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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Apr 20. 2024

180일간의 여행을 마치며, 여행이 내게 남긴 것.

주간 여행 에세이 34

 23년 10월 말 한국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멕시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벨기에, 이탈리아, 튀르키예까지 총 13나라 43도시에 머물렀다. 24년 4월 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 180일 동안의 여행 동안 지혜와 함께 수없이 많은 추억을 쌓고 이야기했다. 또한 매일 일기를 쓰고 매주 짧은 에세이를 썼다. 여행 동안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쓰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여행이 남긴 수많은 추억과 생각들 중 한 가지만을 골라서 말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여행은 나를 둘러싼 배경을 바꾸는 것이다. 한 공간 속에서 계속 살다 보면 배경보다 그 속에 있는 나를 더 신경 쓰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장단점은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어떤 점을 고쳐야 할까. 그렇지만 여행 중에는 이보다 시시각각 바뀌는 배경을 의식하게 된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은 없다. 밤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혹은 낮이라고 해도 어디든 산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치안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식, 교육, 노동구조, 국제정세 등 수많은 요인이 기적처럼 들어맞은 결과다. 보도블록이 온전하다는 것, 교통신호를 지킨다는 것, 신호등이 있다는 것, 남들에게 친절하다는 것. 심지어는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나 온수가 나오는 것, 인터넷이 되는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너무나 훌륭한 조건을 갖춘 나라인데 그것을 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반대도 있다. 어디서든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언제나 남들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당연하지 않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이 사실에서 어떤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나는 사실 그 자체에서 위안과 격려를 받았다. 주변을 둘러싼 배경은 너무나 거대하고 견고해 보인다. 진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 않다. 견고한 진리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결론일 뿐이다. 주변과 내가 다르다 해도 괜찮다. 틀린 것이 아니고 잘못이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주어진 소중한 일상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반대로 나를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나아가면 된다. 당연한 듯 놓인 레일을 따라가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클지도, 실패의 고통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생각 없이 성공하는 것보다 내 의지로 실패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배우자인 지혜. 언제나 나를 지지하는 소중한 사람의 존재는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다. 기적 같은 존재다. 살다 보면 엇나갈 수도 있다. 감사함을 잊고 한탄 속에 살 수도 있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다. 내 주관을 잊고 타성에 젖어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옆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지혜가 있다. 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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