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기 이틀 전 밤이다. 6인실 병원 침상에 누워 커튼으로 둘러싸인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누워 있는 이 자리는 몇 평 정도 될까?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무덤덤하기도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수술을 앞두고 떨리냐고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덤덤하다고 이야기했다. 출산을 위해 여러 번 병원에 왔었고, 수술도 했었기 때문에 병원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두려운 공간은 아니었다.
6월 그날은 우리 가족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기적적인 날이다. 그저 감사할 뿐...
병상에 누워있으니 지난해 가을이 떠올랐다.
남편의 유일한 신장 기증자임을 확인하고 펑펑 울었던 날, 정신없이 기증 검사했던 나날들...
나의 간절한 소원은 현실이 되었고, 오늘은 소원이 이루어지기 이틀 전 날이다.
지금 이 공간에서 나는...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덤덤하면서도 감사한 마음...
복합적인 마음이 뒤엉켰다.
애간장을 태웠던 낮이 떠올랐다.
수술을 앞두고 간병인을 구해야 했다. 남편은 간호 간병 서비스 병동을 이용하기 때문에 간병인이 없어도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기증 수술 후 3~4일 정도는 옆에서 간호해 줄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안내받았다.
나와 남편은 입원 수속을 마친 후, 병원에 간병업체를 문의했다.
건네받은 종이에는 여러 곳의 업체 번호가 적혀있었다.
첫 번째 업체, 두 번째 업체, 세 번째 업체...
전화를 걸 때마다 내가 원하는 날짜에 간병인이 없다고 했다.
종이에 x표만 한가득 채워졌다.
'후유...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구나...'
당장 내일모레가 수술하는 날인데, 간병인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한 업체에서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확답은 받지 못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 업체만 기다릴 수는 없어서 계속 전화를 돌렸지만, 결국 수술날 간병인을 보내주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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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님은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봐주셔야 했기 때문에 간병을 부탁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도 암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복 중인데...
생각나는 사람은 언니 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망설였지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병원에서 안내해 준 간병업체에 전화를 다 돌려봤는데, 그 날짜에 올 수 있는 간병인이 없다고
하네... "
"00아! 이제 전화 그만 돌려~ 나도 너희 부부가 수술한다고 해서 나도 계속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올라가서 간병해 줄게... 이제 더 이상 알아보지 마. 내가 내일 올라갈게"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이중적인 마음이지만,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그날은 유독 친정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다.
친정 엄마는 우리 부부가 수술을 하는지 모르시기 때문에 전화조차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씩씩하게 이겨내는 수밖에...
'오 남매 엄마답게....'
아파서 회복 중인 언니에게 간병을 부탁하는 것이 참 미안했다.
그간 언니가 간병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진심을 말하지 못했다.
간병인 구하면 된다고 큰소리쳤지만,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나를 맡긴다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병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던 나는 언니가 온다는 소식에 그제야 두 발을 뻗을 수 있었다.
내일이면 그녀가 온다...
다행히...
언니는 내가 기댈 언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