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사가 하나 있다. ‘근데’. 대화나 글에 반전을 주는 멋진 단어지만, 내게 그 반전은 성췌나 감동이라기 보단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근데’ 자체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그 뒤에 따라오는 거절을 어떻게 소화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또 한동안은 거절하기 위해 회피하면서 살았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니,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의사소통 방법까지 잃어갔다. 그땐 그것들이 자존감이 없었던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사회생활이 공포로까지 다가오는 경험을 나는 안다. 누군가와 가벼운 일상을 인사하는 것에서도 고통을 느꼈다. 그 고통은 내 하루를, 내 일주일을, 그 이후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 모든 고통은 스스로 평가의 대상에 올려두고, 언제나 타인의 심사기준으로 평가되려고 하는데서부터 출발했다. 무방비 상태로 타인에게 나를 평가하라고 스스로 등 떠민 다음, ’나‘가 원하는 평가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나’에 대한 인지 및 신뢰 부재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감 상실이다. 평가기준을 외부에 두면 상대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상대를 평가해서 통제하려고 한다. 통제에는 상대를 비하, 평범화, 희화화, 신격화가 있다. 이것들은 나에 대한 통제감을 상실해서 생기는 내 인지왜곡을 직시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내겐 학문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선 교수님들에 대한 기본적인 부러움이 있었다. ‘어떻게 저걸 다 알고 계시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교수님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관계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던 나로서는 왠지 나에게 객관적엔 평가를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이기도 했다. 문제는 교수님들의 평가를 받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시간을 대학원에선 버틸 수 있었다. 물론, 버티는 과정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무너지고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믿어주고, 성취에 대해 인정해 주고, 원하는 것을 조금씩 선택하다 보니 ‘근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연구에 진전이 생겼다. 교수님들 반박에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내 논리에 뭐가 문제인지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즉, 교수님의 ‘근데’가 내 존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교수님 피드백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내 전체 능력에 대한 과잉 일반화로 내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멈춘 것이다.
며칠 전 독일에 계신 교수님께 교수님과 박사연구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은 너무 흔쾌히 ‘네, 당신은 저와 함께 박사논문을 쓰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주셨다. 근데, 조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사회학 석사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내 석사학위는 사회학이 아닌 사회복지다. 예전 같았다면 이 상황을 비관하며, 확대해석하고, 과잉 일반화 하여 내 가치를 뭉개었을 것이다.
근데, 이번엔 달랐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했다. 나는 사회학 석사가 없지만, 사회복지학 석사 논문이 당신의 연구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유럽연구학에서 수료한 것이 감안이 될 순 없는지, 만약 안되더라도 지금 당신과 쓰고 있는 학술지 논문은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이번에 또 다른 점이 하나가 있다. 다음 단계로 스스로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만약 그 교수님께 결국 ‘안타깝지만 사회학 석사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거절을 받아도 난 내 능력과 가치를 폄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며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내 삶의 결정권을 타인에게 두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사는 태도로 사는 편이 ‘근데’에 벌벌 떨었던 삶보다 훨씬 살만 하다. 여전히 삶은 합격보다 불합격이 많다.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것보단 불합리함을 더 많이 본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성취를 맛보는 순간보다 성취를 위한 과정이 몇 배는 될 테지. 그럼에도 이런 사회가 살만한 것은 각자의 삶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더 나은 결정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