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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가 진주처럼 빛나는 금욕의 밤

알고리즘영단어: scarlet, scar, pearl, brand

by 현현

현대는 브랜드의 시대다. 심지어 브랜드 없는 브랜드인 노브랜드No Brand도 등장했다. 브랜드에 열광하고, 브랜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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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아디다스. 람보르기니. 롤스 로이스. 샤넬. 에르메스. 심지어 집에도 브랜드가 생겼다. 래미안. 롯데캐슬. 힐스테이트. 평범한 이름은 브랜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의 욕망을 집어삼키는 자본주의의 블랙홀이 된다.


브랜드는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라 말하는 허구적인 것을 믿는 인간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실제 효용가치보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지명도와 유명세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브랜드(Brand)는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농장에서 불로 달군 쇠막대를 이용해서 가축들의 소유자를 표시하던 관습에서 유래한다. 불로 지져서 도장을 찍는 것처럼 표시를 하기 때문에, 낙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낙인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이 단어는 불, 화염, 불로 달구는 것, 심지어 칼이라는 의미까지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지금은 상품의 이름을 브랜드라고 하지만, 과거엔 자기 소유의 가축을 표시하기 위해 불로 달군 쇠로 낙인을 찍는 것을 의미했다. 노예제도slavery가 번성하던 시기, 노예주인들은 자신의 노예를 표시하기 위해 불로 달군 쇠로 낙인을 찍었다. 낙인이 찍히던 신체부위는 대부분 왼쪽 가슴쯤이다. 현재 대부분의 티셔츠에 로고logo가 박혀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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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가 가속화 되고, 브랜드가 현대인의 삶을 속박하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셔츠에 박힌 로고의 위치가 노예들에게 낙인을 찍었던 위치와 동일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브랜드의 노예slave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있을까.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나타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주홍글씨>는 낙인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주홍글씨>는 소설 속 주인공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의 옷에 천으로 새겨진 글자 A를 의미한다. 불로 지져서 새긴 낙인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새긴 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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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은 A를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이니셜로 보기도 하고, 혹은 헤스터 프린의 아름다운 성정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인해 천사angel의 이니셜이라고 보기도 한다.


헤스터의 딸은 펄Pearl이다. 진주pearl라는 의미다. 진주는 조개가 모래나 작은 돌멩이를 삼켰을 때 생겨난다. 작고 딱딱한 돌조각이 조갯살에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조개가 내뿜는 물질이 돌조각을 둘러싸면서 진주가 생기기 시작한다. 손톱만큼 커다란 진주는 영롱하고 아름답지만, 온전히 생살속에 박힌 이물질foreign body로 인한 상처의 고통이 응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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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터와 딤즈데일Dimmesdale 목사가 겪어야 했던 사회적 냉대와 비난의 고통속에서 태어난 펄은 아름답게 자란다. 또한 사회의 규범과 질서의 바깥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펄은 때로 순수하고innocent 천진난만했지만, 종종 반항적rebellious이고, 질서에 순종적이지 않았다.


펄에게 주홍글씨는 일종의 패스포트passport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으로, 펄은 당시의 다른 여자라면 감히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도 갈수 있었기 때문이다. 낙인으로 남은 상처는 오히려 자유와 모험의 특권이 되었다.


왜 주홍scarlet 글씨인가? 주홍색은 마치 상처scar의 속살같은 색깔이다. 단어의 생김으로만 본다면, 주홍scarlet은 상처scar와 관계있을 법도 하지만, scarlet은 밝은 색의 옷감색을 의미하는 단어로부터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주홍색은 그 자체로 많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사랑이나, 열정, 그리고 인간의 속살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것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죄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피와 구원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주홍글씨> 소설 속 청교도Puritan 사회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상징하기도 하는 주홍색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화려한 색이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는 극도로 경직된 사회에서 헤스터의 주홍글씨scarlet letter는 그 자체로 눈에 띄는 스펙터클spectacle이었을 것이다.


많은 브랜드들은 그 브랜드를 최초로 만든 사람의 이름인 경우가 많다. 6살 때부터 바느질을 배웠다는 코코 샤넬CoCo Chanel은 세계대전이후 가장 유명한 패션브랜드가 되었고, 트랙터를 만들던 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자동차를 만들었다.


람보르기니는 투우와 관계된 이름으로 모델을 명명하는 전통이 있다. 레벤튼Reventon은 투우사matador죽게 만들었던 황소의 이름이다. 무르시엘라고Murcielago는 코르도바 경기장에서 투우사 라파엘 몰리나 산체스에게 24번 칼에 찔렸어도 살아남았던 황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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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트레이너Meghan Trainor의 Made you look이라는 노래가 유행이다. 브랜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재치있는 가사로 잘 표현하고 있다.


I could have my Gucci on/ I could wear my Louis Vuitton/ But even with nothin’ on/ Bet I made you look./ Yeah, I look good in my Versace dress / But I’m hotter when my morning hair’s a mess
구찌나, 루이비통을 걸칠 수도 있지만, 그런게 없어도 당신은 나를 바라보게 될 거야. 베르사체 드레스를 입어도 멋지지만,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로 있을 때 난 더 섹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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