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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Jan 19. 2024

엄마는 방학이 무서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삼시세끼

   오늘로 첫째 겨울이가 겨울방학을 한지 딱 2주가 됐다. 띠용~ 

   두 달은 지난 것 같은데 겨우 2주밖에 안 지났다니! 아직 방학이 끝나려면 6주나 남았다. 12월이 되면 방학을 앞두고 3주 정도 단축수업을 한다. 평소엔 점심급식을 먹고 5교시나 6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2시 전후로 하교하지만 단축수업을 하면 4교시 수업만 하고 급식 먹고 12시 반이면 집에 온다. 단축수업 공지는 보호자들에게 곧 삼시세끼 돌밥돌밥*시즌이 임박했다는 경보이기도 하다. 단축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방학동안 못 만날 친구, 지인들과도 미리 만나야 하고 비상식량도 준비해둬야 한다. 예전에 한 방송인이 예능 프로에서 하루 세끼를 다 집에서 먹으면 삼식이, 간식까지 먹으면 종간나 세끼라고 했는데 전국의 모든 지역맘카페에서 이 짤은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삼시세끼 해먹이는 고생스러움에 공감하는 주부들이 많다는 뜻.



   사실 작년까지는 아이가 방학마다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의 돌봄센터에 갔기에 점심과 간식 걱정은 없었다.

맞벌이 가정의 초등 자녀들의 방과 후, 또는 방학때 돌봄을 담당해주는 돌봄센터에서는 점심엔 학교 급식처럼 따뜻한 밥과 국, 반찬 3가지가 제공되고 오전, 오후 간식도 챙겨줬다. 게다가 모닝요가, 독서, 글쓰기, 요리, 보드게임, 체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고 숙제나 문제집을 보내주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도 시켜주셔서 방학이라고 늦잠자고 TV 보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고 아이들도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저학년 우선으로 받다보니 올해 4학년이 된 아이는 돌봄 아동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런~ 시래기국!


  

  학기 중에도 아침, 저녁 식사는 집에서 먹으니 한 끼만 더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밥 한 끼 더 차려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밥과는 별개로 아이가 학원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집에 있다는 것은 보호자들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아이와 종일 붙어있으면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다.  멋드러지게 방학 생활계획표를 그렸어도 아이 혼자 계획표대로 실행하는 건 힘든 일이다. 방학은 쉬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 넋놓고 쉬다보면 순식간에 그동안 만들어온 생활습관과 학습루틴이 무너지기 때문에 손놓고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공부습관은 유지시키고 방학을 이용해 여행, 체험 등도 시켜주려면 미리 계획짜고 예약하고 손가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방학이니까 좀 쉬는 것도 좋겠다 싶지만 막상 늦잠자고 일어나 TV 리모콘이나 핸드폰을 들고 쇼파와 한 몸이 된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오고 (쇼파에서 뒹굴거릴거면 책이라도 보면서 뒹굴거리면 좋겠는건 엄마의 욕심일까?)  그렇다고 숙제와 공부, 독서를 시키자니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방학 특강을 신청하면 픽업과 라이드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사도우미, 학습매니저에 로드매니저 역할까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콜라보! 그것이 바로 엄마들이 방학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파트타임으로 온라인 영어수업을 하고 있어 아이와 있는 시간동안 수업시간, 수업 준비할 시간도 확보해야한다. 내가 일하는동안 아이도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거나 무언가 집중할 거리를 줘서 (이 또한 아이와 협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계속 엄마를 부르거나 TV 아니면 핸드폰만 보게 된다. 밥챙기고 아이 숙제와 공부 챙기고 내가 일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마치 저글링같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 하루 세끼 먹이는 것이라도 최대한 간편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덜 쓰고 아이가 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 핸드폰만 몇번 터치하면 몇 시간만에 식재료들이 문 앞까지 배달오는 세상이지만 급하게 밥을 차리려면 기본적인 비상식량은 갖춰져 있어야 하므로 자주 먹는 아이템들을 일단 주문했다. 사진만 보면 인스턴트 음식만 잔뜩이라 민망하지만 두달동안 하루세끼 총 180끼의 식사를 손수 만든 음식만으로 줄 수는 없다. 그러려면 종일 부엌에서 살아야 하므로 나도 편하고 아이도 잘 먹는 인스턴트 음식과 밀키트,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도 이용한다. 엄마표 음식과 엄마표가 아닌 음식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엄마표 밥상으로 위장하는 걸 목표로 한다.  비상식량으로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제 이 재료들로 초간단메뉴를 만들어 먹으며 앞으로 장장 6주나 남은 방학을 헐크가 되지 않고 아이와 평화롭게 보내리라 다짐해본다.


엄마의 이너피스를 위해 주문한 비상식량들


   



상단 이미지출처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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