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진 EUGENIA Oct 12. 2024

사랑은 기쁨,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____

클래식 음악으로 사랑 읽기, 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

크라이슬러 : 사랑의 기쁨
이츠하크 펄먼 Itzhak Perlman 이 연주하는 작곡가 크라이슬러 Kreisler의 사랑의 기쁨 Liebesfreud



"오늘은 달인 한 번 모셔보겠습니다." 개그콘서트 코너 달인에 삽입되어 유명했던 그 음악,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 글로, 오늘은 사랑을 한 번 모셔볼까요.


사랑의 달인은 아니지만, 한 때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한 적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사랑하면 가장 떠오르는 감정은 아마, 크라이슬러가 그랬듯 기쁨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기쁨 그 이상이겠거니 생각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어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수많은 단어와 가사와 음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벅차오르는 그 극한에 대하여 재현해 줄 수 있는 무언가는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했던가요. 또 어쩌면 그래서, 이 세상에 사랑 노래가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설명하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또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악상이 떠오르는 것일지도요. 


저도 가사가 있는 음악과 그 가사를 뒤적이며 내 감정은 그게 아닌데, 이 사랑 노래 가사 조금 괜찮은데? 아닌가 하며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 헤맸던 세월만 한 트럭인 것 같네요.


그러다 보면 때로는 사랑이, 곡의 가사만으로는 내 감정을 오롯이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제가 바로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순간입니다. 그 가사가 없는 여백이 마치 도화지 같아서, 저만의 상상을 더할 수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여기, 사랑에 대하여 기쁨이라고 이야기한 작곡가가 있습니다. 크라이슬러(1875-1962)의 사랑은 기쁨에 관한 무언가였나 봅니다. 그렇지만 듣는 이에 따라 기쁨일 수도, 그 이상의 무엇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크라이슬러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_________”



뭐라는 거야? 하셨죠. 여러분의 사랑을 위하여 빈칸을 채워 넣지 않았습니다.


안돼, 아직 글을 덮지 마세요, 진정하세요. 미국의 철학가 수잔 랭거(1895-1985)는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의 감정을 예술적 상징체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예술이어서, 개인이 느끼는 내밀한 주관적 감정까지도 담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바로 그런 의미에서 빈칸은 여러분만이 느끼는, 말로는 차마 다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기쁨을 충분히 음미해 보시라는 뜻이었답니다.


이 빈칸에는, 친구에 대한 사랑, 애인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방면의 사랑이 들어갈 수 있겠지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각하다 보면, 그 감정이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 만큼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도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무어라 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있죠.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의도가 의문스러운 순간이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음악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때는, 그렇구나 관조하세요. 단번에 감지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데, 단박에 정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말로 무어라 한 번에 단언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하여 표현한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이기 때문이죠.


대신 시간을 지나며 흘리듯 여러 번 들어보세요. 집안일을 하면서 들어도 좋고, 이동시간에 들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작곡가가 담은 울림이, 더 깊이 다가오는 무작위적인 순간이 있으실 겁니다. 명상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충분히 음미해 보세요. 그 순간을 잡으시되, 제 글과 글의 말미(a.k.a. lifecho)에서 제시하는 음악적 키워드들을, 그 순간을 잡는 도구로 사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책이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담듯, 음악도 작곡가의 감정과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클래식 음악에도 작곡가의 관점이자, 그의 영혼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지요. 한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말로 단번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혼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독자님들의 마음에 와닿는, 결이 일치하는 음악이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오늘 듣고 있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은 작곡가 본인이 사랑을 보는 관점을 녹여낸 것이겠지요. 사랑을 기쁨이라는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본 음악을 들으면 기쁨 이상의 그 넘어가 보입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크라이슬러의 사랑이 무엇이었을지 알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을 지나온 작곡가가 무엇을 느꼈을지, 그리고 그러한 그림을 나의 경험 중 무엇과 연관시킬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세요. 클래식 음악만큼 사랑의 말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는 예술도 드물 겁니다.


날 것한 소리의 진동을 통해 내 마음에 이는 고유한 파란을 돌아보는 것이, 그리고 그 진원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사랑, 그리고 그 부유물에 대하여 오래도록 음미하게 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힘이니까요.



☁️ 삶울림 lifecho____

삶 : 관조 = 음악감상의 미학 : 무관심성의

ㅣ 삶의 아름다움이 숨을 쉬고 물을 마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현듯 다가오듯, 음악의 아름다움 역시 일상 속 내려놓고 그저 관조하는, 무관심 속에서 출발한다.  



- 추천 음반/연주

- 이츠하크 펄먼 Itzhak Perlman의 연주 음반,

 [Itzhak perlman plays Fritz Kreislier] - 'Liebesfreud' (Warner Classics, 1976)

https://www.youtube.com/watch?v=OQgUa8nVzek

처음 등장하는 주제 선율의 포르테(f, 세게)와 프레이즈(phrase, 언어에서 문장의 개념) 끝의 짧고 강렬한 에너지가 곡 전체에 깔려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생전 크라이슬러 Kreisler 가 연주한 음반,

[Kreisler Plays Kreisler]- 'Liebesfreud'  (RCA Victor Gold Seal, 1938)

https://www.youtube.com/watch?v=LWV2WFW0PVQ&t=9s

작곡가가 직접 연주한 음반. 그 시절의 유성기로 녹음한 탓에 더해진 톤이, 사랑 안의 환희와 멜랑꼴리가 대조되는 듯한 느낌을 더해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