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듣고 배우면서 많은 삶의 밑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지나온 음악에 사랑, 죽음, 자유와 가능성으로 삶을 바라고 그리며 견뎌온 기록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통해 삶을 견디는 힘을 얻는 건 비단 저만의 일이 아닐 겁니다.
아주 멀리 가볼까요. 그 먼 옛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 담고 있는 감정을 모방하는 것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해소를 통한 후련함을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좋은 성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공간을 넘어 조선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유교의 대표적인 동양철학인 예악론에서도 예악이라고 하는 것은 질서와 조화를 담고 있는 음악으로서, 소리에서 음이 되고 또 악이 되기 위해서는 덕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음악은 좋은 덕, 즉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덕을 갖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로 넘어오겠습니다. 굳이 철학의 역사를 되짚어보지 않더라도, 정신의학에서 거론되는 이론에도 음악의 힘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방어기제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방어기제 중 승화는 예술을 통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어내는 작용으로써, 대표적인 건강한 방어기제로 여겨집니다.
그러니, 오랜 역사와 시간을 견뎌온 음악을 통해 힘을 얻는 건 비단 개인의 일이 아니겠지요.
저부터도 음악을 전공하며 천천히 넉넉히 듣고 쓰는 과정에서, 삶에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글은 그 위로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에 있는 음악들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제가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며 삶을 고민한 흔적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으로도 광범위한 음악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을 단순히 클래식 음악으로 통칭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음대 입학 전 짧은 입시가 배움의 전부였던 제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와 삶의 고전 Classic 이 되어주었던 귀중한 음악들입니다.
클래식이라는 빈 도화지 속에,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사랑과 삶과 죽음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고, 그 고민이 미숙해서 오래도록 괴로웠기 때문에, 그 자국들이 남아 이렇게 글을 쓰는 거겠지요.
어렴풋하게나마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꺼내놓을 수 없는 아픔이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아픔을 겪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도, 감히 그 아픔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일찍이서부터 많이 우울했고, 또 아주 기쁘기도 했던 한 개인의 기록으로써 제 이야기가 독자분들께도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음악이 천천하고 넉넉한 삶의 보배가 되어 주길 바라며,
천천히 서
넉넉할 유
보배 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