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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에스프리는 시간을 뛰어 넘고

알고리즘 보카: spring, spirit, esprit

by 현현


봄spring은 약동한다springs. 봄은 용수철과 같은 복원력resilience을 갖고 있다. 용수철과 봄이 영어로 스펠링이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단어는 사실상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용수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제일 단순한 장난감toy이다. 용수철이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흥미를 가져다 준다.


힘껏 누를수록 튀어오르는 힘이 커진다. 용수철은 생명의 본질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용수철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즐거워한다. 겨울동안 죽어 있던 생명들이 봄이 되면 다시 태어난다. 용수철을 누르면 다시 올라오는 힘이 생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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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동안 땅속 깊이 언 채로 버티던 생명들이 봄이 되면 지표를 뚫고 나온다. 겨울은 겉으로 죽은 듯 보이지만, 안으로 생명을 감추는 계절이다. 봄이 되면 생명들은 위로 튀어 오르려는 힘과 동의어가 된다. 봄은 용수철이다.


튀어오르는 것은 역동적dynamic이다. 그래서 도약leap, 터져 나오는것burst, 자라는 것grow, 퍼뜨리는 것 등과도 의미상 관계가 있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천방지축 판을 벌이는 것을 spree라고 한다. 종종 극단적인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총기난사는 shooting spree라고 한다.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활기찬, 생동감 있는, 그리고 지적인 총명함의 뜻으로도 읽혀진다. 에스프리esprit는 프랑스어에서 왔지만 영어에서도 재기넘치는, 지적인 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봄은 만물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inspire는 영혼spirit을 불어 넣어준다는 뜻이다. 많은 경우 예술가나 천재들은 영감inspiration으로부터 창조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spirit는 영혼이지만, 생명의 뜻도 있다. 영혼과 생명의 관계는 철학자들의 숙제로 남겨둔다. 생명을 주관하는 봄spring으로부터 영혼spirit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쁘렝땅 백화점이 있었다. 지금도 같은 이름의 쇼핑몰이 있는 것 같다. 쁘렝땅은 프랑스어로 봄printemps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spring이 봄의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현했다면 printemps는 계절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결과를 이름으로 사용했다.


Prin은 영어의 prime에 해당한다. 프라임prime은 처음, 최초, 최고의 라는 뜻이다. temps는 박자, 혹은 빠르기를 뜻하는 템포tempo와 관계있다. tem-은 자른다는 의미와 관계가 있는데, 미국 드라마, <그레이스 아나토미Grey’s anatomy>에서처럼 anatomy는 해부를 의미한다. 원자를 의미하는 아톰atom은 더 이상 자를수tom 없다는a- 것을 의미한다. 자르는 것은 왜 템포와 관계가 있는가? 템포는 시간을 자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tempos는 시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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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은 절이나 사원을 뜻한다. 사람의 신체에서 관자놀이를 말하기도 한다. temple에 사용된 자르다tem의 의미는 사원이 속세로부터 떨어져cut off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왜 시간의 의미와 연관될 수 있을까? 과거 사원이나 절,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자로 時間을 의미하는 말時속에 절寺 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쁘렝땅printemps은 첫 번째 계절이라는 뜻이다. 시간적으로 제일 먼저 시작하는 계절이다. 동양의 생로병사의 순환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처음은 생명과 탄생과 관계가 깊다.


생명은 물로부터 시작된다. 생명의 원천은 곧 물의 원천이기도 하다. spring은 그래서 샘이라는 뜻도 있다.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1960년작 <처녀의 샘The Virgin Spring>은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서 그러했듯이 매우 종교적인 주제를 갖고 있는 영화다. 원작은 13세기경 스웨덴의 발라드로부터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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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깊은 한 아버지의 딸이 양초를 교회에 가져다주러 가는 길에 낯선 양치기들로부터 능욕당한 후 살해당한다. 양치기들은 딸의 옷을 들고 그 집에 손님으로 찾아간다. 양치기들이 딸의 옷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복수를 감행한다.


자신 역시 살인자가 된 아버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 표시로 그는 교회를 세우기로 약속하는데, 마침 그 자리에서 기적처럼 샘이 솟아 흐르기 시작한다.


1972년,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유명해지기 한참 전의 웨스 크레이븐은 이 영화를 <왼쪽편 마지막 집The Last House on the Left>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다. 그리고 2009년 폭력과 복수의 장면이 훨씬 더 그래픽graphic한 버전으로 또 한번 리메이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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