 에세이 29

 식사에서 즐거움을 찾고 다양한 음식을 향한 탐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행 중 한식을 찾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정도가 심해지면 태국이나 베트남 혹은 일본 등 가까운 곳에 짧게 여행을 가서도 꼭 김치찌개에 삼겹살과 소주를 찾는 사람들을 볼 때, 혹은 고추장 쌈장이나 컵라면을 가방에 채워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이 다양한 식문화를 즐길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가진다. 이런 이들에게 여행 중 외국에서 한식을 먹는 행위는 패배 선언과도 같다. ‘나는 이 나라의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선언말이다. 나 또한 이번 여행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전 유럽을 40일간 갔다 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여행 중에 한식에 대한 욕구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때는 혹시 생각날까 해서 즉석비빔밥을 두 개 정도 챙겨갔는데 여행이 거의 끝날 때까지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해서 밥값도 아낄 겸 먹었는데, 그때의 감상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 ‘ 보다는 ’왜 이렇게 맵지?‘ 정도였다. 이런 경험도 있기에 한식은 나에게 있어서 여러 음식 카테고리 중 하나 정도의 위치였다. 근처에 없다면 혹은 가격이 비싸다면 굳이 먹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그런 정도의. 그와 더불어 약간의 우월감도 가지고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즐겁고 유니크한 행위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것인데, 나는 그러기 위한 적합한 조건 - 독립성과 적응력 - 을 갖춘 것이 아닐까? 하는 우월감 말이다.

 이 생각은 이번 6개월 간의 여행을 하면서 바뀌었다. 지금까지 남미를 140일간 여행하면서 멕시코에서 한 번, 콜롬비아에서 한 번, 아르헨티나에서 수차례 한식당을 방문했다. 여행 중 먹는 한식은 짜릿하다. 남미의 여러 나라들의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들이 주는 만족감과 한식이 주는 만족감이 전혀 다른 것이다. 바로 다채로움이다.


 한식을 먹을 때 다른 요리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감칠맛이다. 입에 착 감기는 맛. 그렇지만 이 맛은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느껴진다. 아르헨티나에서 카라멜라이징 토마토를 먹으면 마치 라면수프처럼 농축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페루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페루에는 아지노모토(미원) 공장이 있을 정도로 MSG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아지노모토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의 동네 마트에서도 소분해서 파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남미에서도 감칠맛을 (특히 수프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물론 한식당보다 수십 배는 많은 중식당이나 일식당에서도 감칠맛을 흔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밖에도 단맛과 짠맛의 조화, 맵고 얼큰한 맛, 뜨거운 음식도 한식의 특징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구체적인 맛보다도 다채로움이 한식만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한식당에 앉으면 주문을 하고 나서 곧바로 혹은 주문도 하기 전에 각종 반찬들이 내어진다. 그 속도감은 다른 식당에서는 찾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주문을 하고 1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며 그전에는 식전빵과 버터뿐이다.) 반찬들이 가득 차 있는 식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이 든다. 메인메뉴가 하나라고 해도 어떤 반찬하고 곁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는데, 그렇게 나만의 조합을 찾아가며 식사를 하는 것 또한 유니크하다. 곁들여 먹는 사이드 메뉴들도 주문을 따로 해야 하는 것이 한국 밖의 전 세계 공통사항이다. 물론 조합에 맞는 메뉴들을 조금씩 시키면 되는데 무엇이 좋은 조합인지도 모를뿐더러 기껏해야 한 두 개 정도를 시킬 수 있기에 다채로운 식사는 어렵다.


 아르헨티나에는 아사도라는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또한 소고기가 맛있고 저렴하기로 유명하기에, 한식당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소고기를 먹었다. 당연히 맛있다. 집에서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고, 유명 식당에서 제대로 구워진 품질 좋은 소고기를 먹어도 혹은 그냥 근처 식당에서 아무 소고기 아사도를 시켜도 맛있다. 그런데 먹다 보면 무언가 부족하다. 분명 고기는 맛있다. 그런데 단조롭다. 치미추리(오레가노와 올리브유 등을 섞어 만든 소스)도 있고 구운 야채나 카라멜라이징 된 토마토도 반찬의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아르헨티나에서 수라 Sura라는 한식당을 방문했다. 갈비 아사도와 함께 각종 반찬이 내어진다. 고기 자체만을 보면 다른 스테이크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 더 익혀진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그렇지만 다양한 반찬 - 김치, 오징어초무침, 잡채, 야채무침, 막국수, 쌀밥 등 - 을 곁들여서 먹으면 한 끼를 다채로운 맛으로 채울 수 있다.


 외국에서 한식을 찾는 이유는 꼭 그 나라의 식문화를 잘 즐기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하고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로 가득 찬, ‘한국인의 식탁’의 다채로움이 줄 수 있는 독보적인 만족감이 있다. 먼 타지에서 조건이 좋지 못함에도 어떻게든 한국의 맛을 풍성하게 보여주기 위한 주인장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외국에서도 한식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이전 28화 예술과 심미안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