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ND Jun 20. 2022

꽃은 한 가지만 꽂아도 예쁘다

어니스트플라워에서 소비 맥락에 맞는 제품 생산 구조의 힘을 배우다

어니스트플라워를 처음 발견한 곳은 카카오 선물하기였다. 코로나 시기에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려고 카카오 선물하기를 둘러보던 중, 마땅히 보낼만한 것이 없어 ‘꽃’을 검색해보았다. 비싼 꽃다발들 속에서 알스트로메리아 한 단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어니스트플라워였다. 어니스트플라워를 통해 꽃을 받은 지인은 매우 만족해했다. 그 후로 선물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어니스트플라워를 이용하고 있다.


어니스트플라워는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꽃을 풍성하게 보내준다. 다른 곳에서는 고작 크지 않은 꽃다발 하나를 살 가격에 화병 두 개에 꽂을만큼 많은 꽃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아직 다 피지도 않은 상태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오기 때문에, 이 주에서 길게는 삼 주까지도 꽃을 두고 볼 수가 있다. 어니스트플라워는 어떻게 꽃을 이렇게 저렴하고 싱싱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일까?


TL;DR
기존의 꽃배송 서비스는 선물용 꽃다발에 맞춰져 있어, 꽃의 양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관상기간이 짧았다. 하지만 배송된 꽃은 집을 장식하는데 사용되므로, 선물용 꽃다발에 비해 가격과 관상기간이 중요하다. 따라서 사용자들이 꽃 배송 서비스의 가격과 관상기간에 만족하기 어려웠다.
한편, 어니스트플라워는 꽃다발로 가공하지 않은 꽃이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니스트플라워는 기존 유통 구조를 벗어나 손질되지 않은 꽃을 농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저렴하고 오래가는 꽃을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어, 집을 장식한다는 목적에 맞는 상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재료로서의 꽃을 판매하는 어니스트플라워

어니스트플라워가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꽃을 판매할 수 있는 건, 여러 꽃으로 구성된 꽃다발이 아니라 손질되지 않은 한 종류의 꽃을 농장에서 직접 배송하기 때문이다.어니스트플라워의 김다인 대표에 따르면, 어니스트플라워는 ‘재료로서의 꽃’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른 농산물처럼, 꽃도 꽃다발이라는 완제품이 아니라 원재료 자체로 상품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본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기존의 꽃 배송 서비스가 해결하지 못하던 여러 문제를 해결했다.


꽃 유통 구조와 기존의 꽃 배송 서비스


어니스트플라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기존의 꽃 유통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꽃 배송 서비스들이 비싸고 수명이 짧은 꽃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선물용 꽃다발에 맞춰진 기존의 꽃 유통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꽃 시장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 번째 영역은 근조화환 등 행사를 위한 꽃장식 시장이다. 이 시장은 상품의 형태, 연간 수요가 거의 고정되어 있어, 가격경쟁이 치열하고 매우 낮은 마진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출처). 일상에서 소비하는 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두 번째 영역은 가장 큰 시장인 선물용 꽃다발 시장이다. 이 시장은 각종 기념일에 맞춰 움직인다. 주요 기념일을 기준으로 어느정도 연간 수요가 정해져 있고, 주로 소비되는 꽃도 정해져 있다(출처). 선물용 꽃다발은 선물로 받았을 때의 인상이 가장 중요하며, 관상기간이나 가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출처).

인테리어 소비재의 성격이 강한 장식용 꽃

마지막 영역은 집 장식 등을 위한 장식용(personal use, decorative purpose) 꽃 소비 시장이다. 장식용 꽃 시장은 인테리어 소비재의 성격이 강하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과 관상기간이 중요하다. 비정기적으로 소비되며, 인테리어 트렌드에도 영향을 받아 앞선 두 종류의 시장에 비해서 변화가 큰 시장이다.


기존의 꽃 유통 구조는 가장 큰 시장인 선물용 꽃다발 시장에 맞춰져 있다.


소비자들이 선물할 대상을 만나러 가는 길에 꽃다발을 구입하거나, 당일배송으로 주문하기 때문에, 소매점들은 소비자가 발견하기 좋은 곳이나, 소비자에게 당일배송을 하기 좋은 곳에 있어야 한다. 또한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꽃을 조금씩 구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매, 도매, 소매의 과정을 거쳐 물량을 분배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이 크기 때문에, 꽃다발의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또한 유통 과정이 길 수 밖에 없어, 관상 기간도 줄어든다. 꽃다발 배송 서비스들은 경매에 참여하여 유통 단계를 줄이거나, 포장 과정을 매우 빠르게 하여 유통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으나, 기존 소매점에 비하여 저렴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적자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꽃다발 제작을 직접하지 않고 지역 소매점들에 제작을 맡기는 방식의 업체만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장식용 꽃의 소비 맥락에 맞는 어니스트플라워의 제품과 유통 구조


하지만 배송되는 꽃은 기존의 선물용 꽃다발과는 다르게, 가정에서 장식용으로 소비된다. 장식용 꽃은 첫 인상이 강렬하지 않아도, 집에서 오래 남아 있으면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 한 가지만 꽂아두더라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이 유리하다. 피고 지는 변화가 보이고, 그래서 어느 날 꽃이 사라졌을 때 어쩐지 허전해야 재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다시 구매를 하게 하려면 당연히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장식용 꽃의 소비맥락이 선물용 꽃다발과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의 요구도 다른 것이다.


어니스트플라워는 이러한 장식용 꽃의 소비맥락에 맞는 구조를 만들어,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꽃의 손질 방법과 조합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상세 페이지

가장 큰 변화는 꽃을 꽃다발로 판매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재료 상태로 판매한 것이다. 어니스트플라워는 사용자가 직접 꽃을 가공하게 하는 대신 꽃마다 필요로 하는 가공 방법을 쉽게 알려줬다. 사용자 후기 사진과 예시 사진으로 여러 꽃을 조합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최근에는 몇 가지 꽃을 선택하면 같이 꽂았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는 기능도 테스트 중이다. 이케아에서 이미 증명된 것과 같이, 가격이 저렴하고 제품의 품질이 좋다면 직접 가공하는 수고는 사용자들이 감당하게 할 수 있었다.

농장 직배송 과정을 보여주는 브랜드 소개 영상

한편, 꽃을 가공 전의 상태로 판매하니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농장에서 꽃을 직접 배송하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큰 변화다. 이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관상기간을 확실하게 늘렸다. 농장에서 직접 배송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장에 배송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고 관리하며,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을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출처). 이 수고를 해낸 것이 어니스트플라워의 강점인 것 같다.

농가와 함께 재배 계획을 수립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브랜드 소개 페이지

마지막으로, 농장과 직접 거래를 하니 계약 재배를 할 수 있다. 현재 어니스트플라워에서 계약 재배의 형식으로 협업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홈페이지 내의 설명에 따르면 농가와 함께 재배 계획을 수립한다고 한다. 또한 농부 분들의 인터뷰 중에도 어니스트플라워에서 추천해줘서 특정 품목을 재배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품목도 시험적으로 판매 중이다. 장식용 꽃은 인테리어 트렌드의 영향을 받으니, 계약 재배를 통해 트렌드에 맞는 꽃을 독점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훗날 차별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니스트플라워와 배송 꽃 시장에서 배울 점


어니스트플라워는 이처럼 장식용 꽃에 맞는 꽃배송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으며, 전반적으로는 줄어들고 있는 꽃 시장에서도 성장하는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꽃 시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어니스트플라워는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2021년 기준).


어떤 제품의 뒤에는 그 제품을 만드는 생산, 유통 구조가 있으며, 제품이 바뀌려면 생산과 유통의 구조가 바뀌어야만 한다. 그리고 제품의 앞에는 그 제품이 소비되는 맥락이 있다. 같은 제품 같아보여도 소비되는 맥락이 다르면 다른 제품이어야 한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그 제품이 소비되는 맥락을 잘 알아야 하고, 뒤로는 그 맥락에 맞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 유통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일을 다 잘 해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맞는 구조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적자를 유지하면서 제품을 팔아야할지도 모른다. 결국 지속가능한 제품은 지속가능하게 하는 구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배송 꽃 시장과 어니스트플라워를 살펴보면서, 제품이 소비되는 맥락에 맞는 생산, 유통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구조 자체가 스스로 경제적 해자를 가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동일한 구조로 서비스를 시작했을때, 이윤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산업을 아주 얕게 훑어봤을 뿐인 나로서는 답하기 어려웠다. 다만, 제품이 소비되는 맥락에 맞는 구조를 시도하고, 또 성장시켜나가고 있는 어니스트플라워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다.



부록

우리나라의 1인당 화훼소비액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특별히 작은 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제1차 화훼산업육성종합계획’ 등 화훼시장을 분석한 여러 레포트를 보면, 우리나라의 화훼소비액이 유달리 작은 이유로 두 가지를 자주 언급한다. 하나는 유통 체계가 낙후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꽃을 사치품으로 인식하여 일상 소비가 작다는 점이다.


물론 꽃가격의 변동 폭을 크게 하는 재래시장 중심의 유통 과정이나, 사치품의 성격을 가지는 선물용 꽃다발 위주의 소비 행태는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존의 꽃 유통이 꽃의 소비 맥락이 변화해가는데 대응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장식용 꽃 소비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절대적으로 큰 비중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장식용 꽃 소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꽃 가격은 장식용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구글에서 각국 언어로 ‘꽃다발 가격’이라고 검색했을 때 상위권에 나오는 꽃집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6,000 ~ 66,000원대, 영국에서는 16,000 ~ 100,000원대, 독일에서는 27,000 ~ 100,000원대, 일본에서는 36,000 ~ 120,000원대, 한국에서는 30,000 ~ 180,000원대 상품들을 볼 수 있었다. GDP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꽃 가격이 비싼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세인즈버리 슈퍼마켓의 꽃 코너

또한 우리나라에는 아직 저렴한 비전문 소매처가 많지 않다(비전문 소매처란, 전문 플로리스트가 가공하여 판매하지 않는 소매처를 말한다). 유럽에는 슈퍼마켓, 키오스크 등 다양한 비전문 소매처가 있어, 주문제작하지 않는 꽃다발이나 가공하지 않은 꽃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체 꽃 판매량의 대부분이 슈퍼마켓을 통해 유통된다(출처). 일상의 모습으로 슈퍼마켓에서 산 꽃을 언급하는 가사가 있는 ‘Supermarket Flowers’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재구매를 하게 하려면 품종 다변화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절화 생산은 선물 및 경조사용 상품에 맞는 품종에 치우쳐 있다. 어떤 꽃이 장식용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지 통계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살펴보았을 때는 지난 봄에는 작약, 라벤더 색상(팬톤 올해의 컬러)의 꽃이 인기가 많았고, 최근에는 수국, 마가렛, 해바라기의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다. 계절이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절화 생산량의 70%는 여전히 장미, 국화, 백합이 차지하고 있다(출처).


하지만 한국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어니스트플라워와 비슷한 모델로 마켓컬리에서도 ‘농부의꽃'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2021년 2월부터 단일 품종의 꽃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꾸까에서도 올해 6월 ‘파머스마켓'이라는 이름으로 가공하지 않은 꽃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꾸까는 신세계 스타필드와의 협업으로 오프라인에서도 ‘파머스마켓'을 운영할 예정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꽃 시장은 어떻게 변화해갈까? 비전문 소매처가 정착할 수 있을까? 1인당 꽃 소비액은 다시 높아질까? 새로운 생산, 유통과정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아야겠다.



참고 문헌

제1차('22~'26) 화훼산업육성 종합계획 화훼산업육성 종합계획

화훼 인삼 녹차의 소비행태 조사

화훼류의 한일 소비행태 조사

화훼 유통 및 소비 실태와 정책 과제

화훼류 유통구조 실태와 개선 방향

참고 자료

Through what channels can you get cut flowers or foliage onto the European market?

https://www.flowerstation.co.uk/birthday

https://www.interflora.co.uk/

https://www.blumenshop.de/blumenstrauss-verschicken.html

https://www.fleurop.de/Shop/alle-blumenstraeusse.aspx

https://www.aoyamaflowermarket.com

https://hitohana.tokyo/bundle

https://www.99flower.co.kr

https://www.f-mans.com/goods

http://twelve-studio.co.uk/work/sainsburys-milestone-stores


작가의 이전글 하나의 일에 고여야만 보이는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