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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다리던 밤

by 딜피

돈키호테가 풍차에 뛰어드는 것처럼

그냥 그에게 계속 부딪혔다.


좋다고 고분고분히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면,

그도 호감을 갖고 나를 바라봤을까.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오히려 모나게 굴었다.


“와, 오늘 정말 아저씨 같다.”

그와 1층에서 마주친 어느 아침, 또 시비를 걸었다.

벙찐 그의 얼굴에 대고

“그 표정이 정말 더 아저씨 같아”

쏘아 붙이고는 그냥 가게를 나섰다.


또 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가서는,

“배고픈거 확신해?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라며 시비를 걸었다.

그는 잠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시킨 메뉴를 싹싹 비웠고,

그렇게 시비를 걸면 시원할 줄 알았던 나만 국 몇 숟갈 뜨고 다 남겼다.


다른 동기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를 쏘아보다,

그가 혼자있는 틈을 타

“나한테 그렇게 말해놓고 다른 동기 사귀면 내가 테러할거야”

라고 선전포고 까지 했다.


공격적인 나의 태도는 주변에서도 눈치를 채고,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짜증나”

이런 내 말에 얼마간 흥미를 갖던 동기들도 “또 싸우니” 하면서 흥미를 잃어갔다.


‘그렇게 많이 싸웠었나‘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괜히 모나게 굴고,

주변 사람들이 그냥 둘이 또 싸우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라면,

정말 나 그 사람 안좋아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가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나.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집에와서 침대에 누우면 또 자괴감에 잠이 들기 어려웠다.


정말 예민하고 성가신 하루하루를 보내며,

유치하게도 열심히 시비를 걸었다. 그래, 내 마음 몰라줄거라면 너도 똑같이 괴로워라 하는 마음에.


그리고, 봄에 찾아온 내 생일이 되었다.

연수도 끝나가고, 이제는 더 없이 친해진 같은 연수 조 동기들끼리

우리 집 1층 가게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렇게 싸웠어도 당연히 그도 오기로 했다.

단톡방에 그가 그 시간에 괜찮다며 오겠다는 톡을 보고 또 심란했다.

보기 싫으면서도 보고싶은 그 마음. 정말 나도 이제 모르겠다.


7시에 모여 생일 축하 겸 벌써 절반이 지난 연수 기간을 아쉬워하는 성토대회가 벌어졌다.

7시반, 8시. 슬슬 이상했다.

그가 오지 않았다.


“왜 안오지?” “연락 안돼?“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기들끼리 다 모이기로 한 자리인데.

왜 안와? 설마 내가 보기싫어서?


9시, 10시, 12시, 1시가 됐다. 생일은 지나갔다.

다른 동네에 사는 동기들이 슬슬 돌아갔고,

같은 건물 사는 동기 한 명이 남아 함께 자리를 지키다 올라가자고 했다.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봐야했다.


먼저 올라가라고 동기를 보내고 1층 카페 앞 테라스에 우두커니 앉았다.

담배를 피진 않았지만 절로 담배 생각이 났다.

편의점에 들러 그가 피는 담배를 사고 불을 피웠다.

호기심에 담배를 들이켜보지만, 맵고 눈물만 났다.

이딴걸 왜 피워.


그냥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 타들어가는걸 보다가,

다시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 아무 의미 없는 짓들을 하며 시간이 꽤 흘렀다.

그가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다.

카페 앞에 덩그러니 앉은 나를 보며 그도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안 잤어?”


그저 그를 그냥 노려볼 뿐이었다.


“미안, 오늘 생일 내가 축하해주겠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생겨버렸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내 앞에 작은 꽃한다발과 쇼핑백을 내려놨다.


“선물, 늦어서 미안.”


말없이 선물을 내려다봤지만, 여전히 내면은 고요했다.

다시 그를 올려다보고,

담배 불을 끄고,

그냥 일어서서 빈 손으로 그를 한 번 더 본 뒤,

그를 지나쳐 현관으로 들어가 내 방에 올라왔다.


눈물이 터져나온건 빌어먹게도 다행히, 방에 들어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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