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에 가기 전, 인도 영화 <신이 맺어준 커플>을 봤다. (한국에서는 '그 남자의 사랑법'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일명 '인도의 권오중'이라는 샤룩 칸(Shahrukh Khan)이 나와서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멜로 연기를 펼치는데, 스토리보다는 영화의 배경으로 나온 암리차르에 심쿵했다. 그곳에는 한없이 신성해 보이는 황금사원이 있고, 궁전처럼 화려한 Khalsa College도 있고, 오감을 자극하는 시장에는 '콜카파'라는 희한한 음식도 팔고 있었다. 다음에 인도에 가면 꼭 저기를 가보리라. 나도 저 주인공들처럼 콜카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어보리라...
그렇게 주파수를 걸고 일에 매진하다 보니 기회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그로부터 3달 뒤, 나는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에 와있었고, 리시케시와 다람살라에서 수련이 끝나던 날 새벽같이 암리차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무려 4번이나 환승한 끝에 겨우 도착한 암리차르(Amritsar). 이곳 사람들은 '암리차르' 대신에 '아므릿사'라고 불렀다. 여기선 릭샤의 강매나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마음 상하게 하는 상인도 안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인류와 종교를 포용하는 시크교의 교리 때문인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젠틀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인도에서 가장 비옥하다는 펀자브(Punjab) 주. 물자가 풍부한 곳은 확실히 분위기가 여유로운 것 같다. 거리의 라씨(인도의 요거트) 한 잔을 사 먹더라도 커다란 컵 한가득 채워준다. 무더운 날씨에 목을 축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것처럼 시원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암리차르가 내게 건넨 웰컴 인사였다.
시크교의 본산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 나는 가슴아 제발 설레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뭐든 인크레더블한 인도였으니까. 하지만 황금사원으로 들어선 순간, 내가 상상해오던 것들이 하나둘씩 실현되기 시작했다. 무료 숙식에 황금사원이 있는 해자를 정원으로 가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숙소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5세기 무렵 나낙(Nanak)이란 사람이 "브라만도 알라도 없다"며 와헤구루(Waheguru)라는 또 다른 유일신의 개념을 들고 나온 신흥 종교이다. 여기서 와헤구루란 '형체가 없고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의 진리'를 의미하며, 이 진리를 전하는 종교적 지도자를 구루(guru)라고 칭하였다. 나낙이 수행할 때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시크교의 모든 사원에서는 무료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준다. 비록 허름한 도미토리에는 빈대가 출몰했고, 식사는 짜파티에 달이 전부였지만, 인도의 각종 사기와 독특한 기후로 지친 여행자에게 황금사원은 잠시나마 의심병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시크교에는 교주 나낙을 포함하여 총 10명의 구루가 있는데, 5대 구루 아르준(Arjun)이 역대 가르침을 집대성한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Guru Granth Sahib)'를 편찬하여 종교 지도자가 아닌 이 책 속의 진리를 경배하도록 하였고, 10대 구루 고빈드 싱(Gobind Singh)은 불평등한 계급 제도인 카스트를 없애고 성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왕족이 이씨 성을 가진 것처럼 인도도 성으로 계급이 구분되어 있다. 참고로 시크교도 남자의 성은 모두 Singh('사자'란 뜻)이고, 여자는 Kaur('암사자'란 뜻)이다. 요가 음악 편에 소개된 미국인 시크교도 Snatam Kaur와 Guru Ganesha Singh이 그 좋은 예이다.
드디어 여기서 머리에 터번을 두른 인도인들이 마구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인도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인도인들은 모두 터번을 둘렀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실상은 시크교도와 일부 이슬람교도에 한해서인데, 시크교도의 경우 태어나서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기 때문에 둘둘 말아서 터번을 쓰고 다니며, 독실함의 정도에 따라 터번의 크기와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이 터번 때문에 재미있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시크교도는 오토바이를 탈 때 헬맷을 안 써도 법적으로 보호되며, 시크교도인 군인이나 경찰도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이 허용된다고 한다.
암리차르가 있는 펀자브 주는 비옥한 토지 덕분에 일찍이 농업이 발달하였고, 문명의 젖줄인 인더스강이 지나면서 선사문화의 흔적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처럼 2차 대전 이후 분단된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종교 문제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각각 분리되는데, 이슬람교도가 많은 곳은 파키스탄령, 힌두교도가 많은 곳은 인도령이 되고, 파키스탄은 다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리고 거리 문제로 인해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원래 한 나라였던 인도는 무려 세 나라로 쪼개지고 만다.
비록 분리되긴 했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 간의 이동이 가능하고, 특히 옛 무굴제국의 번성했던 수도 라호르(Lahore)의 영향권이었던 인도측 국경 암리차르와 파키스탄 국경 라호르에서는 매일 저녁 독특한 국기 하강식이 열린다. 두 나라의 군인들이 기싸움이라도 하듯 힘찬 발차기를 선보이며 국경까지 행진을 하는데, 그 길 끝에 천천히 내려오는 두 나라의 국기를 보며 이 민족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 건 아니지만 인도인들은 대체로 파키스탄을 극혐하는 것 같았다. 종교 전쟁의 역사가 깊은 민족이기에 힌두교도들은 파키스탄이 탈레반의 본거지라며 대놓고 싫어했다. 심지어 같은 이슬람교도들도 파키스탄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분리할 때 이슬람교도를 아예 싹 데려가지 왜 인도 땅에 남겨놨냐는 것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에 다녀온 나를 아주 불쌍하게 쳐다봤다. 그런 쓸데없는 곳엔 대체 왜 갔냐고. 이 국민들은 중간이 없는 듯했다. 아주 좋거나 아니면 아주 화가 나있거나.
파키스탄인의 경우 이슬람이라는 엄격한 분위기 아래 살아와서인지 표현에 있어 다소 절제된 면을 보였지만 배타적인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한 나라였다 하더라도 종교가 다르면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슬람교도에게도 종교는 이념보다 강한 도그마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그들은 인도로 넘어간다는 이방인에게 끝까지 친절했고 평화를 기원해주었다. 이것이 인도인과 대조되는 파키스탄의 인상이었다.
나는 이 두 나라를 지나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신들이 믿는 종교의 이념이 타 종교를 배척하는 거라면 당신들이 말하는 그 교리는 과연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 것만 주장하고 있을 것인가. 민감하지만 언젠가는 꺼내봐야 할 문제...
다시 돌아온 아므릿사의 밤은 찬란했다. 연못 앞에 앉아 가끔씩 들려오는 경전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차분해진다. 그렇다고 시크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종교와 인종을 포용하려는 그들의 이념이 나를 그나마 평온하게 해 주었다. 이 묵직한 나라에서 나는 언제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