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경 Jan 09. 2023

25. 눈 부신 겨울날의 추억을 담은 그림책

그림책 <눈 오는 날>, <마법이 시작될 거야!>

언니,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어? 명절 증후군처럼 크리스마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언니 편지를 읽는 내내 즐거웠어.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을 만들고, 산타에게 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달력의 달콤한 간식을 빼먹으며 하루하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까 나까지 설레더라.

우주는 두 살 때부터 어린이집 행사로 산타할아버지를 접했지만 산타와 크리스마스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기다린 건 올해가 처음이야. 그동안 우주를 위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의 카드와 함께 선물을 준비하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아이가 정말 이걸 믿을까’라는 의심이 있었어. 굴뚝이 없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오느냐, 산타할아버지는 이 선물을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질문을 할 땐 그럴싸한 말로 둘러대면서도 언제까지 아이한테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해야 하나, 괴롭기도 했어.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타는 산타를 믿는 게 정말 가능한 건지, 왜 아이들에게 산타를 믿게 해야 하는 건지, 산타를 한 번도 기다려본 적 없는 나로선 그 대답을 찾기가 힘들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언니 편지를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이렇게 손꼽아 기다리는 날, 설레는 날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살면서 한때라도 크리스마스의 환상에 빠져 동화 같은 세상에 살아볼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 크리스마스 덕분에 추운 겨울날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빛날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 덕분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평소보다 훨씬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맞이할 수 있었고.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있다가 우주가 그러더라. 크리스마스가 끝나서 겨울이 재미없어졌다고. 그래서 그랬지.

“우주야, 그래도 겨울엔 눈이 오잖아!”


겨울을 특별하고 설레게 만들어주는 첫 번째가 크리스마스라면 두 번째는 단연 눈이 아닐까?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서 눈이 내리면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지만 어렸을 땐 그저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바빴잖아.

그래서 오늘은 눈 내리는 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해보려고 해.

첫 번째 그림책은 <눈 오는 날>이라는 그림책인데 우주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이야.

어느 눈 내린 날의 아침, 피터라는 아이의 소소한 하루를 따라가며 보여주는 데 그 아이의 모습을 보다 보면 수십 년 전 어느 겨울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해. 어느 겨울날 아침, 눈을 떠보니 창밖에 눈이 수북이 쌓여있고, 신이 난 피터는 하얗게 변한 세상으로 나가. 발자국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며 눈 위를 걷고, 막대기를 들고 기다란 길을 내면서 걷기도 해. 나무 막대기로 나무를 툭툭 쳐서 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떨어내기도 하고 빙그레 웃는 눈사람도 만들지.

그렇게 한참을 놀아놓고도 아쉬워서 눈을 가지고 들어가는 아이 모습은 또 왜 그렇게 귀여운 지. 밖에서 만든 눈사람을 집에 가지고 가겠다고 고집부리던 우주, 기어이 꼬마 눈사람을 가지고 들어와 냉동실에 넣어놓고 시시때때로 냉동실 문을 열어 확인하던 우주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어. 엄마에게 신이 나서 자기가 한 모험들을 이야기하는 피터의 달뜬 목소리를 상상하니 흐뭇해지기도 했고.


언니, 나는 이 그림책 속 아이가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세상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가 자꾸 떠올랐어. 내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여서 오빠랑 둘이 눈밭을 헤치며 걸어가던 어느 겨울의 풍경이랑 시골 할머니집에서 연탄을 굴려서 커다랗게 만들었던 눈사람, 나이가 제각각이던 동네 친구들이랑 손끝이 꽁꽁 얼어 잘 움직여지지 않을 때까지 눈싸움을 하며 놀던 날들의 기억. 눈이 내리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제일 먼저 발자국을 찍겠다고 뛰어 나가던 일이나 그냥 눈이 푹푹 꺼지며 자국이 남는 게 신기하고 좋아서 목적지도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던 일 같은 게 슬라이드 필름처럼 머릿속을 계속 스쳐 지나가더라.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마냥 좋기만 했는데 어른이 돼서는 눈 치울 걱정, 차 막힐 걱정, 미끄러질 걱정에 한숨부터 나온 지 참 오래야. 그런데 고마운 일이 뭔지 알아?

내 삶에 우주가 들어온 이후엔 그런 걱정보다 설렘이 조금 더 커졌다는 거야. 눈이 오면 우주가 얼마나 좋아할까, 눈이 오면 썰매도 타고 같이 눈사람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겨울이면 우주보다 내가 더 눈이 오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해.


우주가 태어난 해 겨울, 첫눈이 내린 날 아침에 우주를 아기띠에 안고 나가 나무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을 우주에게 보여줬어. 우주는 조심스럽게 눈을 향해 손을 뻗어 만져보더니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더라. 차가웠던 모양이야. 아직 아장아장 걷던, 2음절 단어로만 소통하던 우주와 처음으로 눈이 내린 길을 산책하던 날엔 한걸음 한걸음, 눈을 밟는 자기 발끝을 바라보며 그랬어. 

“폭신. 폭신.”

그 말이, 그 말을 하는 우주의 표정이 하얀 눈만큼이나 눈부셨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이라는 것을 밟아보는 우주의 눈으로 눈 내린 세상을 바라보니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더라.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마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어.


그런 눈 내리는 날을 ‘마법’이라고 표현한 책이 있어. <마법이 시작될 거야>라는 책인데, 우주가 세 살 때부터 겨울이면 항상 꺼내보던 그림책이야.

회색빛으로 찌푸린 하늘을 바라보는 한 아이가 있어. 그 아이가 말하지.

오늘은 아주아주 특별한 날이라고. 어둡고 흐린 겨울날이지만 바로 지금 마법이 시작될 거라고. 페이지를 넘기면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떨어지고 아이는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 나가.

아이는 눈 속에서 나뭇가지와 조약돌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뭉치고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어. 우리는 곧 아이에게 오늘이 특별한 이유가 단순히 눈이 와서가 아니라 눈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어서라는 걸 알게 돼.

아이는 눈사람에게 조약돌 눈과 나뭇가지 팔을 만들어주고, 아이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매 줘. 그리고 또 다른 나뭇가지로 멋진 미소의 입을 만들어줘.

다시 만난 눈사람과 인사를 나눈 아이는 눈사람과 기념사진을 찍어.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따뜻할 거야. 곧 봄이 오고 넌 녹겠지. 하지만 슬프지 않아. 봄도 여름도 가을도 끝나면 또다시 겨울이 올 거니까.”


우주도 눈사람을 만들면 눈사람을 두고 집에 가는 걸 그렇게 아쉬워하고, 나중에 녹아 없어진 눈사람을 보면 굉장히 속상해했거든. 아마 아이들이 다 그런 모양이야. 그러니까 이런 그림책이 나온 게 아닐까?

이 그림책 덕분에 우주는 눈사람을 만들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이제 추억이 남았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됐어. 이 그림책을 보면서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을 지나 봄이 온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해.

그림책 한 권을 수십 번씩 보던 세 살과 네 살 겨울, 정말 질리도록 본 그림책이라 지금은 많이 찾지 않지만 도저히 내보내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해. 언젠가 우주가 스스로 글씨를 읽게 되면 이 그림책이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우주의 몸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 우주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도 문득문득 떠올릴  있는 좋은 기억들. 따뜻한 봄바람을 느끼다가, 책장을 넘기다가,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다가  번씩 스치듯 지나갈  있는 좋은 기억들. 그리고  기억 속에 나와 남편이 많이 들어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먼 훗날 우주든 순간마다 사랑으로 충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있으면 좋겠어.

준호와 리아에게도 앞으로 한해 한해 맞이할 크리스마스와 추운 겨울이 즐겁고 설레는 기억으로 채워지면 좋겠다. 그리고 언니와 나 역시도.


벌써 1월의 첫 주가 지나버렸어. 얼마 있으면 언제 끝나나 했던 겨울도 금방 지나가버리고 벌써 봄이라며 놀라워하고 있겠지?

유난히 추운 겨울이지만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희망차길 바랄게. 새해 복 많이 받아, 언니.




2022.1.8.

다경으로부터




눈 오는 날

글, 그림 : 에즈라 잭 키츠

옮긴이 : 김소희

비룡소 | 2017







마법이 시작될 거야!

글, 그림 : 레인 말로우

옮긴이 : 김은재

키즈엠 | 2014

매거진의 이전글 24. 프랑스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